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Naoshima, 直島)_2
어제와 같은 실수는 반복치 않으리라.
아침부터 다짐해 본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더니 혈당의 저하로 나의 감동 표현이 다소 비아냥으로 돌변하여 괜한 트집만 늘었다. 모두들 마찬가지였을것 같다. 어제 저녁의 짠 인스턴트 라면이 다들 불편했던지, 사냥감을 찾아 나선 승냥이들 마냥 아침 요기꺼리를 위해 앞을 다툰다.
하지만 불과 5분만에 사냥터가 아니라 어제 저녁 산책 때 눈독을 들였던 그 건물로 발길을 돌린다. 이 직업병 남 못주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 발걸음이 좋아 뒤따르는걸 보면.
지난날 오후까지 이어졌던 비는 먼지를 모두 씻어 내렸고, 바람은 차지만 어제처럼 여전히 상쾌하다. 이에(家) 프로젝트의 집들은 오전 10시에 오픈이다. 지금은 오전 7시. 주린 배를 채워줄 카페도 8시쯤 되어야 반겨줄테니 한 시간이나 넉넉하게 남았다. 조금은 어슬렁 거려도 충분하다.
나오시마 시민문화회관(설계 : 三分一博志_Sanbuichi Hiroshi, 1968生)은 일본 전통적 이미지를 현대적 구법으로 재현했다. 산부이치 히로시의 작업 답게 자연의 바람을 유입함으로써 홀 내의 공기 순환이 되게 한 시민회관은 대공간인 홀과 집회소 두 동으로 나눠져 있고, 지역 행사 및 예배당으로 활용하는 공간이다.
마을의 취락구조를 파악하고 여름철 가까운 바다 수면의 차가운 남풍을 받아 흘려주는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자연 에너지 외의 인공 에너지 사용을 극도로 줄이고 특히 마을에서 이용가치가 현저히 줄고 있는 우물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내부에 우물을 기를수 있는 장소를 두었다. 한 여름 지붕에 우물을 살수하여 건물을 냉각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 아직은 꽃들이 드리워지기 이른 시기지만 주변 꽃나무들이 만개한다면 전형적인 일본풍 마을과 함께 즐길수 있는 공간이다.
三分一博志, Hiroshi Sanbuichi, 1968生
산부이치 히로시(Sanbuichi Hiroshi)는 자연의 일부로써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존재하는 건축물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바람과 공기의 흐름에 주목하고 지형과 기후 특성을 고려한 감각과 철학을 자기 건축에 반영하고 있다. 2008년에는 이누지마섬의 폐허로 남아있던 구리제련소(1919년 폐쇄)에 섬의 산업역사와 환경을 재생하고, 기억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미술관을 설계한다. '이누지마 제련소 미술관(Inujima Seirensho Art Museum)'으로 일본건축학회상을 수상(2011년)하였다. '있는 것을 살려 없는 것을 만든다_「在るものを活かし、無いものを創る」' 취지로 기존의 굴뚝과 벽돌을 재사용하고 태양 및 지열 등의 자연에너지를 이용하여 환경 부하를 없앴다.
이제 10시다. 본격적으로 이에(家) 프로젝트를 감상할 시간이다. 모두 불과 5~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걷는 부담도 없다. 오히려 기록과 머리속을 정리할 겸 좀 더 먼 거리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우선 나의 위치를 파악하고 둘러 볼 순서를 정하는게 좋다. 하지만 가까우니 걷던 골목을 또 걸어도 깨끗하고 정감가는 좁은 이 길들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나오시마에서 가장 많은 프로젝트를 한 이는 단연 안도 다다오(安藤忠雄)다. 그 중 안도뮤지엄(ANDO MUSEUM)은 이름값 답게 별도로 510엔을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이에(家) 프로젝트는 1030엔 일괄로 받고 있다. 보통 15세 미만은 무료 관람인데, 속을 사람이 없다.
공개된 마당 정도에서는 촬영이 가능하지만 모든 실내에서 그리고 출입문을 넘어서고 나면 사진 촬영이 금지된다. 물론 번잡한 공간이나 촬영으로 인해 실수로 파손이 일어 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촬영이 곤란하다. 무엇보다 셔터음이 타인의 관람에 가장 방해되는 요소다. 가능하면 이러한 문제만 해결된다면 촬영을 하게 해줬으면 한다. 뇌용량에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장소의 세세한 디테일은 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느낌, 감정 마저도 이제는 담기에 버겁다.
역시 작은 공간에서 빚어내는 공간감은 안도가 최고 인듯하다. 휴먼스케일에서 마이너스 1 정도 줄여놓은 듯한 조형과 콘크리트의 물성을 다루는 솜씨는 빼어나다. 저 매끈한 콘크리트가 식상하다손 치더라도 비스듬하게 올려놓은 벽은 기존 민가의 구조체와 잘 어우러진다. 곳곳에서 파고드는 빛과 그 빛이 타고 내리는 벽, 안도 스럽다는 표현이 제격이다. 100년 된 古민가는 그 위를 살포시 포개어 업고 있고, 콘크리트에서 갖지 못하는 시간과 생명력이 더하고 있다. 특히 외관으로 봤을 때는 콘크리트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 안도의 작업으로 보기에는 이색적이다.
불과 10여미터 떨어진 南寺(minamidera)는 안도 뮤지엄(ANDO MUSEUM)과는 다른 느낌의 안도 스러움이다. 1999년에 완성된 minamidera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生)과 함께한 작업이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두 사람의 중심에는 '빛'이라는 공통인자가 있다. 안도 다다오가 빛에 의해 만들어진 궁극적 공간이 주제였다면, 건축보다 아무래도 제약을 적게 받아온 터렐은 물리적인 빛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 너무나 잘 짜맞추어졌다.
빛과 공간의 이야기에 한층 더 살을 붙여 놓아 튼튼해 졌다. 그로 인해 안도 다다오는 minamidera에서 빛이 없는 공간에서 빛을 얻었다.
南寺(minamidera)에 들어서면 강한 어둠에서 시작한다. 벽을 짚고 앞사람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내부로 들어설 수 있다. 그리고 묵언수행 하듯 10분이상 정면을 주시하고 그동안 의심을 걷어 내고 나면 서서히 밝아 오는 형태를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무엇을 분간할 정도의 밝음은 아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칠흑의 어둠에서 어둠이 아닐 것 같은 어떤 2차원의 형태만 동공이 커짐으로 인해 구분된다.
이 10여분간의 경험이 안도 다다오와 제임스 터렐이 관람객에게 보여주는 모두다. 더 이상은 없다. 하지만 남겨지는 긴장감과 무한한 공간감은 밝음에서 보여졌던 빛과는 다른 감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