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Naoshima, 直島)_4
한 꼭지 쉬어가보자.
첫 여정에 모든 것을 보려 하지 않는다. 특히 이곳 나오시마(直島), 데시마(豊島), 이누지마(犬島)를 비롯한 세토우치국제예술제(瀬戸内国際芸術祭, ART SETOUCHI)가 행해지는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작품들은 한 순간 감상으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 적절하게 순차적으로 배분해서 수차례 봐야한다. 그만큼 많은 작품과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이번이 첫번째 기행이니 두번째 세번째를 위해서 아쉽더라도 남겨두자. 그만한 핑계가 없다면 어느 곳이든 재방문이 어렵다.
오늘 아침 다짐은 절대 끼니를 거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1시 30분. 좀 이르긴 하지만 지나는길이니 우동 한 그릇 가볍게 해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우동이라 크게 적어놓았다. 이곳이 노포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지만 한국이든 일본이든 약간은 허름해 보이는 곳이면 뭐든지 맛있다. 저렴하기도 하다.
골목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마력
지금 이 가게가 마주한 길은 이 동네에서 그나마 넓은 길이다. 도로폭이 한 4M 정도는 됨 직하다. 100엔 미니버스가 지날 때면 눈치껏 잘 피해줘야 한다. (한국에서 그리고 한국의 건축가에게 4M 도로가 시사하는 의미는 꽤 크다.) 그리고 이 길에 닿아 있는 이면의 골목은 채 2미터가 안되어 보이는 길들도 많다.
나오시마, 특히 혼무라(本村)쪽은 이에(家) 프로젝트를 보던지 아니면 다른 볼거리를 찾아 다니기 위해서 이곳 저곳 이면의 골목길을 잘 헤집고 다녀야 한다. 이 이면의 골목은 보여지는 재료가 우리와 다를 뿐 어릴적 우리가 가졌던 그 너비와 높이를 닮았다. 높아야 2층을 넘지 못하고 단층에 기와지붕을 올려놓은 민가들이 벽을 맞대고 나열되어 있다.
우리는 오오미야케(おおみやけ)에서 만났던 아주머니를 채 10분이 되지 않아 다시 만났다. 그리고 또 그 시간 만큼이 흘러 다른 골목에서 마주쳤다. 그때마다 친절하게 인사를 나누고 지나쳤다. 아주머니는 어디를 가봤는지, 또 거기는 가봤는지 마주칠 때마다 여쭤봐 주신다. 그리고 이 섬의 반대편 베네세 하우스 지역에서도 만났으니 어지간한 인연 아닌가. 그때 마다 우리에게 해줬던 인사말이 전혀 싫지 않았다.
나는 컨트리 가이(촌놈)다. 내가 자라며 유년을 보냈던 골목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나와 같은 연령의 또래 이상이라면 누구나 그 정감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이 골목의 끝에 살고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도 알고 지냈던 때가 있었다. 때론 사소한 트집으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가는 길을 마다하고 밥도 얻어 먹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이 곳에서 내가 걷고 있는, 이 작은 골목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릴적 살던 시골 내 고향의 골목에서 항상 있어 왔던 일상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불과 몇 십년동안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하나 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밀도가 낮은 중소도시들도 기존의 도심에 다시 선을 긋고 도로를 만들었다. 그렇게 그어진 선이 지나간 자리는 기억도 없이 사라졌다. 논 밭 너머로 우뚝 쏟은 아파트는 삶의 가치 측도가 되었고 누구나 낡은 집을 하루 속히 버리고 갖춰야 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곧추 서있는 콘크리트 격자 속에서 우리는 수직이 아니라 수평이라 한다. 나의 위에 누가 있는지 모르고 나의 아래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게 아니라 관심이 없다. 우리가 정작 수평으로 살았을 때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이제는 너무나도 확실하게 전달되어 시비 꺼리가 된다. 감당할 수 있는 속도의 변화보다 더 빠르게 다가와 버린 현실이 매섭게 느껴진다. 우리가 예전에 가졌던 골목에서 이러한 일은 남사시러워 뱉지도 못했던 것들이다.
뒤늦게 나마 골목을 순례하는 이유도, 점점 사라져 가는 골목을 애써 찾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골목이 가지고 있는 매력과 마력이다.
나오시마와 구라시키에서 만난 이면 골목길은 유사하지만 달랐다.
거리상으로도 그다지 멀지 않은 두 지역이다. 이면 골목은 비슷하지만 다양한 입면들이 규칙없이 나열된다. 구라시키 미관지구의 경우 스기나 탄화를 한 목재, 회벽, 검은색 기와가 재료의 전부다. 입구 위치가 모두 다르고 집들의 높낮이도 하나 같이 제각각이다. 나오시마는 목재를 이용한 것들이 회벽으로 마감되어 있는 것들보다 그 수가 어림잡아 많아 보인다.
남과 같은 집을 짓지 않았다. 누구더러 같은 형태로 지어라 하지도 않았고 다르게 하라고 하지도 않았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유사하지만 모두 다른 나름의 개성이 있는 집을 지었다.
이러한 점은 지난 여행때 보았던 동경의 구도심 이면 골목에서 경험했던 것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이상한게 아니라 원래 자연발생적인 것들은 그렇다. 물론 지금은 사진에서 보여지듯이 저런 광경을 의도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시대적 착오 일수도 있고 필요성 마저도 없다. 수많은 건축재료와 그 재료의 다양한 쓰임과 색상에 대해서 지역적으로 규칙을 정해 놓지 않으면 어렵다. 설사 그러한 규정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기대할 것은 못된다. 우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재료와 색상의 규제가 있으면 형태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형태를 규제하고 나서면 경관이 망가졌다. 이것이 자율적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해결책이 없는 어려운 숙제다. 방법이 없을 때는 그냥 내버려두는 것도 해결일 수 있다. 지나친 간섭은 오히려 독이 된다.
그것보다는 마을의 형태, 그속에 긋게 되는 좁은 가로의 형태에 먼저 관심을 가지고 수정해 나가야 할 때인듯 하다. 골목을 좀 더 관찰하고 그 곳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동네의 모습을 상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