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인선 Dec 26. 2018

간병

1인분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한다.



늙어서 신체 역할을 잃어간다는 것의 두려움은 혼자서 해내던 일을 하지 못하는 것부터 비롯된다. 신체적 자립박탈을 느끼게 하고, 거기에 '' 손을 빌려 일상을 꾸려나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신까지 더해진다. 이러한 이유들이 사람들이 노화를 두려워하는 이유겠거니 지레 짐작 했었다. 자아를 분할하는 .


3년 전 여름이었다. 소품 담당 스태프로 여름 워크샵 공연을 하게 됐고 작품의 배경이 1970년대여서 동묘를 자주 갔었다. 그런데 흔하다면 흔한 크고 두꺼운 손전등이 잘 안 보였다. 하얗고 밝은 LED 손전등이 대부분이었고 깔때기 모양의 전구를 끼워야 하는 무거운 손전등이 안 보였다. 그러다 역 근처에서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천 하나를 깔아두고 잡동사니를 파는 노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 부채질을 하는 풍채 좋은 노인은 아랫니가 하나 남은 입으로 자신의 보자기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열심히 피력했다. 원하던 랜턴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LED 랜턴은 아니었으니 이 정도면 됐다 싶어 그의 말을 듣고 만 원짜리를 건넸지만, 잔돈으로 내기를 바라는 노인의 눈치에 근처 길 건너 은행에서 바꿔오겠노라고 약속했다. 우리는 서로의 약속을 지켰다. 나는 은행에서 돈을 바꿔와서 잔돈이 남지 않게 랜턴을 구매했고, 그는 남에게 랜턴을 팔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바로 앞 철물점에서 새 건전지를 사서 랜턴의 빈자리에 끼웠지만, 노인의 장담과 달리 랜턴은 죽어 있었다. 기기 고장인 건지, 전구가 나간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철물점에서 나와 노인에게 랜턴의 무작동에 대해 말하니 당황하며 랜턴을 분해해가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자신이 직접 작동을 테스트 했었고, 아마 다마만 죽어있는 것이며 자신의 집에 다마가 한가득이니 오늘은 환불을 하고 다마를 갈아와서 내일 다시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시 오겠다고 했을 때 오지 않았지만, 당신들은 다시 날 찾아주었으니 당신을 믿겠다고 했다. 그때 처음 노인은 우리에게 존댓말을 했다. 랜턴은 아마 아주 오래전에 노인을 만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이 랜턴의 무작동에 당혹스러워했다. '작동'은 노인의 자부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찰나의 만남에도 그 단어에 힘주어 말하는 노인에게는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었다.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같이 붙박이처럼 붙어있던 둘은 무작동에 당혹스러워 했다. 노인은 작동을 위해 부품을 갈아야 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그 랜턴을 사지 않았다. 지금도 노인과 함께 그 자리에 있을지, 아니면 다마가 갈아 끼워져 팔렸을지 모른다. '작동'이란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결국 원하던 랜턴은 4천원에 동묘 안쪽 가게에서 사고 카페에 들렀다. 어느 테이블이든 카페 주인과 가까울 정도의 좁은 카페에서 얘기하다가 공방 얘기가 나왔다. 나는 워낙에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라 아마 한 달 이내로 임대 문의를 써 붙일 거라고 얘기하며 서로 웃어대고 있는데, 어느 아저씨가 들어와서 집에 가져갈 조각 케이크가 있냐고 묻자 카페 주인이 이번 주가 마지막 장사라 들이지 않았다고 했다. 순간 속이 매우 쓰렸다.


많이들 그런 소리를 한다. 1인분만 하면 된다는 말. 1인분은 막연한 생각보다 그 이상의 힘을 내어야 가능하다. 간병은 참 대단한 일이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간병은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이나 자아를 반으로 나누어야만 하는 일이다. 아직 신체에 큰 손상이 없는 나로서는 누군가의 간병을 받지는 않지만 나 자신을 돌보고 간병한다. 신체적 아픔은 물론 최근 1달간 많이 흔들렸던 내 정신과 건강을 붙잡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까지 평생 자신을 간병하고 있는 셈이다. 나의 경우는 침실에 밤이 흘러들어오면 시작되는 간병이다. 안락함을 느끼는 동시에 힘들어하는 나 자신을 달래 재워야 한다. 어제는 밤을 새워 놀았다. 오로지 내 몫인 내 간병을 피해 도망치는 셈이다. 다 적지는 못했지만, 종강 전후로 참 바쁘게 살았다. 작동하기 위해, 1인분을 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나에게 신경 쓰는 이들이 없는 이곳. 버티기 힘든 나 혼자만의 간병. 시간을 삼킨 글들을 더 떠올리고 다듬어 올릴 여력이 없다. 목이 마른다. 물을 마시기 귀찮으니 그냥 자러 가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에덴의 이방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