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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ina 임아영 Oct 27. 2019

키 큰 여자로 살면서 겪는 일

저는 인간 줄자가 아닙니다만.

롤링페이퍼를 받는 순간은 언제나 설렌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떤 사람인지, 평소 내 이미지가 어떤지 슬며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나에게 써준 문구를 별 것 아니어도 크게 다가왔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키 큰 여자의 롤링페이퍼는 좀 다르다.


“넌 참 키가 크구나. 뭐 먹고 이렇게 컸니, 나도 키 좀 나눠줘."
“키 좀 그만 커~ 지금도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니지?”
“즐거운 MT 되었니? 키가 커서 부럽다.
우리 동아리에는 180cm 이상인 사람이 없어서 안타깝다”

실제로 필자의 대학시절 롤링페이퍼에 쓰여있던 말들이다.

여린 필자는 롤링페이퍼를 볼 때마다 속상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키’ 말고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인가?

왜 나의 유머감각이나 허당미, 비글미, 쾌활한 성격, 분위기 메이커로서 활약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것인지, 아쉬웠다.


이처럼 키 큰 여자는 어딜 가든 ‘키’ 이야기를 빼고는 살 수 없다.

오늘은 키 큰 여자가 부딪히는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제가 줄자인가요? 왜 니 키를 나한테 재세요?


어디서든 당했다.


학창 시절 운동장에서, 회사 신입 환영회 행사에서, 그리고 정류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도.  

몰래 다가온 커플들은 속닥거리며 짱딸만한 자신들의 키를 나를 기준 삼아 재보며 본인들의 데이트를 즐긴다. 뭐, 이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니까 그러려니 한다.


가끔씩 키 작은 지인들의 반응은 가끔씩 기분이 더럽다. “너 키 175cm 맞아? 내가 161cm니까 이 정도 되는 남자 만나면 어울리려나?” 라며 눈을 반짝이는데,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나 키 175cm보다 커, 줄여말했다, 이 자식아. 넌 작으니까 나보다 더 작은 남자 만나도 돼!”라고 말해주면 이 짓을 멈추려나? (겉으로 웃으며 이미 저렇게 말했지롱^^)


키 큰 여자는 당신을 위한 줄자가 아니다.

아무리 신기하다고 해도 키를 재고 싶으면 가까운 내과에 방문하시어 키와 몸무게를 동시에 잴 수 있는 기계를 활용하자. 내과에 갈 시간이 없는가? 당신이 매일 밤 만나는 침대! 침대 프레임 길이를 찾아보자. 침대 프레임 길이가 190cm라고 치면, 30cm 자를 니 머리 위에 올려놓고 키를 재면 너의 키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도토리들이 키에 그렇게 민감하다. 도토리 키재기 그만해라 이 자식들아. jpg


우스개 소리로 제안했지만, 엄한 사람 건들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냥 하하호호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것은 사람에 따라 굉장히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키 작은 남자 사람 친구에게 키 큰 여자 사람 친구가 다가가 “너 키 몇이랬지? 내 키가 177cm니까, 너처럼 170cm 정도 되는 남자는 만나면 안 되겠다”라고 다짜고짜 이야기한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러니, 부탁한다. 제발 키 큰 여자 앞에서 언행을 조심해라.

이미 너의 이미지는 나가리(?)다.



2. 척추측만, 허리디스크는 나의 것


도토리 속에서 콩나물처럼 툭 튀어나와 있는 것이 싫었다.(쓰고 보니 키 작은 사람들 디스와 키 큰 여자의 감정이 같이 있는 문장이다. 허허) 하여 성장기 10대에 내 자세는 항상 좋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고자 숙이고 다녔다.


필자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보통의 키 큰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기 위해서 허리를 숙이거나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니는 탓에 척추측만(또는 척추 전만)과 허리디스크를 달고 산다.


남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우리나라 공공시설물도 키 큰 여자의 구부정한 자세에 한몫한다.

요즘 지어진 건물들은 조금 낫지만, 오래된 건물과 시설의 세면대랑 싱크대 높이는 굉장히 낮다.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는 또 어떠한가. 필자는 어제도 버스 손잡이에 머리를 여러 번 부딪혔다.

분위기 있는 오래된 카페들 중 천장에 낮은 곳에는 머리를 쪄서 머쓱타드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설을 바꿀 순 없다.

아직도 대다수의 한국인은 키가 작으니, 키 큰 여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한국에 계속 산다는 가정 하에 조심히 다니는 수밖에.


나는 발레하는 키 175cm이상의 여자다. 30년동안 못편 허리와 다리, 어깨를 1년째 펴는 중이다.

다만, 항상 우리가 자세를 숙이고 다닐 필요 없다. 남자들의 키 높이 구두, 여자들의 하이힐 없이도 우리는 크다. 축복받은 것이다. 그들에게 맞춰주려 하지 말고, 발레리나처럼 어깨는 내리고 아랫배는 쑥 끌어올려보자. 꼿꼿한 자세로 다니자. 필요하다면 운동도 하자. 필자가 1년째 하는 발레는 체형 교정과 군살 빼기에도 도움을 주지만 올바른 자세를 만드는 데도 도움을 준다.


사실 175cm 이상의 여자는 발레를 해서 올바른 체형을 얻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키가 작은 사람들에 비해 근육의 길이도 다르기 때문에, 꾸준함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키 큰 것은 축복이다. 더 이상 도토리들의 외모 후려치기에 반응하지 말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자.




Writer / Rachel

어쩌다 보니 홍보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세상을 다채롭게 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사람입니다.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글로 쓰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 합니다. 글 속 인물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어느 사람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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