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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ina 임아영 Aug 22. 2021

퇴사를 결심하는 결정적인 이유 (feat.스타트업)

같은 것은 없다. 무례함과 무지, 무식이 유능한 직원을 나가게 할 뿐^^


직장인 하리나(33)씨는 요즘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다. 리나 씨가 겪고 있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대신 풀고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차분히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분노를 넘어 격노하고, 과열되어 있는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서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 리나 씨 대신 글을 써내려 가기로 마음먹었다.


7년 차 하리나 씨는 스타트업 마케팅 PR팀에 입사했다.

체계도 예산도, 심지어 팀원도 사수도 없는 상태. 어떤 정도였냐, 홍보팀에는 기사 현황을 관리하는 '미디어 커버리지 리스트(media coverage list)'가 있다. 하지만 이곳엔? 당연히 없었다. 10년 된 스타트업인데 그동안 어떤 기사가 났는지 쌓아놓지 않은 것도, 누구도 관리하지 않은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 하긴, 10년 차인데 마케팅 PR그룹이 올해 신설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긴 했다. 입사 때 충분히 우려한 부분이지만 그래도 하리나 씨는 자신이 그동안 홍보했던 뷰티, 헬스케어, 유통 분야가 아니라, IT 분야에 새롭게 발 딛는다는데 의의를 두고, 연봉도 많이 올리지 못한 채 입사를 감행한다.



연봉을 많이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칼퇴하는 것이 그녀의 루틴이었기 때문에 늘 할 일을 다 하고 열심히 일했다. 야근=성과가 아니니까. 매일매일 3~4시간씩 야근하면 어느 직장인도 버티지 못한다.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피폐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주어진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고 퇴근해온 루틴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래야 더 오래, 열심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7년 동안 쌓아온 나름의 직업 가치관이다.


각설하고, 하리나 씨는 본인의 노하우로 홍보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인하우스 홍보팀, 글로벌 대행사 출신의 나름 일을 할 줄 아는 그녀는 하나하나 자신이 알고 있는 선상에서 체계를 구축했다. 홍보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c레벨들에게도 정말 기본적인 pr용어 하나하나 알려주며 일을 진행했다. 자기 말만 하고 어떻게든 조져서 결과물을 뽑아내려고 하는 본부장을 겪으면서 멘붕도 왔지만, 일단 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내색하지 않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하나하나 체계를 수립하던 중, 하리나 씨가 다니는 IT회사에서 7-8월에 아주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실행하게 되었다. 당연히 그녀도 해당 프로젝트에 대한 홍보도 지원하게 되었다. 3월 입사 후 단 한 달 만에 홍보 체계를 구축하고 스스로 1인 대행사처럼 뉴스 모니터링부터 보도자료 작성, 기획자료 피칭, 보도자료 배포, 미디어 관리, 그리고 매월 홍보 활동을 정리한 monthly report까지. 일반 대행사가 2~3명의 팀을 이뤄서 매월 fee 600-700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업무 스콥을 하리나 씨는 혼자 다 해냈다. 그야말로 일당백으로.


하리나 씨가 열심히 하는 만큼 성과도 바로바로 나와 뿌듯했다. 사실 하리나 씨는 처음에는 두려웠다. 유통, 뷰티, 헬스케어 쪽에만 기자 관계가 있었고 그쪽 자료만 그동안 써왔기 때문에 IT회사의 오퍼가 들어와서 덜컥 합격을 했을 때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혹시나 잘 못할까 봐 많이 두려웠다. IT분야 언론홍보, b2b 홍보는 해본 적 없는데 7년 차 홍보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느낌이라서 뭔가 부담이 상당히 많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IT 홍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행사에서 그리고 인하우스 홍보팀에서 쌓은 경험치와 노하우로 접근한 결과, 코로나로 인해 기자들을 못 만나는 상황에서도 방송 피칭, 지면 피칭은 물론 빅 이벤트 상황과 맞물려 우리 기술이 도입된 배경을 한국에서도, 그리고 외국 기자들에게도 피칭할 기회를 얻었고 불과 입사 5개월 만에 정말 많은 성과를 냈다. 아시아경제, 머니투데이, 채널a 등등.. 정말 어떻게 이 모든 것을 혼자 해낸 것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하리나 씨는 누가 봐도 정말 많은 일을 해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홍보(PR)하는 사람이라면 알 거다. 이렇게 피칭하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방송 하나 하는데 2천만 원, 3천만 원 드는 것을 아무 비용 없이 오롯이 기자님들께 연락하고 부딪쳐서 기사를 통해 회사를 홍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런 뉴스 소스를 갖고 우리가 이렇게 잘하고 있다는 것을 티 내기 위해 소셜미디어에도 osmu를 통해 (원소스 멀티유즈) 예산이 없어도 최대한의 도달을 끌어낼 수 있도록 어떻게든 멘션, 해시태그 등을 이용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글로벌 쪽에서도 하리나 씨가 속한 회사에 대한 문의와 인터뷰가 이어졌고, 처음 글로벌 홍보를 맡아 진행하는 그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1000% 이뤄낸 성과가 엄청나다는 것에 자부심도 뿌듯함도 느꼈다.


불과 입사 5개월 만에 하리나 씨의 포트폴리오에는 추가할 부분이 많아졌다. 스타트업 특성상 예산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그녀가 혼자 맨 땅에 헤딩하며 기사의 지면/방송/온라인 피칭, 게다가 혼자 회사의 소셜미디어 4개를 운영하면서 사내 홍보와 예비 입사자를 위한 브랜딩까지 한 것을 보니, 정말 어떻게 혼자 이렇게 해냈을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가 속한 스타트업은 그녀의 업적에 대해 지적하기 바빴다. 아무리 언론홍보와 PR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해도, 그녀가 어렵게 아무 비용 없이 방송에 피칭하고 지면에 피칭한 기사 결과물이 나와 공유하면 자신들이 컨펌한 것을 번복하며 무리한 요구를 하기 일수였다. 최종 컨펌을 해줬을 때는 언제고, 자신들이 말하고 이메일이 썼던 것은 기억이 안나는 단기 기억상실증인지. 기사의 내용을 바꿔달라거나, 사진을 바꿔달라는 요구 - 심지어 방송 내용을 바꿔달라는 요구를 무례하기 서슴지 않고 하리나 씨에게 요청했다. (알다시피 기자에게 fact 수정 요청을 제외하고 제멋대로 바꿔달라는 요구는 상당히 무례한 일이다. 리나 씨는 스타트업의 이런 요구가 상당히 무례한 짓인 점을 사전에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인 스타트업의 태도에 혀를 둘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외부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일했던 것을 예쁘게 포장해 하나하나 그들에게 컨펌받고 정제된 one 메시지로 sns에 키 메시지를 담아 브랜딩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린 이렇게 일하다 왔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왔지. 그런데 여기 한국에 남아있던 마케팅 PR팀은 대체 뭐하느라 그렇게 바쁜 거야? 홍보는 뭐 기사 몇 개 끄적거리는 게 다였잖아"라는 식으로 하리나 씨가 애쓴 모든 성과를 가스 라이팅과 후려치기 해 그녀를 놀라게 했다.


그동안 열심히 홍보한 부분을 매월 리포트 형식으로 만들어 성과 보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보고서를 전혀 열어보지 않았다. 보라고 메일로 쏴주고 태그하고 메신저 등으로 떠먹여 줘도 그들은 보지 않았다. 덕분에 졸지에 하리나 씨는 한국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서로에 대해 격려하고 예의 있게 대하며 조심해도 모자랄 판에, 하리나 씨의 직무에 대해 무지하고 무식하다는 이유로 그녀의 업적을 후려치기 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하리나 씨는 자신이 일을 할 때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평소 충분히 설명하고 보고하고 컨펌을 받은 뒤 일을 처리 해왔다. 아무리 단기 기억 상실증이라고 해도 자신이 컨펌하고 설명 들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가 될 자격도, 하리나 씨를 회사에 품을 자격도 없다. 시간을 들여 보고서를 만들어 눈앞에 떠먹여 줬는데도 보지 않은 건 과연 하리나 씨의 잘못일까? 아니면 무식한 리더의 잘못일까?


하리나 씨를 후려치던 리더는 대형 프로젝트를 마무리 한 뒤, 바로 다음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다음 프로젝트야 말로 홍보마케팅이 필요한 프로젝트였다. 리더는 하리나 씨를 지난 수요일에 불러 "우리 다음 주 월요일에 연예부 기자 대상으로 보도자료 배포할 거니까 준비하도록 하세요."라며 무례한 태도로 일을 던졌다. 참고로 하리나 씨의 회사는 IT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언론홍보 시 tech업계, 스타트업 업계, 그리고 하리나 씨 회사가 속한 ㅇㅇ업계의 기자 리스트만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갑자기 연예부 대상의 기사 배포라니.


홍보하는 사람은 알 것이다. 이게 단순히 3일 만에 준비할 수 없는 타임라인이라는 것을. 기자 리스트는 만드는데 1주일 이상 소요되는 큰 프로젝트다. 미디어 하나하나 클릭해 우리 기사를 써줄 것 같은 기사를 찾아내야 하고, 그들의 이메일 주소를 리스트업해야 한다. 게다가 it보도자료와 연예부 드라마 보도자료는 결이 완전 다르다. 더군다나 하리나 씨는 드라마 홍보 경험도 전무한 상태. 아무리 유능한 하리나 씨라도 리절트가 20건 이상 나오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우애를 나눈 기존 회사 동료들이 물심양면 도와준 덕분에 하리나 씨는 운 좋게 이틀 만에 연예부 기자 리스트를 600건 이상 확보할 수 있었고, 자료 수집 능력과 빠르게 분석하고 글을 쓰는 덕분에 반나절 걸려 드라마 론칭 보도자료를 완성할 수 있었다. 칭찬과 인정을 해줘도 모자란 마당에 이렇게 고생한 그녀에게 "왜 일하는데 화면을 그렇게 째려보고 있냐"며 장난을 걸었던 리더를 보고 하리나 씨는 황당했다. "갑자기 이렇게 일을 주고 한 번도 안 해본 분야의 언론홍보를 시키면서 불가능한 타임라인을 주시면 어떡하냐"는 그녀의 말에 "아니, 한 번도 안 해봤으니까 도전을 하고 얼마나 좋아, 내가 기회를 주잖아"라는 리더의 말에 리나 씨는 폭발하고 만다.



이건 결코 기회를 준 것도 아니고, 도전하는 것도 아니다. 가스 라이팅일 뿐이다. 도전과 기회라니. 요즘 mz세대는 이런 것을 바로 '착취'라고 표현한다. 당신들이 주 6일 일하고 당신들이 매일 3-4시간씩 엉덩이로 일한 것은 이미 현시대에 맞지 않는 조직 문화고, 끈기와 열정을 보여주는 지표도 아니다. 당신들이 도전과 기회로 부하직원들에게 선심 쓰는 척하는 그 화법, 그 행동들 - 우리는 그것이 착취와 가스 라이팅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제발 감 좀 잡아라.


하리나 씨와 같은 유능한 직원이 퇴사를 결심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없다. 부하직원을 대하는 누적된 무례한 태도와 도전과 기회라고 속이는 착취, 게다가 열심히 설명하고 컨펌받아 이뤄낸 성과에 대한 평가절하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반복되는 리더의 무지함과 무식함일 뿐이다. mz세대는 이런 것을 견디면서 일할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것을 알길 바란다.


자신의 평화롭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바뀌어 간다고 느낀 하리나 씨는 고장난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리더의 무지와 무식, 무분별한 일던지기와 후려치기로 인해 신뢰는 깨졌다. 그녀는 퇴사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앞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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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karina

어쩌다 보니 홍보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고, 세상을 다채롭게 살고 싶은 호기심 많은 사람입니다. 직장생활의 희로애락을 글로 쓰며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려 합니다. 글 속 인물은 모두 허구의 인물이며 어느 사람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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