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도쿄 Tokyo, 東京)-7
다시구치 요시로(谷口吉郎, 1904-1979)와 그리고 그의 아들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1937- ). 건축계에서 아버지 세대와 그 자녀 세대에 걸쳐 확연한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현대 건축가들 중 없진 않을 것이지만 쉽게 떠오르진 않는다. 그리고 도보로 3분여 걸리는 200여 미터의 거리를 두고 동일한 공간에 작품을 남겨 놓은건 부러운 사례다. 그리고 올해 여든에 접어든 다니구치 요시오는 일본을 대표하는 현업 건축가다.
우에노공원(上野恩賜公園) 북측으로는 동경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이 있다. 그 건물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각각 아버지인 다시구치 요시로가 설계한 동경국립박물관 동양관(東京国立博物館東洋館)과 아들인 다니구치 요시오가 설계한 법륭사보물관(東京国立博物館 法隆寺宝物館)이 너른 광장을 통해 마주보고 있다.
일본 모더니즘 건축가였던 요시로는 전통과 근대의 정신적 접목을 시도한 건축가다. 동양관에서 뚜렷하게 보여지듯이 일본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담고 있다. 요시로가 전통적 요소를 차용하였다면 아들 요시오는 하버드대학 유학시절 만난 근대 건축의 거장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영향으로 모더니즘을 한 층 더 견고히 하게 된다. 단순하고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탐구하였으나 격자의 조합이나 변용은 일본의 전통적 정서를 담고 있다는 평가다.
다니구치 요시오의 해법은 일관성이 있다.
부피가 얇은 프레임속에 세장한 기둥을 배열하였다. 그리고 대형 유리면에 선적인 요소로 강조한 격자는 내외부 공간을 분할한다. 햇볕이 강하지 않는 날 내부에서 바라볼 때면 일본 전통 건축속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많은 것들을 단순화하고 추상화 함으로 인해 미니멀리즘으로 다가가고 있지만 공간감 만큼은 풍요롭다.
안도다다오와도 차별된다. 안도가 노출콘크리트의 물성에만 집중하고 있다면, 요시오는 다채롭다. 유리와 석재 그리고 금속성 재료를 혼용하고 있지만 어느쪽 하나로 물성에 치우침이 없고, 평등하다. 이것은 각 재료에 대한 집요한 디테일 연구가 뒤따랐기 때문은 아닐까.
안도가 어느 순간 정체되고 식상해졌다면, 요시오의 작업을 다시 보자.
1박2일 도깨비 여행인 첫번째 일본 건축기행. 동경 1박2일의 마지막 건물은 현대 건축의 거장이 일본에 남겨놓은 작업이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없는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0.6~1965.8.27 | 본명:Charles-Édouard Jeanneret-Gris)의 작업이다. 그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다.
「the New York Times review of its opening suggested that the building itself presented an "artistic significance and beauty" which rivaled the paintings inside.」
뉴욕 타임스의 개관 리뷰에 따르면, 이 건물 자체가 내부의 그림들과 필적하는 '예술적 의미와 아름다움' 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국립서양미술관[The National Museum Of Western Art, 国立西洋美術館]은 마츠카타 코지로(松方幸次郎)에 의해 컬렉션된 작품들로 19세기에서 20세기 전반의 회화, 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20세기초 마츠카타 코지로는 프랑스에서 많은 미술품을 수집하게 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패전국인 일본은 프랑스 정부로 부터 자산을 압수당하게 된다. 이후 일본은 프랑스로 부터 작품을 반환받는 조건으로 국립서양미술관을 건립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르 꼬르뷔지에는 본관을 설계하게 되고 그의 제자에 의해서 실시설계와 감리가 이루어져, 1959년 개관을 하게 된다.
마츠카타 컬렉션과 서양미술관의 건립에 대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십만점 이었다는 컬렉션은 여러 과정에서 약 400여점만이 「마츠카타 컬렉션」으로 남게 되었고, 재원 수급의 난항과 프랑스 정부와의 불화속에서 어렵게 개관을 준비 하게 된다. 1959년 1월 23일 프랑스 외무부에서 컬렉션을 인도받은 일본은 같은해 6월 10일 개관을 한다.
올해 이미 한국에서 열렸던 '4평의 기적'을 가슴에 담고 왔었다.
일본의 동경국립서양미술관뿐만 아니라 르 꼬르뷔지에의 모든 작품은 건축가 학생들에게는 스터디 대상이었다. 드로잉과 모형을 만들어 연구도 하고, 수작업 등각투상 투시도도 그려봤던 작품이 적질 않다. 그러니 여기서 작품을 논하는건 그다지 의미는 없을 것 같다. 현대건축의 최고 거장 격인 르 꼬르뷔지에의 존재는 건축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알려진 만큼 그 위상은 대단하다.
아직까지도 그 열광을 채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구전되듯 너무 나도 많은 찬사를 보아 왔었다.
그의 말년 70세에 작품이지만, 하지만 사실 동경국립서양미술관은 잘 모르겠다. 모르니 말을 못하는 거다.
이 즈음에서 1박2일의 짧은 동경 건축기행을 마무리 한다. 다소 짧은 기간이라 좀 더 깊이 있는 관찰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놓아야, 어느 정도 아쉬움이 베어 있어야 다음 여행이 기다려질 것이다. 하루 2만5천보 이상을 걸으며 누볐다. 피곤한 몸을 추스리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1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