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이빙 Level2 자격 취득기
몇 해째 생각만 하던 프리다이빙에 도전한 것은 아빠의 병환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부모의 죽음은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지하는 사건이라던가. 아빠의 상실이 가까워질수록 나 자신이 소멸하고 있다는 것도 실감되기 시작했다. 예상수명과 삶에 남아있는 시간들을 역산했고, 시간이 흘러가면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버킷리스트의 우선순위가 조절되는 시기였다. 더 중요한 것, 더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할 수 없게 되는 것들을 리스트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일들은 ‘이미 늦음’으로 분류되어 리스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지금이어야 하는 일’의 리스트 최상단에 프리다이빙이 올라왔다. 내 체력과 건강상태를 고려했을 때 더 나이가 들면 처음부터 시작하기엔 무리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첫 수업은 8월 7일이었다. 그 사이에 결국 아빠가 입원하시고 투병하셨고 위독해지셨고 돌아가셨다. 거의 매일 병원에 갔고, 장례를 치렀고, 엄마를 돌보았다. 그 사이 생각을 멈추기 위해서, 기억한 것을 잊기 위해서, 감정을 물에 씻어내기 위해서 틈틈이 잠수풀에 갔다. 그리고 11월 26일에 강사님으로부터 자격증 발급 안내를 받았다. 잠수는 인생의 가장 무겁던 시간들을 위로해줬지만, 아이러닉 하게도 그 시간을 몸으로 기억하는 상징처럼 남게 되었다. 원래는 동남아의 푸른 바다에 바다거북이를 따라 맨몸으로 헤엄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이제는 꼭 바다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씩, 물속에 뭔가를 놓고 오고 싶을 때 잠수풀이 기억날 것 같다. 무거운 물이 머리를 누르고, 세상이 고요한 가운데, 태양빛이 물속을 따라와서 비추던. 분명히 강사님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늘 혼자 물에 들어가 있던 기억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그렇게 고요하고 편한 느낌이었던 것은 아니다.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기 때문에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온통 허둥거린 기억이다.
첫날 수업은 레벨 1 수업으로, 프리다이빙 체험에 가까운 수업이었다. 좀 긴장해서 집에서 일찍 나섰다. 잠실 제2수영상, 스킨스쿠버 풀장이라고 쓰인 건물로 갔다. 건물 앞에는 입장 시간을 기다리며 모여있는 다이버들과 다이빙 장비들이 쌓여있었다. 하나같이 건장하고 건강한 느낌이라 다소 주눅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좀 씩씩해진 건 슈트 덕분이었다. 두꺼운 고무 슈트를 끼어 입으니까 마치 갑옷을 입은 양 씩씩해진 기분이었다.
잠수풀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태양빛이 이렇게 멋지게 들어오는지 몰랐다. 바다 아니라 수영장이라도 깊은 물속으로 떨어지는 빛은 근사하다는 걸 이 날 알았다. 얼마 전 본 호러영화 디바에서 잠수하면 나타나는 환영이 떠올라서 잠시 무서웠지만 어차피 저 다이빙대에는 아마도 평생 올라갈 일이 없으니 무서워할 게 아니라는 걸 자신에게 금방 알려주었다. 잠실 잠수풀은 5미터 깊이의 풀로, 워낙 접근성이 좋다 보니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분위기였다. 이날은 또 주말이었어서 더 붐비는 듯했다. 물은 깨끗했고 5미터는 생각보다 깊었다.
한참을 이론 수업을 하고 호흡 연습을 했다. 물에 들어가서 다시 호흡 훈련을 한 뒤 가장 처음에 한 일은 줄을 잡고 똑바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예상대로 물속은 평화롭고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서 물속에 들어가는 건 쉬웠다. 잘할 것 같던 사람들이 의외로 5미터 바닥을 짚지 못했다. 수압에 놀란 것 같았다. 이퀄라이징이 잘 되지 않으면 귀가 아파서 바닥까지 내려가기가 어렵다. 이퀄라이징은 쉽게 말하면 귀로 공기 빼는 일이다. 기압을 맞추는 것. 초보용으로 코를 잡고 숨을 귀로 불어넣는 방법을 배웠다. 이퀄라이징이 잘 되려면 몸에 힘이 빠져야 하는데 그게 귀가 아프면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로 보였다.
그 뒤에 머리부터 거꾸로 내려가기도 그럭저럭 잘 해냈지만, 거기서부터는 나도 이퀄라이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거꾸로 서자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이날 사진을 보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늘 불쑥 올라가 있는 것 같다. 이 문제는 그래도 그다음 수업에서는 좀 해결이 되었다. 처음으로 잠수풀에서 수중 사진을 찍었다. 물속의 빛이 신기해서 한참 바라보았다.
두 번째 잠수풀 방문에서 바로 level 2 수업에 돌입했다. 두 번째 수업에서는 줄 없이 첨벙 물로 들어가는 덕 다이빙도 배웠다. 첫 수업에서 그럭저럭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임을 알게 되었다. 근력도 필요했고 요령도 필요했다. 이퀄라이징이 생각보다 숙제였다. 긴장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몸에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강사님은 눈이 크고 둥근 여자분이었는데, 눈을 좀처럼 깜빡이지 않으면서 똑바로 쳐다보며 꾸지람을 했다. 수심이 별로 무섭지 않았던 지라 좀 멋대로 움직이거나 안전수칙을 잊고 움직이다 몇 번 혼이 났다. 강사님의 젖은 얼굴에 번뜩이는 눈이 인상적이었다. 너무 혼냈다 싶은지, 마지막에는 격려도 약간 해주었다. 사실 좀 혼나는 것도 좋아하기 때문에 나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누군가에게 혼나는 일도 흔지 않은 일이다.
강사님이 가평으로 오라고 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K26이었다. 26미터 깊이의 잠수풀이 있는 그곳. 날씨가 너무 좋았다. 내가 운전했고 두 명의 카풀 동지를 태웠다. 하늘과 구름이 정말 그린 듯 푸르고 예뻤다. 잠수풀로 쏟아지는 햇살도 근사하겠지 기대하며 액셀을 밟았다.
그렇게 도착한 K26. 생각보다 넓고 깔끔했다. 대기공간도 쾌적하고 샤워실도 충분했다. 기대대로 풀장에 볕도 너무 잘 들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역시나 여기도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시간대별 예약자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주말이기까지 했으니 적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깊어도 다들 물속에 늘 잠겨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수중에 떠있는 사람의 수가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었다.
K26잠수풀은 크게 3단계로 나눠진다. 잠실 풀과 같은 5미터. 위 사진에서 보이는 바닥이 5미터 지점이다 그곳에 실내 휴게실로 통하는 창이 달려있어서 보이는 곳이다.
그리고 위 사진 바닥에 동그란 검은 홀이 보이는 곳 까지가 10m. 저 깊은 홀이 계속 계속 깊어지면서 26미터까지 도달한다. 어둠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듯한 시각적 압도감이 있다. 레벨 2에서는 저 10m까지가 훈련 범위다. 처음 왔는데도 쉽게 깊이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난 일단 10m에서 만족해야 했다. 긴장 푸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8미터 전후에서 귀 압력이 느껴졌다. 긴장을 너무 풀려고 하면 코어가 무너져서 몸이 휘거나 오리발을 불균형하게 차서 경로가 휘어지곤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이렇게 깊은 잠수풀은 첫 방문이었으니 허둥지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누구나 기념사진을 남기는 창문이 있었다. 이날 창문을 향해 그럴듯한 포즈를 취해보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그럴듯하기는커녕 뭔가 절박한 포즈가 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저기까지가 5미터 정도의 깊이다. 5미터 잠수해서 슈트의 부력으로 떠오르려는 몸을 붙잡고 대충 포즈까지 취하는 건 좀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다시 하라면 좀 더 잘할 수 있다. 깊이 들어갔다가 위로 떠오르거나, 아니면 몸에서 공기를 좀 빼서 가라앉혔을 것이다. 하지만 촬영은 거의 막바지에 이루어진지라 뭔가 아무 정신이 없던 때였고 이제 그만 집에 가고 싶었다. 좀 우스운 사진이지만 그럭저럭 추억의 사진이 되었다.
잠실 풀에서 덕 다이빙 연습을 좀 했다. 그리고 두 주 정도 뒤에 다시 K26를 방문했고 이번엔 좀 나았다. 이런저런 기술도 배웠고, 응급구조 방법 같은 것도 배웠는데, 구조해서 오는 것보다 구조대상 역할을 하는 게 더 어려웠다. 7,8미터를 잠수한 다음 기절한 것처럼 둥둥 거리며 구조를 기다리라니. 이건 구조하기보다 더 심리전이었다. 아마추어가 구조해주기를 기다리는 아마추어라니. 기다리다 참지 못하고 수상으로 허우적 대면서 올라가기를 두 번이나 했다.
구조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게 시험이라 꼭 통과해야 하는 건데 쉽지가 않았다. 깊은 수심에서 기절한(척한) 다이버의 턱과 목을 잡고 열심히 오리발로 올라온 다음, 수상에서 몇 가지 응급조치를 해야 했다. 문제는 사람을 들어 올려 수상에 머리가 나와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내가 계속 오리발을 차야한다는 점이었다. 내 상대는 운 좋게도 작은 체구의 가벼운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허벅지에서 힘이 빠지면 상대가 어김없이 물을 먹었다. 콜록대며 상대가 머리를 들었고 당황한 나는 루틴을 잊었다.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너무 미안해요.”
상기된 표정으로 사과하자 앳된 얼굴의 대학생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상냥하게 말했다.
“미안하단 말 말아요. 미안할 일이 아니에요. 나는 괜찮아요. 다시 해봐요.”
방금 뒤집어져서 물을 먹은 작은 사람의 입에서 이런 다정함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안 했어도 내 딸뻘인 또래의 사람인데 마치 내 엄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인간의 성숙함은 사실 나이와는 큰 상황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몇 살이어도 이미 성숙하기 마련이다.
“내가 물먹는 건 괜찮아요. 다음엔 내가 물 먹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요.”.
학생은 그렇게 의연하게 말하더니 다시 힘차게 오리발을 저어서 잠수하러 들어갔다. 기절한 다이버가 되어 구조를 기다리기 위해서. 이 학생의 목을 잡아들고 수상으로 떠오르던 순간 내 마음에 불타던 사명감은 실제 구조사의 사명감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으리라. 힘차게 수직으로 오리발을 차며 떠올라 구조 루틴을 했다. 이 기특한 아이에게 또 물을 먹일 수 없었다. 허벅지가 터질 것 같았다. 결국 OK사인이 났다. 프리다이빙 수업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여담이지만, 함께 수업을 듣던 근육질 총각들은 서로 영 합이 맞지 않는 것 같았다. 다정한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실패 사인을 받았다. 부디 그다음엔 잘 통과했기를.
마지막 수업은 다시 잠실 풀이었다. 언제나처럼 갑옷처럼 든든한 슈트를 입으려고 하자 강사님이 말렸다. 이제 온수풀이라 슈트 안 입고 다들 수영복만 입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슈트를 입을 줄 알고 늘어진 옛날 수영복을 들고 온 나는 다소 상심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남들도 다 슈트를 안 입길래 눈치껏 안 입었다. 덕분에 전무후무한 잠수풀 수영복 사진이 남았고 처음에는 수영복이 어쩐지 좀 쑥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아, 휴양지용 알록달록 수영복 입을 것 그랬다’는 진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남들이 입은 붉은 계통 수영복은 파란 물색과 정말 잘 어울리더라. 빨간 수영복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무슨 인어에 홀리기라도 한 듯 바라보았다. 물과 빛이 만나면 색깔을 묘하게 왜곡하는데, 그 빛이 물 밖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붉은 색이 특히 그랬다.
난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1분 30초 스태틱은 한 번에 통과했다. 엎드려 몸에 힘을 빼고 둥둥 떠서 시간을 잰다. 1분 30초 정도는 특별한 훈련 없이도 웬만한 사람은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이것도 심리적인 문제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남아있는 산소량과 상관없이 머리를 들게 된다. 침대에 누워서 연습하는 것과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과도 차이가 있다.
막판에 참지 못하고 머리를 들 뻔했는데 강사님이 어깨를 살짝 건드리며 양을 열 마리만 세라고 했다. 귀가 물속에 잠겨있기 때문에 그 소리가 몽롱하고 이상하게 들렸다. 왜 양이죠. 지금 몇 초나 남은 거죠. 정말 열 마리만 세면 되나요. 알고 싶은 게 많았지만 무력하게 세기 시작했다. 양 하나, 양 둘. 양 열 마리를 다 세었다. 고개를 들었더니 통과라고 했다.
첫날 5미터 내려가는데도 긴장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5미터 정도는 편안해졌다. 이제 이퀄라이징을 언제 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새 알아서 하고 있고 기압이 맞아 들어간다. 그새 아가미가 생긴 건 아니겠지만 자연스러워졌다. 그게 숙련인가 보다. 강사님이 바닥까지 잠수한 다음 뱅글뱅글 돌아보라고 했다. 왜 돌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돌아보라 하니 열심히 돌았다. 뱅글뱅글 돌다 보니 천천히 돌라고 한다. 천천히 돌다 보니 뭔가 통조림 깡통 속의 꽁치나 참치 같은 것이 된 기분이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얌전하게 물속에서 뱅글뱅글 도는 일 같은 것은. 사실 강사님이 좀 무서웠기 때문에 강사님이 눈을 크게 뜨면 웬만하면 토를 달지 않았다. 하여간 마음에 드는 뱅글뱅글 사진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은 더 근사하고 그럴듯하게 도는 것 같았지만 나는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더 연습을 갔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 강사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대충 다 해낸 거 같은데 이제 자격증 주시나요. 하지만 물어보지 않고 얌전히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자격증 등록을 알리는 연락이 왔다. 아 끝났구나. 기쁘고, 안도감이 들었다.
Level 3를 바로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건 바다에 한 번 나가본 뒤에 결정하기로 했다. 잠수풀은 좋았지만 바다 잠수는 적성에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다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더 스트레스받으며 배울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아직 연습이 더 필요하고 이미 10미터를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 만족한다. 애초에 바다 모래에 깊게 내리 꽂히는 햇살을 따라서 곧게 내려갈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원하는 물고기 옆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기술이 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바다거북을 따라가 보는 게 목표였지만, 그건 이제 괜찮다. 몇 해 전 세부의 바다에서 멀어져가던 거북의 뒷모습과 빛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보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사람도 변하고 원하는 것도 변한다.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리고 슬픔이 수용성이라고 하는 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더라. 물속에 잠겨서 슬픔도 많이 씻어냈다.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았다. 좋은 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