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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기 May 04. 2024

기독교인과 결혼해야 하는 이유

감정은 흐른다.

감정은 끊임없이 흐릅니다. 사람이 좋다가도 싫증 나면 금방 실망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좋았다가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새로운 사람에게 감정이 이동됩니다. 한 사람과 꾸준하게 감정이 유지가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되면 감정의 에너지는 소멸되고 맙니다.


감정이 소멸되면 새로움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새로운 감정이 생겨 그 사람에게 감정이 흐릅니다. 새로운 사람이 좋다가도 또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면 감정은 흐릅니다. 감정은 강물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에게 감정이 유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점검해보고 싶습니다.


감정이 흐르게 되면, 누수되기  시작하면 갈등이 발생합니다.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길거리에서 싸움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많은 데도 큰소리로 전화 통화하며 싸우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벤치가 먼 데도 어떤 여성이  전화로 부부 싸움하는 소리가 크게 들려옵니다. 남편은 집을 나갔고 왜 안들어냐고 따집니다. 왜 아이까지 낳았냐고 더 큰소리로 따집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서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어 일상생활이 힘들어집니다. 방전됩니다. 삶의 현장으로 나가기 전에 모두 방전됩니다. 만남은 충전의 시간인데 방전하는 시간으로 변합니다. 사람을 만나면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감정이 맞는 사람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정싸움을 에너지를 다 소모하면 사회에서도 큰 일을 못합니다. 일어설 힘도 없습니다.


순수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감정을 좋게 만드는 사람의 특징을 적어봅니다.

격려를 해준다.

마음씨가 따뜻하다.

배려를 할 줄 안다.

여유가 있다.


정답은 없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데 멀쩡한 사람도 괴물이 되고, 화도 냅니다. 천사 같은 사람이라도 내일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는데 침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럴 때 침착한 사람은 정말로 감정을 좋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정이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돌발상황에서 화를 내는지도 잘 살펴봐야 합니다.  일상에서 계속 화내는 사람은 아예 버려야 합니다. 아예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일평생을 그런 사람과 함께 한다면 고통의 시작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인격이 아직 부족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그 이상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의 상황입니다. 화를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화내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됩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자기에 대한 인격의 미성숙이고 그 화낸 한마디가 삶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심리학자는 아닌데 살아보니 화내지 않는 사람이 좋습니다.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그 습관을 고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사람은 인격에 문제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지내자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화를 내야 하는 임계점에서는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그 임계점이 너무 낮거나 수시로 변하면 문제가 됩니다. 분노의 돌발상황에서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분노의 상황에서 입에 재갈을 물리는지 봐야 합니다. 고난의 상황에서 침착하게 한 호흡을 멈추는지 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대화를 잘하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말을 부드럽게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감정을 오래도록 좋게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감정은 낡고 녹습니다.  감정은 항상 싱싱하지가 않습니다. 감정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좋은 친구, 연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하나님꼐 조용하게 기도합니다.  사람에게 화를 내지 말고 하나님께 화를 내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기에 우리가 부르짖음을 아시고 잠잠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렇다고 온종일 하나님께 화내는 기도는 좀 실례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 귀 안 먹었습니다.  고요해야 할 때는 너무 크게 부르짖지 말아 주세요. 하나님은 다 듣고 계십니다. 기도할 때조차도 웬만하면 화도 내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가슴에 담아둘 수 없는 화는 하나님께  내야 합니다. 사람에게 쏟아부으면 관계 다 깨집니다. 사람에게 침묵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진정으로 감정을 잘 통솔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지옥에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흔들리고 바로 무너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술에 의지해 한탄을 하며 무너집니다. 술은 더 큰 문제를 불러옵니다. 술 깨면 다시 원점입니다. 아니면 술로 인해 새로운 사고가 하나 더 터져 있습니다. 사람에게 아무리 하소연해 봐야 진전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붙잡으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역경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살아납니다. 하나님 안에서 버티기만 해도 살아난다. 삶의 시간들마다 하나님을 붙잡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붙잡을 때 화는 잠잠해지고 회복이 됩니다.


화가 났을 때 인생의 바닥일대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이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것은 행운입니다.  이런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께 끊임없이 기도해 다시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은 서서히 하나님, 예수님의 성품으로 조금씩 변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좋다는 것인 아닙니다.  그렇지만 일정한 인격의 수위는 좀 검증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경제력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믿음의 좋으면 삶의 태도도 올바르기에 나중에는 경제적인 여유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 좋은 사람은 태도가 좋기에 현업에서 최대한의 업무를 발휘해서 업무성과도 높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경제 능력을 유지합니다.


믿는 사람은 삶의 목표를 가정에 둡니다. 가정의 평화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가정 깨지는 것을 쉽게 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예외 사항은 있습니다. 이혼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평균으로 보았을 때는 양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뉴스에서 나오는 특이한 사건들도 기독교인들을 매도하는 것이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 전체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게도 만듭니다.


믿는 사람은 술을 대부분 죄악시합니다. 그래서 술, 담배는 안 하려고 노력합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 사귀면 힘듭니다. 냄새나고 하루에 일정 시간을 담배 피우는데 낭비하게 됩니다.  담배 피우면 폐 수명이 짧아집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호흡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냥 미세먼지 먹고살아도 호흡하기 힘듭니다. 더 독한 가스를 폐에 넣는 분과 사는 것은 본인의 결정에 따릅니다. 아무리 흡연인구가 많다 하더라도 건강에 대해서 타협할 수는 없습니다.


교회에 미치면 일상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천국에 소망이  땅에 눈물 나는 날들을 잘 감내해 가며 살아갑니다. 삶을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기쁜 날에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도 흘러넘치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의 단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아주 넓지는 않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얽매이다 보니 골프, 등산, 사교모임에는 많이 참석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세상과는 단절은 아닙니다. 신앙을 같이 하지 않으면 종교 문제로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그냥 쉬고 싶은데 교회 가자고 하면 짜증이 날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단계를 넘어서면 스스로 예배를 사모하게 됩니다. 참된 안식을 예배에서 찾게 됩니다.


배우자를 기독교인으로 고를 때의 유익한 점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화를 덜 냅니다.

대부분 술, 담배 안 합니다.

가정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그나마 보편적으로 순수한 편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이 교회 다닐 때 이야기입니다. 사이비 교회, 성도를 이용하려는 교회, 훈련 없이 그냥 매일 반복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예외입니다.


기독교인은 그래도 한 번은 검증은 되었습니다. 올바른 믿음 생활의 공통분모를 가지 사람을 배우자로 얻으면 삶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자녀들도 부모의 기도로 잘 성장하게 됩니다. 대부분 잘 살아갑니다. 그래도 믿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만나면 그나마 행복하게 잘 살아갑니다. 결별이 흔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을 배우자로 만난다면 이런 결별의 위험은 조금은 감소시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 보는 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니면 내가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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