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올해는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봤다.
2009년 7월 22일
오늘도 정신없이 일을 마무리했다. 42번가 타임스퀘어 역에서 지하철 Q라인을 타고 캐널 스트리트 역에서 내린다. 바쁘게 학교 건물로 들어가 시끌시끌한 1층 메인 주방의 뒷 복도를 지나 탈의실로 향한다. 잠시 고개를 돌려 주방을 들여다본다. 바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삶이 꿈틀거림을 느끼고,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온갖 맛있는 향기에 가슴이 뛴다.
난 말끔한 theory 남색 정장을 입고 있다. 정장...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점점 커진다. 훌러덩 정장을 사물함에 던져버리고 하얀 요리복으로 갈아입는다. 모자도 쓰고, 네커취프 (Neckerchief, 요리사가 목에 감는 일종의 스카프)와 앞치마까지 깔끔하게 걸치고 나면, 영락없는 요리사다. 정확히 한 달 전부터 매일 저녁 이 옷을 입고 있다. 난 요리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매일 아침, 퇴근 후 요리학교에 갈 생각에 눈이 번쩍 떠지던,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열정을 되찾기 시작하던.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2009년 7월 22일, 바로 그날 수업 시간에 만든 요리는 큰 관자를 노릇하게 굽고 파슬리로 만든 소스를 곁들이는 요리였다.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내가 만들 수 있다니!' 스스로에게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지만, 이 요리를 10년이 넘도록 다시 만들어 볼 기회가 없었다.
'오랜만에 한번 만들어 볼까?'
거실 책장 맨 아래 칸에 꽂혀 있는, 먼지가 조금 쌓인 요리학교 교과서를 꺼내본다.
프랑스 요리의 매력은 요리에 들어가는 재료 하나하나에 맛을 더하기 위해 한 두 과정을 더 거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그냥 물'을 쓰기보다는, 물에 맛과 향을 더한 후 사용한다. 그래서 프랑스 주방은 항상 다양한 스톡(Stock, 동물의 뼈를 향신료와 함께 오랜 시간 끓여 만드는 육수肉水나, 채소를 끓여 만드는 채수菜水)을 끓이는 향기로 가득하다. 이 레시피에서도 쿠르-부용(Court-Bouillon, 보통 해산물을 살짝 삶아내거나, 간단한 소스를 만들 때 사용하는 쉽고 빠르게 만드는 새콤한 맛이 나는 채수)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쿠르-부용은 파슬리 쿨리(Coulis, 채소나 과일 등을 퓌레로 곱게 갈아 만든 소스)에 들어간다.
소스. 프랑스 요리에서 정말 중요한 소스. 한 번에 모든 재료를 넣어 만드는 법이 없다. 재료를 단계에 단계를 거듭하며 넣는다. 각 재료의 맛이 시간과 함께 차곡차곡 쌓여가며 소스에 깊이를 더한다. 지금 읽고 있는 레시피의 아주 간단한 소스인 파슬리 쿨리도, 샬롯과 버섯을 우선 볶아 낸 후, 쿠르-부용을 넣고 다시 끓이며 충분히 익힌다. 마지막으로 샬롯과 버섯을, 미리 익힌 파슬리와 함께 곱게 간다.
볶은 샬롯과 버섯의 단맛에 쿠르-부용의 새콤한 맛과 향신료의 향이 섞이고, 다시 푸릇한 파슬리의 풍미가 더해지면 겹겹이 쌓인 맛을 간직한 쿨리가 완성된다.
매 단계마다 나의 노력과 정성을 얼마나 쏟았는지가 결국 맛으로 드러나는 요리의 정직함이 좋았다. 눈속임과 번드르르한 말로 가릴 수 없는 그 진실된 맛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았다. 그 과정 속에서 나의 모든 감각이 깨어나는 순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좋았다.
그런 요리를 만난 2009년 여름. 난 가장 행복했다.
Coquilles Saint-Jacques, Coulis au Persil
(French Culinary Institute 'Classic Culinary Arts' Level 1, 2009년 교재의 레시피를 응용하였습니다.)
2인분 / 45분
메인 재료
큰 관자 4개
파슬리 크게 한 줌
시금치 한 줌
쿠르-부용 Court-Bouillon 재료
물 한 컵 반
화이트 와인 한 컵
양파 잘게 자른 것 100g
당근 잘게 자른 것 100g
생生타임 5 줄기
월계수 잎 한 장
통후추 반 티스푼
파슬리 줄기 조금
쿨리 Coulis 재료
양송이버섯 작은 것 하나
샬롯 하나
올리브유 1/2 티스푼
식용유 1/2 티스푼
소금/후추
(옵션) 가니쉬: 파 하얀 부분 잘게 채 쳐서 튀긴 것.
조리법
요리의 시작은 재료 손질. 우선 모든 재료를 손질해 둡니다. 관자는 겉에 붙어 있는 질기고 하얀 부분을 제거하고 물에 살짝 씻은 후, 물기를 페이퍼 타올로 톡톡 눌러서 제거해주세요. 파슬리와 시금치는 흐르는 물에 씻은 후, 잎사귀와 아주 연한 줄기 부분만 따주세요. 굵은 줄기는 쿠르-부용에 들어가니 버리지 말고 남겨두세요. 당근과 양파는 잘게 썰고, 양송이버섯과 샬롯은 아주 작은 다이스로 잘라주세요.
이제 쿠르-부용을 만듭니다. 냄비에 물, 화이트 와인, 양파와 당근 작게 자른 것을 타임, 월계수 잎, 통후추, 파슬리 줄기와 함께 넣고 끓여주세요. 부르르 끓어오르면 불을 줄이고 냄비 뚜껑을 닫아 20분간 약한 불에서 보글보글 끓입니다. 쿠르-부용이 완성되면 체에 밭쳐 건더기는 버리고 국물만 남겨둡니다.
쿠르-부용이 끓는 동안 파슬리와 시금치를 데칩니다. 냄비에 물을 충분히 넣고 소금을 조금 친 후 끓여 주세요. 얼음물도 준비해 둡니다. 물이 끓으면 파슬리와 시금치를 살짝 데쳐서 바로 얼음물에 넣어 식혀주세요. 식은 파슬리와 시금치는 손으로 꼭 짜서 물기를 제거하세요.
쿠르-부용이 완성되고, 파슬리/시금치를 데쳤으면, 이제 파슬리 쿨리를 만듭니다. 프라이팬에 작게 다이스로 자른 양송이버섯과 샬롯을 올리브유와 식용유를 두르고 투명해질 때까지 약한 불에서 볶아주세요. 여기에 체에 밭쳐 걸러낸 쿠르-부용 1/4 컵 넣고 약한 불에서 양송이버섯과 샬롯을 충분히 부드럽게 익혀줍니다. 부드럽게 익은 양송이버섯과 샬롯, 물기를 짜 놓은 파슬리, 시금치를 함께 믹서에 넣어 곱게 갈아주세요.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시면 파슬리 쿨리는 완성입니다. 쿨리는 사용하기 직전에 다시 한번 따듯하게 데워줍니다.
마지막으로 관자를 굽습니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관자를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주세요. 이때 아주 적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합니다. 관자는 정말 금방 익기 때문에 너무 익혀 질겨지지 않도록 조심해주세요.
따듯한 파슬리 쿨리를 그릇 두 개에 나누어 덜고, 구운 관자를 두 개씩 파슬리 쿨리 가운데 올려주세요. 관자 위에 살짝 튀긴 파를 예쁘게 올려주면 '관자 구이와 파슬리 쿨리'가 완성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