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 조금씩 도시에 스며들기

미국, 보스턴

by 여행작가 Q

걷기만 해도 풍요로워지는 도시 여행


보스턴은 여유로운 느낌의 도시였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시내에 있는 숙소로 가는 길부터 그랬다. 길을 걸으며 차분한 인상을 받았고, 어서 짐을 내려놓고 이 도시를 느껴보고 싶었다. 첫인상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는 도시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오후에 도착한 만큼 얼른 체크인을 하고 여행하기로 했다.


느릿느릿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영롱하게 빛 받은 거리를 따라 걸었다. 보스턴 하버로 향했고, 그곳을 거닐며 나른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몇 컷 남긴 후 바로 근처에 있는 퀸시마켓으로 향했다. 먹음직스러운 음식과 아기자기한 디저트가 많다고 해서 기대하고 들어갔다. 과연 눈과 코가 즐거운 곳이었다. 동그란 사과에 초콜릿 무스를 발라 각종 도넛 고명을 붙인 디저트, 주인은 사과 꼭지에 폭 꼽아둔 막대기를 잊지 않았다. 쿠키에 비틀즈 과자를 붙여 알록달록한 맛을 살린 디저트는 입 안에서 따로 또 같이 어우러질 맛이 상상되는 맛이었다. 우리는 각자 크랩 샌드위치와 케이크 등을 사 와서 테이블에 앉아 먹은 후, 이 곳의 밤을 둘러보기로 했다.


보스턴의 조명 색깔은 주황색이었다. 5월 중순의 날씨로 초여름을 향하고 있었지만, 이 곳의 나무 장식과 빌딩 장식은 흡사 온화한 조명의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같아 어디선가 캐럴이 울려 퍼질 것 같았다. 보스턴의 밤은 따뜻하고 낭만적이었다. 조명 색감 하나로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어버렸다.


Life is good.

Do what you like. Like what you do.


어제 거리에서 느낀 캐럴의 여파 때문일까, 다음날 보스턴은 갑작스레 진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게 하는 날씨를 보여주었다. 분명 전날은 반팔과 반자리를 입을 정도로 여름 날씨에 가까웠는데, 다음날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점퍼를 꺼내고 긴 옷을 찾아 입어야 했다. 하루 사이에 날씨 변덕이 심했지만 여행자로선 한 도시에서 색깔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어 나쁘지 않았다.


오전에 하버드 대학교를 둘러보았다. 학교의 분위기를 느껴보려고 노력하며 교정을 거닐었고, 학교 바로 앞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 후 유명한 햄버거 집에 찾아가 재미난 이름의 버거를 먹었다. 유명한 정치인이나 가수의 이름을 딴 버거였다. 맛은 이름과 상관없이 전부 기대 이상이었다. 든든한 배를 안고 시내로 돌아와선 보스턴의 예쁜 거리를 하나하나 두 발로 탐험했다. 이름 하여, 프리덤 트레일(Freedom Trail). 붉은 벽돌이 가지런히 이어져있는 이 길을 걷는 게 참 좋았다. 길을 걷다 꽃집도 지나가고 귀여운 조각 케이크를 파는 집도 지나가고 옛 시청도 다시 지나갔다. 그저 길을 따라 걷는 것 자체가 순수한 즐거움을 건네준다는 사실을 이때 새롭게 한 번 더 깨달았다.


찰리 카드를 찍고 들어온 지하철 역사 안에는, 지하철로부터 불과 열 걸음 떨어진 의자에 긴 머리를 한 남자가 기타를 치며 거친 허스키 보이스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에 맞춰 검정 모자를 쓴 남자가 바이올린으로 음을 불어넣어주는 장면을 보며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다. 우리는 어둑어둑해진 저녁에 다시 한번 프리덤 트레일을 걸으러 갔다. 트레일을 따라 걷다 보니 가정집으로 이어진 벽돌 길이었다.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아주머니가 우리를 보더니 눈인사를 건넸다. 밤을 맞아 주황색의 가로등이 연이어 서 있는 곳을 천천히 걸어 다녔다. 그러다 앉았다. 시야에 보스턴의 집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이 날 우리가 걸었던 프리덤 트레일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걷는 것이란 무엇일까. 어떤 즐거움을 줄까. 여행을 하며 걸으니 벽돌의 크기와 색깔, 지나가는 사람들의 인상과 웃음, 신호등의 모양과 울타리의 무늬, 나무의 푸르름 정도와 나무 벤치의 틈까지 알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본 것들로 인해 소소하게 즐거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이 도시에 스며들고 있었다. 두 번째 날 밤, 일기장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을 가득 담은 도시였다,라고.


DSC02667 미국 보스턴에서.JPG 2014, 보스턴 퀸시마켓, 귀여운 디저트
DSC02717.JPG 2014, 보스턴 거리, Life is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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