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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Mar 25. 2020

2018년의 기록

폐암투병 4년차

<1월 5일>
우리는 갈치조림을 기다리고 있어요^^
오늘 점심시간. 남대문시장에서 남편과 나 동찬이 셋이 손잡고 남대문과 명동을 걸어다닌 행복했던 오늘.

<1월 23일>
남편은 2주전에 5사이클째 항암을 그야말로 무사히 마쳤다. 이번주 목금이 진료. 지금 상태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되어 걱정을 덜고 주말에 우리가족들과 아가씨 가족들, 시이모님과 삼촌들을 모시고 시어머니 칠순 생신 모임을 조촐하게 갖기로 했다.

<1월 30일>
요즘 남편이 항암 못하는 때가 많아서 거의 매주 병원을 가는데 매주 병원가는 길에 막내가 함께 한다. 덕분에 혈액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항암을 못하게 되어도 평정심을 갖게 된다. 자녀가 주는 힘은 실로 놀랍다. 사랑하는 아들 밝고 행복하게 살자^^

<2월 3일>
남편은 어제 항암 마지막 사이클 day1 주사를 맞았다. 다음주에 day8 주사를 맞으면 항암은 이제 끝. 남편과 우리가족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는데 요즘 내 마음이 저리고 이상하다.
항암주사는 4시간 30분 정도 맞는다.
평창에서 나서 도계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강릉에서 학교를 다닌 남편과 강원도 바다를 보아야지!

<2월 24일>
사랑하는 여봉봉!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요!
아파도 지금처럼 우리 오래오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요^^
세상에서 제일 든든한 사람 사랑합니다.

<3월 6일>
 내일은 진료. 다 괜찮을 것이라 마음으로 평화를 그려본다. 한분 한분 쑥쓰럽고 부끄러워서 고맙다는 말씀을 차마 못드리고 요즘은 기도를 드린다. 주님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희에게 손내밀어 저희와 함께 하시는 그 모든 분들에게 강복하소서...저희가 굳건히 이겨내게 하소서...

<3월 14일>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남편은 뇌전이가 확인되었고, 3년전 맨 처음 항암제였던 표적치료제를 비급여로 먹기로 합니다. 갑자기 성격이 난폭하게 바뀔 수도 있고, 말이 어눌해질 수도 있습니다. 보행이 이상해질 수도 있고요. 물론 현재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뇌전이가 쉽지 않다는걸 압니다. 그래서 바짝 긴장이 됩니다. 했던 항암을 다시 해서 효과를 본 걸 본 적은 없습니다만 효과가 있기를 기도해봅니다. 어른들께는 그냥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어디가서 오늘은 울고 싶지만 다시 심호흡을 합니다. 잠시 뒤면 다시 씩씩하도록 마음을 리셋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

<3월 20일>
며칠 전 다시 한번 이야기 나눈 나와 남편의 목표는 저 할머니, 할아버지 괜찮은 사람들이야 하고 싶도록 늙어가며 살아내는 것이다.

<3월 22일>
다하고 나선 힘들어 했지만 방금 전에 저녁 반찬으로 남편이 만든 닭볶음탕. 나는 닭고기를 안먹으므로 먹어볼 순 없지만 좋아요 좋아!


<4월 9일>
오늘은 병원 진료일. 장하다 내남편!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주시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느끼며 사는 일은 참 거룩합니다^^ 무탈하고 평온하게 항암제를 받고 병원을 나섭니다. 기쁘고 행복한 날입니다 야호호!

<4월 12일>
월요일 남편 진료를 받고 평창으로 가서 대상포진을 앓고 계시는 시아버님을 뵙고, 오늘 다시 병원으로 와서 남편이 협진받고 있는 과 진료를 받고 지금 집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며칠 동안 일산 평창 횡성 다시 일산을  돌아 다니고, 횡성읍 장날 구경도 하고. 남편 컨디션이 떨어지면 안되어서 천천히 이동을 하며 다녔다.
올라올 때 눈이 와서 우리 둘 다 겨울옷을 입고 왔었는데 다니다보니 완연한 봄날이다. 겨울은 정말 안녕. 봄이 왔다.

<5월 1일>
봄볕이 쨍한 오늘은 막내 체육대회. 몇년만에 남편도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에 앉아있다. 남편은 망중한이라고 했다.

 <5월 9일>
병실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예요. 새항암제를 찾아야해서 조직검사 새로 받아야하거든요. 남편왈. 약값 굳었다. 하루 한알 3만원짜리 약 안먹게 되었잖아. 마누라왈, 약값 굳은걸로 한달 동안만 하루에 3만원어치씩 맛있는거 사먹자.

<5월 11일>
슬기로운 감빵 생활....아니아니 슬기로운 병원생활입니다.

<5월 23일>
"운명의 날 같아서 병원 가기 떨린다".
어제 남편이 내게 한 말. 떨리기는 나도 마찬가지이면서 짐짓 안그런척 "다 잘되겠지. 걱정을 왜 미리해.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했놓고서는 정작 나는 잠이 안온다.
조직검사는 암 확진 받을 때만 하는게 아니라 약을 찾아야할 때마다 이루어지곤  한다. 지난번에 새로운 항암제를 찾기 위해  차세대염기서열분석 기반 유전자 패널검사, PD-L1 검사 이런 조직검사들을 했고 오늘은 결과를 보러가는 날이다. 맞는 약이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있으면 있어서 없으면 없어서 우리 삶은 또 어떻게 될런 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이 원래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니 그냥 아무 생각없이 남편 손꼭 잡고 가야겠다고 생각해본다. (그러나 속으로는 주님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하면서...기도하고 있다...)

<5월 24일>
임파선 전이된 곳에서 세번을 조직검사 했는데도 암세포 검출이 안되었대요. 그래서 호흡기내과에서 염증 반응을 보기로 했답니다.
원발암 폐도 그렇게 많이 커지진 않았고 간이나 뼈에 있는 녀석들도 크기 변화 없이 얌전하게 있었고요 뇌에 있는 병변은 크기가 작아서 지난번 먹던 항암약을 계속 먹기로 했어요.
남편과 둘이서 손 꼭 잡고 이게 다 많은분들이 함께 기도하고 응원해주시고 평화를 주신 덕분이니 우리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착하게 착하게 살자 했답니다.
지금 결과가 괜찮다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또 안좋아질 때가 온다고 좌절하지도 않고,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깊은 나무처럼, 순리대로 흐르느라 세차게 일렁이지 않는 물결처럼 늘 평화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겠습니다.

<6월 6일>
오늘은 아주 기쁘고도 역사적인 날.
오늘부터 아침에 자주 남편이 마당 텃밭에 물을 주기로 함. 작년 이맘때에는 밥도 못먹었는데... 3년만에 호스잡고 물주기! 고마운 날.
남편님 사랑합니다

<6월 20일>
잘 유지가 되고 있어서 항암약을 새로 받고 집으로 출발했다. 두달 뒤면 남편 폐암투병 만 3년이 된다. 4년 동안 우리는 많은 우여곡절과 드라마틱한 변화들을 경험했다. 만 5년이 될 때 공로패를 만들어서 달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준단다 ㅋ
더하여 나는 한계가 많은 인간이라 내 힘을 벗어나는 그 모든 일들을 내가 어떻게 했겠냐면서 교리 공부 마치고 세례받을 때는 성당에 와서 봐달라고 하니 그것도 알았단다.
모든 것이 감사한 오늘 하루.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간다.

<7월 12일>
며칠 비가 오다가 날이 무더워져서 그런 지 남편 컨디션이 요며칠 내내 좋지가 않다. 기억은 불쑥 들이닥치곤 하는 것이라 지난해 여름에는 남편이 몹시 아팠으므로, 남편이 휘청거리던 기억, 벽을 붙잡고 꺽꺽 대던 일들이 떠올랐다. 호스피스로 전과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하던 순간도 떠올랐고, 잠시 머물던 일산의 무덥고 습한 아파트의 불쾌하게만 느껴졌던 공기도 함께 떠올랐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이 견딜만해졌고, 겨울과 봄에  어느 때보다 더 잘 지냈는데 무더위여서 기운이 떨어지는 것인 지, 항암약이 효과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기운이 없는 것인 지, 내 머리속이 바쁘기만 하다. 약효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무더위여서 기운이 떨어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사람도 이런 무더위는 힘든데 그럼 그렇겠지 그랬으면 좋겠다.
다음주는 검사와 진료가 있다. 무사히 지난번과 같이 그렇게 병원 문을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무더위를 잘 버티고 이겨낼 수 있기를... 조금 덜 더워주기를.

<7월 18일>
우리는 오뚝이라서 이번에도 잘 헤쳐나가게 될 거예요. 뇌전이, 간전이, 임파선 전이, 원발폐암 모두 커졌어요. 주치의선생님께 들어갈 임상이 있을까요 여쭈어보니, 있으면 벌써 들여보냈게 하시면서도 임상간호사 불러서 임상조건을 확인하시고 한참 모니터를 응시하시더니 모제약사 임상 대기를 걸어놓으라고 하시네요. 입원해서 조직검사와 맞는 항암약 찾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약간 멍한 기분은 들었지만 남편도 저도 평범한 여느 날처럼 크게 마음의 동요를 겪지 않았어요. 벌써 4년차. 우리는 이보다 더 더 더한 상황도 잘 거쳐왔으니까요. 모두 다 잘될거예요. 우리는 전설의 오똑이 부부니까요!

<8월 1일>
젬자+카보플라틴 조합으로 남편 표준항암 오늘부터 다시 시작. 1일차 8일차 주사맞고 1주 쉬는 사이클. 잘맞으면 4-6 사이클 정도 간다고 한다. 그저 부작용없이 무사히 사이클을 잘 마칠 수 있기를. 지난해 백금계 항암 덕분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니 오! 이번에도 잘되기를!

<8월 6일>
8일에 2주차 항암주사를 맞아야하는데 이번 항암이 힘든 지 남편이 이제는 항암도 안하고 병원도 안다니고 싶다고 한다. 아주 최악이었을  정도까지 나빠진 것도 아니고 몸서리치며 구토해대던 지난해만큼의 부작용이 있는 것도 아닌데 지난 겨울부터 올해까지 너무 잘 지내왔던 것에 균열이 생겨서 마음이 힘들어졌나보다. 안할 때 안하더라도 의사선생님께 안한다고 말도 하고 병원은 계속 다니면서 상태변화는 점검을 해야지 하고 말했는데 그런 생각하기가 귀찮고 싫은가보다. 왜 안그러겠는가.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나도 우울하고 슬프고 맥빠지는 순간이 많은데 당사자는 더더욱 그렇겠지... 내일은 남편의 기분도 컨디션도 나아지기를... 내가 더 힘을 내야지.

<8월 16일>
우리는 오늘 병원에 가야하고 누나들은 개학일. 항암하는 날은 아니라서 막내랑 함께 병원으로 출발. 놀러가는게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그래도 같이 가니 기분은 좋네요!

<8월 21일>
내가 식당 사장이 되어 엄마 아빠 돌볼테니 백살까지 사세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아빠 건강하셔야해요. 요즘 막내가 들려주는 말들. 80세까지만 살면 안될까? 안돼욧!  아이 마음속 두려움이 느껴져 코끝이 찡. 사랑하는 아들 걱정하지마. 백살까지 백세시대잖아.
매주 병원, 한달에 네번 병원. 내일도 병원으로 출발. 일상. 네네네 마실가듯이 보무도 당당하게 다녀옵시당.

<8월 22일>
호중구 수치가 300. 백혈구 주사 맞고 항암은 패쓰. 날마다 고기를 먹여야겠다.

 
<8월 30일>
백혈구수치가 300에서 4500으로 껑충.
(이게 다 마눌님 정성 덕분이라고 말해주오 여봉봉^^)
협진진료가 지연되면서 어제 저녁 7시 30분이 되어서야 항암 주사 마무리
(이번에 맞는 항암 주사 소요시간은 4시간~4시간 30분 정도)
비가 엄청 내린 날.



<9월 4일>
저는 날마다 힘을 냅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됨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15년, 16년, 17년을 지나 2018년. 벌써 4년입니다. 날마다 소중한 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벌써 4년이 되었네요. 내일도 항암인데 벌써 6주 연속 매주 병원행입니다. 사랑하는 남편. 요렇게 2030년 2040년까지 가봅시다^^ 아자아자!

<9월 5일>
아침 8시에 집에서 출발해  day 8항암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남편과 나. 소중한가족. 열심히 살아야지.

<9월 15일>
내가 일을 마친 저녁 10시. 남편이 축제장으로 왔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우리 동찬이가 신나게 걸었다. 지난 몇년 동안 아파서 남편이랑 축제에 와 볼 수 없었는데... 아이들은 레드벨벳 보았다고 환호성. 나는 남편과 걸어서 환호성. 하여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축제! 빰빰빰

<9월 17일>
터미널에서 지인을 만났어요. 지인께서 진희씨가 "극진히" 살핀다고 하시니 남편이 "박진희"가 살핀다고 농담을 하네요

<9월 19일>
네네네 다 좋아요. 다만 뇌전이 부위에 부종이 있어서 환자를 혼자두면 안된다는 엄명이 있는 것 빼고요. 역시 남편과 저는 바늘과 실처럼 떨어지면 안될 운명! 어디 가게되면 남편을 호주머니에 넣어서 가야할까봐요!

<9월 26일>
무주에서 우리가족 다같이 짜장면을 먹었다.

<9월 27일>
남편이 먹고 싶어해서 남대문 시장에 있는 닭곰탕집에 왔다.

<9월 28일>
우리 앞에 항암 대기자 무려 50명...무서운 명절 뒤.

<10월 6일>
남편이 입원했을 때 친해졌던 제주도 언니가 있다. 큰 딸 별명이 만두여서 언니는 나를 만두라고 부른다. 아저씨가 하늘에 가신 후에 연락을 주고 받기가 어려웠다. 어제 언니가 오래간만에 전화를 주셔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만두야 내가 네 마음에 힘이 되는 말들, 마음에 힘으로 남겨질 말들을 해주어야 하는데 어떻게 되었나 겁이 나서 전화를 이제야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나는 네가 얼마나 힘이 들 지 잘 안다."    
이 말이 내 마음에 남겨지는 힘이 되는 말이 되어주리라는 걸 언니는 아실까? 언니 저 안 힘들어요 잘 지내고 있어요 하니 한결같이 웃으니까 좋네 하셨다.
며칠 전에는 누군가와 인생장학금이라는 말을 나누었다.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인생장학금을 주어야 한다는 그런 말이었는데 마음에 힘이 되어주는 말 한마디를 주고 싶다는 제주도 언니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장학금 같은 것. 오늘도 씩씩하게!

<10월 11일>
우리는 응급실. 로비에서는 국립암센터 파업전야제 중이고... 한편으로 밀려오는 걱정... 노조응원합니다. 지지해요! 그래도 빨리 교섭이 잘 타결되었으면...

<10월 15일>
이제 다시 있을 지 알 수 없는 새로운 약을 찾아야하는 암투병 4년째 남편의 마음은 어떨까. 요즘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꿈속에서 뭔가를 계속 하나보다. 심할 때는 어떤 동작과 말을 하느라고 3분마다 깨고 괜찮을 때는 10분 정도마다 깬다. 노래도 하고 기타도 치고, 버스도 타고, 누군가를 걱정하기도 한다. 어제는 자다가 소리를 막 지르길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누가 돌을 던진단다.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파한다.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자다깨다 한다. 덩달아서 나도 옆에서 자다깨다 한다. 나는 요즘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씩씩했었는데 긍정의 여왕이었는데 마음 어딘가부터 무너져내리고 있는 것처럼 내가 굉장히 무기력하게 느껴진다. 뭔가 다 잘못 해온 것처럼. 그저 아둥바둥했던 것처럼. 내가 어디 한두번 넘어졌었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지. 남편이 대장간 일을 배워보고 싶단다. 불 앞에서 쇠를 두드릴 수 있는 힘을 만들어가봐야지. 그래야지.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힘을 내며 결심.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 가족에게 평화가 가득하기를.

<10월 22일>
입원하는 낭군님. 우리 잘하고 퇴원합시다! 아자아

<10월 24일>
언제나 우리 가족의 사랑을 담고 계신 낭군님. 사랑합니다^^

<10월 24일>
우리 둘 다 너무 꾀죄죄하다. 그래도 괜찮다. 조직검사 잘 마치고 퇴원하니까. 그대와 나는 아름답소 ㅎㅎ

문재인 케어 덕분에 병원비는 무척 싸졌는데 맞는 약을 찾기 위해 하는 조직검사비는 어마무시하다. 퇴원하면서 낸 병원비의 90%가 조직검사비다. 의보가 적용되는 검사와 그렇지 못한 검사, 비급여 검사를 해야되니 어쩔 수 없기도 하다. 최근 몇개월 동안 다른거 다 빼고 조직검사비로만 수백을 써야했는데 하나씩 하나씩 새로운 조직검사들이 급여화되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해볼 걸 다해보아서 앞으로 해당이 없겠지만 다른분들에게도 절실한 문제니까 말이다.
돈 많이 벌어야하는데! 로또 좀 당첨되보면 좋겠다. 실없는 농담을 남편과 주고 받은 오늘. 병원 가깝게 서울에 올라가서 어디 취직을 해서 돈을 벌까보다 실없는 고민을 해본 오늘.  여기까지도 헤쳐왔으니 앞으로도 헤쳐나갈 수 있겠지. 아무렴 아무렴. 스스로 토닥토닥하며 충전 중.

<11월 6일>
지난주 며칠 반짝 너무 좋은 남편 컨디션에 속았다. 항암 안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깨와 복부통증. 며칠사이 팔을 아예 못움직이던 그때처럼 되어가고 있는 기분... 아이들 어릴 때 그때처럼 우리 파릇파릇해집시당!

<11월 12일>
오늘 아침 일찍 병원에 가야해서 어제 올라왔다. 병원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거장으로 걸어가는 길. 평소같으면 내가 재잘재잘 거렸을 텐데 오늘은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10월에 조직검사를 한 결과가 계속 지연되면서 오늘 병원에서 결과를 들어야하는데 맞는 약이 있을 지, 없으면 도세탁셀이라는 주사 항암을 하게 될텐데 이걸 해야하는 지 외려 부작용만 겪고 힘들어만 하게 되는 건 아닌 지, 항암을 안하는 것으로 결정해야 하는 지, 환자인 남편의 마음은 어떨 지 몰라 차마 말을 못하고 남편 손만 잡고 그냥 걷기만 했다.

병원에서 친해진 어르신 부부가 계시다. 지난번 내가 세례 받을 때 오시고 싶어했는데 너무 먼길이라 미리 성물을 선물로 주시며 축하해주셨다. 세례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휴대폰으로 보내드렸는데 오늘 우리 진료일에 맞춰 일부러 병원까지 걸음해주셨는데 이렇게 보내드린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서 선물해주셨다. 기쁠 때나 슬픈 때나 아플 때나 결혼 서약의 약속을 지키는 부부로 살아가자는 카드도 함께 주셨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여러 경우의 수를 말씀해주셨다. 아이들 얼굴과  살뜰하게, 과분하게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수많은 분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선생님께서 더 생각할 일주일의 여유를 줄까요 하고 물어보셨고 남편은 그런 시간이 주어진다고 결정을 더 잘할 것 같지 않고 고민이 계속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도세탁셀로 새로운 항암을 시작했다. 다 자란 머리는 조만간 다시 다 빠진단다.

항암을 마치고 나왔다. 집에 가는 차는 없다. 내일 가야지. 손을 잡고 걸으면서 고기를 먹어야해. 곧 호중구 수치가 낮아질꺼야 하고 이거 먹자 여기가서 먹자 내가 재잘거렸다. 2018년 11월 12일 새롭게 시작하는 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에도 한결같이 사랑할게요. 오래 오래 행복하게 같이 삽시당!

<11월 19일>
오늘은 남편 항암하는 날. 어제 집안 결혼식 때문에 같이 왔던 아이들 먼저 내려보내려고 했더니 남편이 병원 같이 가고 싶다고 가족대부대로 병원으로 출동. 이제 집으로 가고 있다. 무척 바빴던 주말. 소중한 날들

<11월 22일>
막내 담임선생님께서 국어 시간에 아빠를 소개하는 글을 썼다고 보내주셨다. 아빠 생각하는 막내도 예쁘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신 담임 선생님도 너무 감사해서 코끝이 찡하다.
어제는 마을 언니가 코 끝 찡한 편지에 커플 파자마를 선물로 주고 가셔서 저녁에 한동안 먹먹했는데...
병원가는 길. 튼튼해집시다 낭군님.
우린 열심히 잘 살아야해요오오오!



<11월 30일>
의료난민. 가까운 병원에서는 해결이 되지 않으므로 메이저 병원을 다니는 일. 일주일에 2,3일을 병원 오가는 일에 쓰다보면 나머지날들에 할 일을 전력투구해야하는데 최선을 다해 보지만, 사람들의 배려와 이해가 있어도 집에 환자가 있어 그렇다는게 핑계거리로 보여질 때가 있을 수 있다는 불편함이 늘 마음에 자리잡게 된다. 의지와 조건은 다르므로 스스로 일을 맡지 못하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일도, 주어지는 일도 줄어드는건 당연한 수순. 경제력 상실은 필수. 의료난민 안하려고 서울에 갈 수는 없는 일인데 어떨 때는 속으로 병원 다니는 일이 엄청 수월해질텐데 가면 할 일이 널렸는데, 오라는 데도 많을텐데 부질없이 궁시렁궁시렁하게 된다. 많이, 오래 자고 싶은데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 오늘.

<12월 3일>
오늘 항암 주사를 맞은 뒤에, 함께 우산을 쓴 남편과 첫째의 어여쁜 뒷모습.



<12월 4일>
남편 몸무게가 70kg이 되었다.
몸무게로만 보면 아프기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진통제 용량도 좀 늘고, 갈비뼈 통증도 있지만, 물도 못마시고 살이 계속 빠지기만해 53, 54kg였던 시절을 지나고 지나와 몸무게가 70kg이 되니 내 기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오늘 어떨 지 내일 어떨 지 사람의 일은 아무도 모르고, 암이라는게 좋아지다 나빠지다를 거듭하지만 체력이 확보되면 나빠져도 버틸 힘이 생긴다. 그 버틸힘을 가지게 된 것이 무엇보다 무척 기쁘다. 연말 연시 각종 시상식이 있으니 내게 간병대상을 달라고 농담으로 남편에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의 기도, 물심양면의 도움과 가족의 사랑, 하느님의 보살핌, 남편 자신의 의지가 지금까지 남편을 이겨내고 살게하는 힘이었다는 것을. 마음을 위로해주고 다잡게 해주시는 신과 늘 응원해주시는 많은 분들과 밝은 우리 아이들과 남편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무슨 수상 소감같다.

<12월 9일>
오늘은 결혼기념일이예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살 때나 못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날.

<12월 11일>
차가 오르지 못해 뚜벅 뚜벅 걸어서 집에 가는 길. 항암하고 오는 길인데 이러다 아프면 어쩌나 하는 마눌님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는 듯 흰눈을 맞으며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 언제 보아도 좋은 남편의 뒷모습.



<12월 15일>
남편과 둘째의 문자 ㅍㅎㅎㅎ 남편은 항암부작용과 통증에 나는 감기에... 낮에는 괜찮은데 새벽마다 저절로 콧물과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이거 보면서 웃어야지



<12월 17일>
의사선생님이 자면서 말하는건 괜찮다고 하셨다. 남편은 자면서 수시로 어떤 말들을 한다.  진통제 때문이겠지. 방금 전에는 오징어는 안돼하고 말했다. 내가 조용히 왜하고 물었더니 반찬으로 안돼. 카드놀이 중인데 난 야채를 고를꺼야라고 대답했다. 남편을 깨워서 했던 말을 알려주고 이 새벽에 둘이서 깔깔 거리며 웃었다. 남편이 요며칠 전부터는 거의 하루 종일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렇게라도 웃으니 좋네. 이번 항암제는 2사이클을 했는데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아니 없다. 우리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비급여 약을 쓰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 이제 항암제는 더 쓸 것이 없다. 나는 요즘 도통 잠이 안온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겠지. 어딘가에서 빛한줌 들어와 서서히 밝아지겠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용기를 가득 가득 모아본다.

<12월 24일>
예상이 빗나가면 좋은데 그렇지가 않네. 항암은 효과가 없었고 나빠졌다는 소식. 나도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어요. 여기까지 왔다 싶으면 도로 저 멀리로 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하죠, 그래도 도로 돌아가는 힘보다 여기까지 왔던 힘을 더 믿으며 앞으로 잘 헤쳐가봐야지. 바닥을 도로 쳤으니 다시 올라가봅시다. 다 잘될꺼예요!

<12월 28일>
막내를 데리고 올라왔는데 날마다 막내의 말한마디에 웃는다.

"엄마, 황토 불가방 가보고 싶어" (으응? 황토 불가마야 ㅎ)

"엄마, 내가 심폐소생술 보여줄까? 엄마 명태가 어디쯤이지?" (으응? 명치야. 그런데 명치를 누르려고? ㅎ)

내 휴대폰을 들고 오케이 구글을 아무리 외쳐도 내 목소리가 아니라 구글 작동이 안되니까 막내가 말했다. "오케이구글 나 박진희 아들이야!" 박진희 아들이라고! 구글 앞에 왠지 내가 재벌이라도 된 기분.

막내가 심심할까봐 노트북을 켜고 한글로 문서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는데 막내가 마지막으로 쓴 문장. '누나 보고싶어'  그러다가 아, 잘못썼다하고 붙인 느낌표, '누나 보고싶어!!!!' 마음이 찡.

새벽마다 깨서 일을 해서 잠이 안오는 건 지, 잠이 안와서 새벽마다 일을 하는 건 지, 어쨌든간에 요즘은 늘 새벽에 깨어있게 된다. 잠을 좀 자보자.

남편 통증 조절이 잘 안되고 있다. 힘든 시간이 올 것이다. 그래도 경험을 해보았던 시간들이 있으니 그 때보다 잘 대처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본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에도 늘 사랑합니다. 낭군님 잘 이겨내봅시다! 마당에 정원도 만들어주고 화덕도 만들어주기로 했던 거 잊지마시고 우리 백년해로 해야죠! 오늘도 평화를 빕니다.

<12월 29일>
여러분 당분간 저희와 접촉을 삼가합시다. 남편이 항암부작용으로 결핵이 왔네요. 2일 4일 8일 줄줄이 병원 일정이 잡히네요. 결핵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크리스마스씰만 생각나요  약 복용이 시작될 때까지 혹시 모르니 누구든 만나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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