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마츠(Takamatsu, 高松)_3
히가시야마 아트 뮤지엄을 나서 불과 20여분만에 이노쿠마 겐이치로 현대 미술관(猪熊弦一郎現代美術館)에 도착했다. 마루가메역(丸亀駅)을 이용한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좋은 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조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조합의 요소로는 건축가, 건축주 일수도 있고 장소, 자재, 구법, 디테일 등이 중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 중 건축가와 건축가에게 자극되는 그 어떤 것의 조합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이노쿠마 겐이치로(猪熊弦一郎,1902-1993)는 다카마츠(高松) 출신의 서양화가다. 그의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그림을 그리는 데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_絵を描くには勇気がいる'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1938년 도불,마티스와 만남)와 뉴욕(1955년 도미)과 같은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테마로 그의 작업은 항상 변화했다.
그리고 다니구치 요시오 또한 자신의 건축에 있어 새로운 도전과 배움을 지속해 왔으며, 묵묵히 장인의 길을 걷는 듯한 자세를 잃지 않았고 건축의 완성도를 높여왔다. 겐이치로의 용기에서 비롯된 작업과 다니구치 요시오의 지속적 배움을 통한 실현은 그 방향성이 다른 듯 하지만 건축적 이상화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것'이라는 공통점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답사기를 써내려가면서, 1993년 향년 90세의 일기로 서거한 겐이치로와 다니구치 요시오는 생전 이 미술관의 설계를 위해 만났을까라는 합리적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1991년에 개관을 했으니,
만남이 있었다면, 80대 중반의 노화가와 갓 50대에 접어든 한창 바쁜 건축가의 만남이었을 것이고,
만남이 있었다면, 아마도 견해차로 첨예한 대립이 있었을 것이고,
만남이 있었다면,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공감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화가와 건축가의 만남이 있었을까' 라는 가정의 해답은 이곳에 있었다. 미술관 시설 소개(www.mimoca.org)에서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 아티스트와 건축가의 이념이 잘 구현되었다'고 적고 있는 것으로 봐선 대화와 공감이 충분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70년대 아버지 다니구치 요시노의 공동작업에서 벗어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다니구치 요시오의 건축적 색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의 초기 작업은 덩어리에 집중하고 있다. 장식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절재된 매스는 모더니즘 그 자체였다. 순수 기하학적 형태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었고, 굵은 프레임과 재료에 의한 표면의 격자 정도만이 존재했으며, 이 순간은 일본이라는 지역적 색채는 없었다.
이 당시 그의 작업에서의 결여된 장소성과 상징성을 미국에서의 서구적 모더니즘 체험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시나노미술관(히가시야마관_長野県信濃美術館・東山魁夷館_1990년에 증축)에서 부터였다. 재료의 물성이 다양해지고 그로인해 입면의 텍스춰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노쿠마 겐이치로 미술관에서 정면성이 강조된 판상의 프레임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이전의 모더니즘을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 도요타시미술관(豊田市美術館_1995년 개관)에서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다. 하지만 이전과 사뭇 다른 것은 얇은 판상의 프레임 장식이 전면에 더해졌고, 외피의 하얀 반투명 접합유리는 새로운 시도였다.
이후 1999년 호류지보물관(法隆寺宝物館)과 2004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정면성은 다시 강조되어 판상의 프레임은 리바이벌 된다.
깊은 프레임, 판상의 지붕, 세장한 기둥, 우회진입은 다니구치 요시오의 특징이 되었다.
* 히가시야마 카이이(東山魁夷)는 다니구치 요시노(谷口吉郎)의 친구로 전한다. 히가시야마관을 증축에 요시노의 아들인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를 추천한 이도 히가시야마 였으며, 이후 히가시야마 카이이 아트뮤지엄(香川県立東山魁夷せとうち美術館)까지 작업하게 된다.
히가시야마 카이이는 두명의 건축가 친구가 있었다. 요시무라 준조(吉村順三)와 다니구치 요시노(谷口吉郎)다. 요시무라 준조는 히가시야마가 반평생 머물 집을 설계하였고, 다니구치 요시노의 아들인 다니구치 요시오는 그의 작업을 전시하는 미술관을 설계하였다.
우리는 미술관을 나와 좌측의 좁은 도로 너머 다니구치 보다 더 모더니티에 충실하고 슬레이트의 물성과 패턴을 잘 살린 그리고 비례마저 적절한 작은 건물을 보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땅과 재료에 의해 만들어진 '건축가 없는 건축'이다.
게이트 광장 초입의 계단에서 몇일간의 여정이 힘들었던지 초췌한 단체 사진을 남기고 다시 이동한다. 이제 곧 해는 질 것이다.
다음 여정이 명확하지 않다. 오늘밤 숙박도 정해 놓지 않았다. 예정대로 고치(高知)로 갈지, 아니면 이번 여행에서 가장 먼 곳인 유스하라(梼原)로 곧장 달릴 것인지 가늠이 서지 않는다. 오늘 저녁부터 지긋지긋한 비 예보도 있다.
일단 어느 곳으로 가던지 멀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으면 최소 2시간 이상을 가야한다. 남쪽으로 난 산길은 수려한 계곡을 끼고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이어진다고 한다. 이것도 빠뜨릴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이 모든 판단은 지나는 길에 만날 우동집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현명한 판단을 위해서는 탄수화물이 필요하다. 그것도 큰 그릇 가득 담긴 우동이 필요하다.
역시 주린 배를 채우고 날카로움은 사라졌고, 더욱이 현명(?)해졌다.
우리는 한적한 '구름 위의 동네' 유스하라(梼原)로 간다. 그곳에는 구마겐코(隈研吾_1954生)의 작업이 있다. 40살의 구마겐코, 50대의 구마겐코 그리고 오늘의 구마겐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