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고향 교보문고 꼭 살아남아줘
요 며칠 심한 인후염으로 목소리와 기력을 잃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묵언수행하며 누워 지냈다. 해가 좀 나는 것 같길래 가까운 마트에 잠깐 다녀오려고 집을 나섰는데 이게 웬걸 생각지도 못하게 너무도 뽀송하고 환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마치 벌써 봄의 정중앙에 온 것처럼 귓가에서 샤랄랄라라~ 배경음이 흐르는 것 같았다. 날씨를 확인해 보니 25도. 이게 내가 사랑하는 홍콩의 기후였는데! 하다가 갑자기 광화문이 생각났다. 이 날씨엔 수업 빼먹고 경복궁 한복판에 비스듬 드러누워 맥주 한 캔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학을 떠난 지가 십 년도 더 지났는데 여전히 날씨가 좋은 날엔 따사로운 광화문이 생각난다. 북촌과 삼청동으로, 덕수궁과 경복궁으로, 영화관과 서점으로, 그때 나와 함께 행복의 도주를 감행했던 정다운 친구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대낮에 뛰쳐나가 길거리에서 웃고 먹고 떠들다가 새벽녘까지 끊임없는 수다와 함께 광화문에서 관악까지 몇 시간에 걸쳐 걸어온 젊고 푸릇한 기억들.
중학교 3학년쯤 전학으로 헤어진 친구와 중간에서 만나자고 하곤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이 광화문 교보문고였다. 우리 둘 모두에게 광화문은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중앙의 세종대왕 상을 기준으로 종횡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도로와 높게 들어선 건물들이 굉장히 근엄해 보이기도 했다. 유흥과 상업의 느낌으로 점철된 강남역과는 차원이 다른, 고유한 단정함이 있는 곳. 그때부터인가 광화문은 내게 힘들 때마다 찾는 곳이 되었다. 자유시간이 생기거나, 혼자 카페서 책을 읽고 싶거나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정처 없이 광화문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서는 더욱 발길이 잦았다. 교문 앞에서 501번이나 750번 버스를 타면 한 번에 광화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버스가 상도터널을 지나 한강대교를 건너 사대문으로 향할 때 느껴지는 감정들이 구역별로 조금씩 달랐다. 특히 낮 시간 해가 쨍할 때 한강대교를 넘어갈 때면 한강으로 쏟아지는 햇살이 버스 창문에 강하게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가 된다. 그때 눈을 질끈 감으면 마치 사차원 세계로 내가 넘어가는 듯한 기시감마저 들었다. 눈은 시렸지만 마음은 무엇보다 따스한 상상의 세계로 내달렸다. 강한 햇살에 불그레 달궈진 볼과 따뜻해진 정수리가 흐물흐물해진 내 자아를 더욱 팡팡 뛰게 만들었다. 내 글쓰기와 감수성은 그때 절정이지 않았을까 싶다.
도착해서 어디부터 갈까 매번 행복한 고민을 했다. 아모카에 가서 책을 하나 읽을까, 아님 종각 근처 널찍한 커피빈으로 갈까. 씨네큐브에선 지금 무슨 영화 상영하지? 이거 보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네. 그럼 스펀지 하우스 가면 되겠다! 영화 보고 나와서 덕수궁 앞 던킨에 들러 제일 좋아하는 던킨커피랑 스트로베리필드 도넛 하나 사 먹고 경복궁까지 걷자. 그리곤 종로타워 탑클라우드에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만나러 가자. 저녁엔 닭한마리 칼국수에 소주가 딱인데 누구한테 연락해 볼까.
매 순간이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처럼 반짝였던 것 같다. 잘 놀 줄 모르는 범생이라 클럽 같은 곳은 별로 가본 적이 없지만 나는 그저 광화문에서 충분히 행복하게 놀았다. 넓고 평평한 길도 너무 좋았다. 학교가 산에 있어 비탈길을 매일 오르락하다가 태평로를 걷다 보면 발에 날개를 단것처럼 가볍고 날아갈 것만 같았다. 블록버스터 급 영화는 큰 극장에서 누군가와 함께 보는 게 익숙했다. 그런데 마음으로 아껴둔 독립영화나 재상영 영화들은 계획 없이, 팝콘 없이 혼자서 조용히 보는 게 좋았다. 영화 상영 전에 미리 가서 팸플릿들을 마음껏 훑고 기대하는 시간조차 혼자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대부분 좌석이 꽉 차지 않기 때문에 준비해 간 티슈를 몽땅 쓸 만큼 훌쩍여도, 숨죽여 꺽꺽 대도, 미친 사람처럼 깔깔대도 어둠 속에서 나는 진짜인 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극장을 비롯해서 광화문에 취직한 동아리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소개해 준 숨겨진 카페나 멍 때리기 좋은 스팟, 벌렁 드러누워 하늘 보기 좋은 벤치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 들었다. 결혼 직전까지 홍대 근처에 6년 정도 사는 동안에도 홍대의 클럽 거리보다 광화문을 더 애정하고 자주 갔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결혼하고, 육아를 하면서 나는 순식간에 광화문과 멀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광화문에 갈 만큼 마음이 햇살인 경우가 드물어졌다는 것이고, 그와 함께 내 안의 반짝이던 빛도 점점 꺼져갔다는 편이 맞겠다. 마치 청춘과 함께 휘날리던 촛불이 훅 하고 꺼진 것처럼. 한참 아이가 어릴 때, 배우자와의 불화와 여러 사건들로 이 사람과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가 없었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바빠져서, 내 인생의 문제를 더 이상 밤새 떠들만한 생활밀착형 친구도 없었고 그 시절의 문제들처럼 함께 부어라 마셔라 욕하면서 날릴 만한 가벼움도 없었다. 너무 무거운 어른의 문제를 싸 들고 나는 매우 추운 어느 날 무작정 광화문으로 향했다. 세찬 바람과 작은 눈송이가 날리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은 바닥을 보고 종종걸음으로 교보문고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 익명의 무리 속에서 나는 친정에 온 듯 엉엉 울며 길바닥을 걸었다. 그때 귀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폴킴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었다. 고단했던 나에게 꽃처럼 왔던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이 너무 따갑고 시렸다. 용서되지 않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았다. 저 노래를 수없이 반복하며 교보문고에서 미대사관을 지나 삼청동 길까지 계속 걸었다. 하루 종일 거른 탓에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유명한 수제비집 건너편에 있는 한식집에 들어가 고등어구이 정식을 시켜 우걱우걱 쑤셔 넣었다. 그리곤 저 노래에서의 '너'를 우리 아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들었다. 그랬더니 모든 게 다르게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아이가 나에게 남아있었구나. 너와 나에게로 와서 또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힘이 났다. 배우자를 향한 마음은 여전히 아팠지만 일단은 다시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팥죽집'의 팥죽 두 그릇을 사들고 다시 광화문으로 향했다. 그리곤 회현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촌역에 내리자 눈발이 잦아들고 있었다. 혼자 청승맞게 길거리를 걷다 온 것뿐인데 따뜻한 팥죽을 들고 귀가하는 마음이 왠지 모르게 개운했다. 내 마음의 해우소였던 광화문. 그 이후로도 자주는 못 갔지만 회사 다니면서 반차를 쓰거나, 한국에 잠깐 귀국했을 때도 나는 혼자서 꼭 광화문을 한 번씩 간다. 집이 좁아 종이책을 더 이상 많이 사 오지도 못하는데 그냥 교보문고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부터 마음이 놓인다. 예전에 문구점 옆에 카페테리아가 있었던 자리도 리모델링되고, 잡지책 코너 근처마다 있던 소품 좌판들도 많이 바뀌었지만 나는 내가 늘 서서 소설을 읽던 자리에 가서 책을 읽는다. 마음만은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아 책을 읽다 말고 비실비실 웃기도 한다. 예전만큼 호탕하게 웃지 못하는 팍팍한 중년이 되었지만 나 여전히 여길 사랑한다는 생각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한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나중에 복직하면 꼭 광화문 근무를 다시 지원해 봐야지.
여전히 몸이 부서진 것처럼 아파서 오늘의 환상적인 날씨를 제대로 즐기진 못했지만 다음번 햇살 요정이 찾아오면 테라스에서 낮맥주 한잔 꼭 하기,를 나 자신과 약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