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리나 Oct 19. 2019

한국에서 키 175cm 여자가 듣는 말 best 3

다양성을 존중해주세요.

언젠가는 이 주제로 꼭 글을 쓰고 싶었다.

대한민국에서 175cm 이상의 여자로 살며 늘 들어온 말들.


사실 175cm 이상의 ‘사람’으로 제목을 붙일까 고민했다. 그러나 남자에게 큰 키가 강점으로 작용하는지라 175cm 이상의 남자들은 아래 말들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을 것 같아(rarely) ‘키 큰 여자’로 제목을 붙였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는 <TALL GIRL>이라는 영화가 나와, 키 큰 여자의 고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글을 읽는 어떤 사람들을 탓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담담하게 내가 많이 받았던 질문들, 많이 들어본 말들에 대해 풀어보겠다. 참고로, 아래 말들은 키 큰 여자들 – 특히 조금 여린 마음을 갖고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상처로 다가올 수 있는 말들이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이라도, 앞으로 175cm 이상의 여자들을 만나면, 아래 말들은 조금 지양하는 것이 어떨까.


1. 키 크시네요! 키 몇이세요?


키를 숨기고 싶어 하는 키 큰 여자에게 꼭 이렇게 행동하는 놈들이 있다.


사실 정말 단순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신체의 특징을 말로 표현한 말인데, 이게 키 큰 여자에게는 굉장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특히, 처음 만난 상황에서 다짜고짜 키부터 물어보는 것은 굉장한 실례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키가 작으신 분에게 “어머! 귀여워라! 키 작으시네요. 키 몇이세요?”라고 한다면… 이미 우리나라에서 뉴스에 실리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키 큰 여자들이 워낙 소수이기도 하고, 그냥 둥글게 둥글게 귀찮아서 이런 질문은 대개 넘어갔기에 사람들은 이 질문이 실례인 줄 모를 것이다.


나는 이 질문이 우리나라의 다양성 존중 문화와 연계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처럼 군중심리가 강하고, 나와 다른 사람을 특이하게 보거나 잘 인정하지 않는 문화권에서 나오는 반응이라고 본다. 물론, 키 큰 것이 부럽고 신기해서 순수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생활할 때 초면에 이런 질문과 반응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필자는 사대주의자가 아니다.)


필자의 경우 지금은 키 큰 스스로에게 만족하지만, 처음에는 키가 큰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키 큰 여자들은 성장기 때 대부분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경험을 한다. 매년 9cm, 10cm씩 쑥쑥 자라는 바람에, 같은 학년 남자/여자 아이들보다 월등히 큰 경우가 많다. 필자처럼 내향적인 사람은 또래에 섞일 수 없을까 봐 키 큰 것을 장점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왜 나를 이렇게 키 크게 낳아준 걸까 – 하고 부모님께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그러니, 혹여라도 사춘기 예민한 10대 소녀들에게 “너는 키 몇이니?”하고 실례되는 질문은 자제해주길 바란다. 이미 소녀들은 또래 집단에 대한 걱정과 남과 다름으로 인한 콤플렉스로 마음고생 중일 수도 있으니까.



2. 내 옆에 오지 마. 저리 가! (feat. 무례한 사람을 거를 수 있는 치트’키’!)


두 번째 단골 반응이다. 다짜고짜 키를 묻고, 키를 확인한 뒤 – “저리 가!"라고 대놓고 말하며 자리를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정말 많이 겪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아직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예민한 사춘기 시기에 이런 일을 겪으면 “왜 나를 싫어하지?”라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향후 인간관계 형성에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모델처럼 개성 넘치고 마르고 키가 크든지, 운동선수처럼 키가 크든지, 건강하게 키가 크든지 – 키 큰 여자들을 보면 위압적인 느낌이 든다고 한다. 등치가 있든 없든, 일단 나보다 큰 키는 동물의 왕국에서도 충분히 위협적일 수 있는 조건이다. 동물은 말을 못 하지만, 인간은 말을 할 수 있기에 – 그놈의 주둥이로 자신에게 위협적인 사람을 쫓아내는 것이다.


키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해 당신을 피하는 사람에게는 너나 꺼지세요!라고 속으로 말하며 웃어주자.


필자는 사실, 평생 이런 말을 들어오며 정말 많이 상처 받았다. 필자처럼 섬세한 기질의 소유자는 “저 사람은 나를 외모로 판단하고 싫어하는구나”라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전혀 상처 받을 필요 없다.  


외모에 해당하는 ‘키’를 언급하고, 당신을 피하는 사람에게 굳이 다가갈 필요는 없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이미 본인의 한계와 편협한 생각, 무례함을 당신에게 보여준 것이고, 덕분에 당신은 초면에 ‘다양성을 인정할 줄 모르는 사람’을 거를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당신의 키가 인간관계의 ‘치트’키’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니, 웃으며 마음속에서 조용히 그 사람을 거르자. 그리고 불쌍히 여기자. "아, 저 사람은 키에 대한 열등감이 있고, 나를 많이 부러워하는구나. 본인의 열등감을 나의 장점인 '키'를 깎아 풀어버리려는 불쌍한 사람이구나"하고 가엾게 여기자.


3. 뭘 먹고 그렇게 컸어? 키 좀 나눠줘.

(feat. 예전엔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나 자신이 좋아)


이 반응 역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다. 다만, 이 말은 나를 까는 말이 아니라, 대부분 질투 혹은 부러움에 하는 말이다. 조금은 섬세하고 예민한 키 큰 여자들에게도 이 말은 조금 부담되지만, 위 두 반응에 비해서는 아주 양반이다. 그냥 허허~ 웃으며 그러려니 하고 지나칠 수 있을 정도의 강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가끔 꼭 대답을 얻어내려는 집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 사실.. 조금 난감하다. 상대가 조금 키가 작은 편이라면, 내가 하는 대답에 따라 그 사람이 그대로 실천할 수도 있기에 대충 대답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진지한걸까...?) 그렇다고 구구절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자니, 참 그것도 분위기상 이상하다. 그럴 땐 그냥 간단히 대답하면 된다. “유전이야. 엄마 아빠 두 분 다 키가 크셔.” 그럼 대부분 “아~ 역시 키는 유전이야”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다양한 시행착오 끝에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 혹여 상처 받은 키 큰 여자들이라면 3개 영화 모두 추천한다.


필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 내 키 5cm만 가져가”하고 농담을 건네며, 진심으로 내 키를 그들이 가져갔으면 하고 바란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다 아는 “나를 사랑하자”를 실천하고 있기에 -  누구에게도 내 키를 주기 싫을 정도로 나의 큰 키가 참 좋다. 바지를 줄이지 않고 fit을 살려 입는 등 옷맵시가 나고, 어딜 가도 눈에 띄는 탓에 주변 사람들이 나를 잘 기억해 주는 장점이 느껴지니, 그냥 그 자체로 내 키가 참 좋다.


다음 콘텐츠에서는 키 큰 여자들의 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다뤄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키’가 큰 스펙인 나라에서 스펙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매우 키 큰 여자군(175cm 이상)은 연애를 시작할 때, 그리고 연인일 때 어떤 공통적인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하는지 알려드리겠다.




Writer / Rachel

어쩌다 보니 홍보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세상을 다채롭게 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사람입니다. 사람, 그리고 인간관계, 언어에 관심이 많습니다.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글로 쓰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