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신물로 샤워하면서 찬공기를 느껴봐

아껴주지 못해서 그동안 미안했다 내 몸

by 김뚜라미

사람들이 잘 - 지내냐고 물을 때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내 일상에서 진행되는 일들이나 상황들이 잘 풀리는지 아닌지에 대해서 얘기해왔던 것 같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을 잘하는지, 얼마 전에 구한 헬퍼는 어떤지, 전업으로서 해내야 할 일들을 어려움 없이 잘하고 있는지 등등 모두 내 주변 것들의 안위가 곧 내 안부였다.


힘겨운 새벽 등원을 마치고 나를 위해 최소한의 운동을 한다. 그리곤 목덜미와 등뼈를 타고 졸졸 흐르는 땀줄기에 새삼 뿌듯해하며 뜨거운 물을 콸콸 틀어 더러운 것들을 모두 떠내려 보낸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샤워가 대체 몇 년만인 건지 너무 황홀하고 행복했다. 뜨신 물줄기가 샤워실을 금세 온기로 가득 채워주고 온몸이 후끈하게 부드러워졌을쯤 옆에 있는 창문을 반쯤 연다.


시원하고 서늘한 칼바람이 훅 들어와 코끝부터 발끝까지 청량함을 끼얹어준다. 스무 살 초중반에 혼자 자취하던 시절, 한겨울에 난방을 빵빵 틀고 따뜻한 전기장판에 쏙 들어가 창문을 반쯤 열어둔 채 귤을 까먹으며 느꼈던 시원함. 시원함이라는 말로는 모자란 해방가 득한 상쾌함. 그 기억이 샤워를 하면서 소환되어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과 만났다. 향기로운 샴푸와 바디워시의 거품과 함께 웃음 짓게 되는 시간이 생겨나서 너무 감사하다. 한국에서의 샤워는 거의 군대식에 가까웠다. 아침엔 회사준비를 하느라, 저녁엔 낮시간동안의 엄마의 부재를 한시바삐 메꾸기 위해 늘 10-15분 안에 샤워를 마쳤다. 머리 말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내내 길었던 머리도 단발로 자른 지 오래다.


이젠 샤워바스에 이어 틈틈이 때밀이도 하고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내 돈 주고 산 헤어컨디셔너를 창문을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는 순간 머리에 도포한다. 심지어 어떤 제품을 사야 할지 몰라 마트에서 집히는 대로 사온 올가닉 제품이지만 나를 아껴주는 시간이 몇 분이라도 확보되고 늘어났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에게 고마웠다. 날 돌볼 사람은 나뿐인데 너무 달려오기만 했구나. 해야 할 일들이 중요하긴 하지만 때론 좀 늦어도 되고 그게 정말 나보다 최우선인지도 한 번씩 돌아봤어야 하는데. 내 스스로의 고집과 아집이 큰 문제일 텐데 샤워하면서 찬바람 쐬는 이 순간처럼 나를 무장해제하는 시간을 늘려가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는 건 테스트도 아니고 시간 안에 마쳐야 할 과업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니. 나도 아이도 남편도,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선 ‘나도’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