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츠(Takamatsu, 高松)_2
운전은 석작가가 맡았다. 덕분에 한결 편해졌다.
반면 석작가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아무래도 건축물을 둘러보고 대충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우리와는 다르게 촬영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운전의 피로감까지 안게 되었다. 사진가들의 장거리 운전은 일상다반사다. 사진은 날씨를 가리지 않고 달려 촬영 장소에 도착해서는 또 다시 오랜 기다림을 견뎌야 셔터를 누를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도 확률이 낮다. 인내해야 그리고 운이 좋아야 한 컷을 간신히 얻게 된다.
아무튼 검도4단의 석작가는 건축가 3인방의 저질 체력을 합한 것보다 뛰어나다.
봄이었다. 몇 일 비바람이 불어 봄 답지 않게 선선한 날씨가 연일 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 가끔 창을 열고 달렸다. 그리고는 머리 위 세토대교를 이고 얼마나 들어갔을까 곧 넓은 주차장에 다달았다. 히가시야마 카이이 아트뮤지엄(香川県立東山魁夷せとうち美術館_Kagawa Kenritsu Higashiyamakaiisetochi Museum)에 도착했다.
히가시야마 카이이(東山魁夷,1908-1999)는 요코하마(横浜市)출신의 일본 화가다. 일본 국민 화가로 칭송을 받은 그는 1953년 대학 동창인 요시무라 준조(吉村順三,1908-1997)가 설계한 자택에서 오랜 기간 작품활동을 한다. 요시무라 준조는 종합예술지 월간 '공간'과 공간건축(空間建築,SPACE)을 이끌던 한국 건축가 김수근(金壽根,1931-1986)의 동경예술대학 건축학과 재학시 스승이었다.
히가시야마 카이이 아트뮤지엄은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에 의해서 설계되었고, 2005년 4월에 개관하였다. 나는 이곳에 도착해서도 히가시야마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 대한 사전 정보도 없었다. 단지 다니구치 요시오의 건축 작업을 보기 위해 단순하게 접근하고 이 미술관이 보여주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히가시야마의 작품을 접했다.
지금 이 아래의 사진을 눈여겨 봐두자.
이 미술관의 장소는 절묘하다. 세토대교의 남쪽 끝자락에서 자리잡고 세토대교와 바다를 관망하게 하였다. 또한 미술관의 장면 장면은 흡사 히가시야마의 작품과 닮았다. 누가 그렇게 사진을 찍으라 설명하지 않아도 그렇게 보아라 말하지 않아도 그 곳에 서게 되면 그렇게 볼 수 밖에 없다.
진입로는 미술관과는 비스듯하게 만난다. 다른 건물의 접근과는 달리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아 좀 더 효과적이었고 단순한 입면의 외벽 석재는 작품의 색감과 유사하다. 벽면을 화폭으로 한 히가시야마의 작품은 카페의 긴 창 너머로 보여지는 풍경과 유사하다. 가늘게 세운 기둥은 화폭을 나눈 방법과 같다.
히가시야마 카이이(東山魁夷)는 두 명의 건축가 친구가 있었다. 요시무라 준조(吉村順三)와 다니구치 요시노(谷口吉郎)다. 요시무라 준조는 히가시야마가 반평생 머물 집을 설계하였고, 다니구치 요시노의 아들인 다니구치 요시오는 그의 작업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설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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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다니구치 요시오는 이런 장면을 염두 했을 것이다. 장소에 대한 해석도 그리고 자연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남겼던 히가시야마의 작품도 두루 관찰했을 것이다.
만약 히가시야마의 작품에 대해서 사전 지식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미술관 진입로 앞에 섰을 때 이미 다니구치의 이 작업과 히가시야마의 작품, 두 작품간의 닮은 꼴을 알고 감상에 열중했을텐데 아쉽기만 하다. 이제는 돌아와 이렇게 사진으로 그때의 기억을 소환하고 있다.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는 안도다다오와는 다르게 대중 언론에 잘 노출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설명 하는것도 제한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를 잘 활용하는 안도에 비해 다소 대중성이 약한 은둔형 건축가다. 미국 하버드에서 건축 공부를 시작한 그는 그렇다고 해서 언론에 대한 기피증이 있는 것 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유투브에서 그의 미국에서 이뤄졌던 인터뷰 장면(1997년 MOMA 증축 및 재건축 설계경기에서 당선 후, 뉴욕현대미술관 Glenn Lowry와 대화, 2001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분명 강호의 은둔 고수다. 모든 건물에서 숨겨놓은 디테일은 그의 고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전에도 밝혔듯이 안도의 매시브한 콘크리트에 식상해졌다면, 은둔고수 다니구치 요시오를 다시 보자.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1880)의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_God is in the details"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뉴욕타임즈가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의 서거 기사에 인용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이 간단한 문장이 떠오른다.
석작가가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우리는 세토대교를 등지고 마루가메(丸亀)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