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둘레길 21km 완주기
송파둘레길은 총 4코스로 나눠진 총 21km의 순환 도보길로, 이름 그대로 송파구를 둘러싸는 형태의 길이다. 송파구에서 조성, 관리하는 길이며 공식자료는 아래를 참고. 스탬프 등 인증 프로그램은 진행하지 않는다.
서울둘레길을 걷다가 송파둘레길 이정표를 보고 존재를 알게 되었다. 서울둘레길 송파구간이 괜찮았던 기억이라 송파둘레길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서울둘레길은 산과 숲길이 일부 포함되지만 송파둘레길은 기가 막히게 평지로만 이뤄져 있다. 한강과 탄천, 성내천 등 수변도로 위주의 도시형 산책길이다.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로, 등산화 등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지 않다.
거리가 좀 애매한데, 21km면 체력 좋은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도 있겠으나 무리가 될 수 있는 거리다. 공식적으로 안내된 소요시간은 총 5시간 반이지만 이건, 쉬지도 먹지도 않고 시속 4킬로 속도로 걷는 것을 전제한 속도라 현실적이지 않다. 어차피 서울이라 언제든 다시 올 수 있고, 기상상황도 고려할 때 두 번 정도에 나눠서 걸으면 딱 좋을 것 같다. 나도 폭염주의보가 내린 8월 중순에 걷느라 2번에 나눠 걸었고, 쉬엄쉬엄 총 7, 8시간 걸린 기억이다.
송파둘레길 4개 구간 중, 단 하나의 구간을 선택해야 한다면 성내천길을 추천하고 싶다. 여러모로 접근성도 좋고 잘 정비된 산책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고 중간중간 볼거리도 적지 않은 편이다. 예전에 왔을 때는 유동인구가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시기다 보나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2미터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지나도록 안내되어 있다. 대부분 준수하게 마스크를 착용한 데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었다. 잘 포장된 길로만 이루어져 있다.
버드나무도 멋지고, 담쟁이덩굴도 멋지고... 이 길은 여름이 시원하고 멋진 것 같다. 요란한 낙서가 된 담벼락도 지나갔다. 그리고 특이하게, 벼농사 체험장이 있다. 이 엉뚱함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것도 송파둘레길의 일부라고 한다. 하긴 요즘 애들은 평생 벼 자라는 거 직접 못 본 경우도 많을 테니, "이것이 벼다!"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송파 한복판에 벼농사라니 좀 웃기긴 한데 낱알이 귀여워서 마음에 들었다.
걷기도 쉽고 찾기도 쉬운 길을 2시간 정도 걸으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한강길을 만나게 된다. 아 그런데 사람이고 자전거고 너무들 열심히 뛴다. 다들 힘도 넘치고 마음도 급하고. 나 걸을 때 뛰는 사람들 보면 여러 가지 감정이 든다. 질투의 감정도 있고, '아 다들 열심히 사는구나. 그래도 나는 그냥 대충 살고 싶다'는 체념 같은 감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잊지 말자 내 템포.
한강길은 송파둘레길 중 가장 짧은 구간으로 1시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어쩐지 나는 그보다 좀 더 걸렸다. 피곤한 상태라 그랬나 보다. 송파구에 위치한 한강공원을 따라서 걷는 길로, 산책 중인 사람들,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침 해가 지기 시작한 시원한 시간이라 그랬는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니며 걸었다.
한강은 정말 언제나 그렇듯 고요하고 아름답다. 일부러 해 지는 시간에 맞춰서 갔는데, 시시각각 바뀌는 하늘을 보면서 느긋하게 걷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여름밤의 사치이자 서울 사는 특권 같은 시간.
물소리, 바람소리,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들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코스 끝이 나타난다. 어디서나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도 우뚝.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한강길 구간은 송파둘레길만의 특색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이 길 끝은 바로 탄천길과 이어진다.
탄천길은 7.4km로 송파 둘레길 4구간 중 가장 길다. 하지만 이 역시 평탄한 도보길이라 무리가 될 부분은 없다. 중간중간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있어서 좋다. 하지만 물을 살 곳이 없고 그늘이 거의 없으니 반드시 물과 음료를 챙겨서 출발하자. 홈페이지에 일부 구간 조성 중인 것으로 안내되어 있던데 내가 갔을 때는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 다만 지난번 장마 때 탄천이 잠겼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어서 마음이 좀 안타까웠다.
초반엔 이런 땡볕을 한참 걷게 되니 날씨 잘 보고 나서자. 폭염주의보 내린 날 걷다가 머리가 따끈따끈 익어버릴 뻔했다. 딱히 쉴 곳도 없고 아무런 자비도 없는 길이다. 이 구간이 홈페이지와 안내판에 '조성중(공사 중)'이라고 표시된 구간인데 이 구간에 뭔가 개선을 하는 거라면 좋겠다. 음수대라도 플리즈.
곳곳에 침수의 흔적이다. 풀과 나뭇잎이 진흙으로 뒤덮여서 사방이 황톳빛이다. 그래도 비 한 번 다시 내리면 반짝반짝 푸르러지지 싶다. 한참을 들여다보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색감이었다.
반쯤 걸으면 초록 초록해지고 이제 그늘이 좀 나온다. 살 것 같았다. 이제야 좀 도심 둘레길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탄천도 구경하고. 귀여운 송파 둘레길 표시를 따라서 걷다 보면 가든파이브 지역이 보인다. 그러면 탄천 구간은 끝이다.
장지천길은 조용하고 무난하긴 한데, 도로 옆길을 걷는 구간이 짧지 않아서 추천하기는 다소 애매한 구간이다. 벚꽃이 필 무렵에 장지천 벚꽃길 걷기를 함께 한다면 좋을 것 같다. 내가 가진 앱의 노선과 일부 달라진 구간이 있어 약간 헤매기도 했고, 길이 좋다가 애매하다가 그렇다. 숲길과 메타세쿼이아 길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구간이었고 덕분에 조용히 다닐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장지천길은 단독으로 걷기보다 앞뒤 코스를 선택해서 같이 걷는다면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틀에 걸쳐 송파둘레길을 걸었고, 도시에서 여행하는 기분이라 즐거웠다. 송파구가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길을 다녀보니, 특정 지역에 끊어지지 않는 둘레길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루트를 무리하게 짜야하는 경우도 있고, 자연스럽게 길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길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그 모든 것들을 감안했을 때 송파 둘레길은 꽤 잘 조성된 길이다. 다만, 길안내를 목적으로 한 이정표 외에 '송파둘레길' 사인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꽤 여러 군데 대형 사인판이 걸려있어서 눈에 걸렸다.
꽃피는 봄이 오면 다시 한번 걸어봐야지 생각했다. 봄에 더 아름다울 것 같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