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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ㄷㅣㅁ Sep 04. 2023

고시 그 이후.

사형을 앞둔 사형수의 마음

나밖에 없지만 나는 없는 시간들


    고시 공부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게 뭐냐고 묻는다면 공부도, 친구들에 비해 한없이 뒤처진다는 불안함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답답함도 아니었다. 하루에 적게는 7-8시간, 많게는 12시간까지 혼자이지만 그 안에 나는 없었던 외로움고독이었다.

    학원에 가서 실강을 듣거나 스터디를 한 적도 있었지만, 모두가 치열하게 버티는 매일 속에서 서로 마음을 나누거나 의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를 경쟁자라고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누군가를 품어줄 여유가 없듯, 그들의 마음에도 고시공부 외에 다른 것들이 들어갈 틈이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로가 가장 잘 알기에.


    그래서 나는 고시공부를 하는 동안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혼자였지만 그곳에 나는 없었다. 나를 지우고 내 생각과 마음을 비워내야만 눈앞에 놓인 무시무시한 양의 공부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도록 외로웠다. 사람이 고팠고, 그 누구보다 '내'가 그리웠다.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미치도록 가슴이 사무쳤다. 고시공부는 차가움과 냉정함을 요하는데 이리도 감정적인 나에게는 어쩌면 무리가 아니었을까 수없이 의심했다.



성실함은 가장 빛나는 재능이었다.


     대학생 때 학보사에 다녔다. 주간지라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취재를 하고, 금요일 기사 수정 및 편집을 마쳐서 늦어도 일요일 아침까지는 인쇄소에 최종본을 넘겨야 했다.

    우리 학보사에는 크게 보도부, 사회부, 미디어부, 사진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보도부는 부서 특성상 행사 기사와 같이 취재일이 정해져 있는 아이템이나 호흡이 짧은 기사들이 여러 개 배정되어 기자들이 주어진 4일의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바쁘게 뛰어다녔다. 반면, 사회부는 한 사람당 배정되는 기사의 수는 적었지만 그 대신 호흡이 길고 깊은 취재를 요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사회부 역시 4일 동안 심도 깊게 취재를 해야하지만 사람마음이란게 그렇게 되지 않기에... 기사마감전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4일 치 취재를 미뤄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우리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보도부는 '노력', 사회부는 '반짝'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꾸준하고 성실한 보도부 기자들과 달리 사회부 기자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임기응변으로 불성실함을 무마하여 어찌어찌 매주를 무사히 버텨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리석지만, 그때의 나는 '반짝'만이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창의적인 생각과 아이디어는 아무나 낼 수 있는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에 반해 그런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게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노력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람들에 비해 내가 뛰어나다고 자신했다.

    고시공부를 하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노력과 끈기도 재능이라는 거였다. 그것도 엄청난 재능. 지루함과 답답함을 버텨내고, 스스로 끊임없이 동기를 부여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그 '노력'이라는 이름의 재능은 실로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반짝'은 한 순간 때뿐이지만, 노력은 반짝이 수명을 다한 자리에서 은은하게 자리를 늘 지키고 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COJjdSgM8

최근에 찾아보니 논란이 좀 있었던 것 같은데... 뭐 그건 차치하더라도 이 영상 속의 말은 정말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연히 보게 된 영상인데, 나는 3년 반을 쏟아부어 20대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사실을 고등학생 아이돌이 진작 깨닫고 있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다. 뭐 최근에 논란이 좀 있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 영상은.... 불치하문(不恥下問)을 다시한번 되뇌이게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최선을 다한다'라는 말의 뜻을 한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 여태까지는 잘 풀리기는 했지만, 나 자신을 완전히 갈아 넣어서 이뤄낸 것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떳떳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https://www.youtube.com/watch?v=hK47dorZTe4

존경한다. 진심으로.  

    시험이 끝난 후 유퀴즈에서 김연아 선수가 '후회가 없다'라고 말을 하는 걸 보았다. 나도 으레 '최선을 다했다', '후회 따위 없다'라는 말을 해오며 살아왔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그 말 뜻을 이해한 적이 없었기에. 김연아 선수의 말을 들으며 대체 그런 건 어떤 기분일까 가슴이 답답해졌다.

후회 한 줌 없이 오로지 해방감만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매일 후회로 살아왔을까...

    

너덜너덜해져버린 가죽덩어리


    어쨌든, 고시공부를 하며 처음으로 노력이란 걸 했던 것 같다. 물론 공부가 끝난 지금도 너무 많은 후회가 남아 결코 최선을 다했다고는 말을 못 하겠다. 아직도 내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냈던 시간들과 내 감정 하나를 통제하지 못해 낭비했던 마음의 공간들이 눈에 선하기에.


    시험을 목표로 오랫동안 공부 하다보면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있겠지만 유독 나는 자책이 심했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서라기보다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커서 현재의 나에 대한 평가가 좀 야박한 편이다. 그리고 나는 성실함이라든가 꾸준함이라든가 하는 것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므로.

 

    매일 자책을 했다. 왜 집중을 못할까, 고작 이것뿐인 각오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F 중에서도 정말 엄청난 F여서였을까. 배부르고 등따시게 먹고살 걱정 없이 고시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스스로가 더 한심했다.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지만 나보다 더 큰 열정을 가지고 더 많은 노력을 해서 시험을 보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공부만 하면 되는데 왜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지.

    무표정으로 독서실 책상 앞에 앉아 있었지만 내 마음속은 늘 스스로를 향한 울분 가득한 비명들로 가득 찼었다. 마음속 깊숙이서 끓어오르는 스스로를 향한 원망과 분노는 나를 집어삼킬 듯 커져만 갔다.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날이면 더 심했다. 이미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괴로움과 고작 졸음 따위를 이겨내지 못하는 나약한 스스로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렵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공부를 시작하고, 그날은 놓쳐버린 아침시간을 어떻게든 메꿔야 한다는 생각에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했다. 그렇게 일상의 패턴과 규칙은 깨지고 다음날의 늦잠과 또 다른 자책 가득한 하루로 이어졌다.


    상처가 채 아물 틈도 없이 가슴을 수없이 난도질을 했다. 그렇게 상처가 덧나고 덧나서 더 이상 난도질 할 살점이 남아있지 않은 너덜너덜한 가죽 덩어리가 되어갔다. 걸레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내 마음은 이제 찔러도 피도 나오지 않고 아프지도 않았지만, 가슴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은 나를 늘 힘들게 했다.



나를 찾기 위한 노력들, 그리고 지금


    작년 이맘때쯤, 결과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심리상담을 받는 것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위태로웠기에, 너무 가여워서 두고 볼 수 없었다. 한 달 동안의 시간 동안 5-6번 상담을 받았고, 상담 선생님은 어쩌면 이런 류의 시험이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나도 느끼고 있던 바였다.

    그래도 다시 한번 해보고 싶었다. 아직 마음이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이왕 생채기가 난 거 아물어 새살이 돋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같은 방식으로 스스로를 난도질하며 수험생활을 했지만, 그래도 가족이 곁에 있으니 마음이 좀 나았다. 물론 이전보다 더 한 압박감과 과거에 비해 크게 나아지지 않은 스스로에게 더 큰 실망을 하는 날들도 있었지만.

    시험이 끝난 후 이번엔 정말 나를 찾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불어를 다시 배우고 일본 여행을 홀로 갔다 왔다. 특히나 일본여행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는데, 열흘의 시간 동안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결과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이 이런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보려 하고 있지만,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래도 벌려놓은 일들이 있어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드는 지금이다. 과외도 해야 하고, 불어숙제와 일본어 공부 그리고 이곳에 글을 올리는 일도. 아마 이것들이 없었다면 아마 난 방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밤낮 없는 시간들을 처참히 흘려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서울 속 나의 힐링공간.

    

    어쨌든 그러하다. 일본여행기를 계속해서 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마음이 혼란하여 뭐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이렇게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형일지, 특별사면일지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일단 나는 오늘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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