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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인선 Dec 28. 2018

밤을 머리맡에 이고 눕는 일

누구나 자신을 해치는 상상을 한다.


살아갈 힘은 모르는 전시장을 찾아가 얻는다. 도슨트도 없이 발길이 잘못 트인 사람처럼 혼자 유유히 떠다니다가 발길을 지우고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이방인처럼 살아가다가 전시와 관련된 무언가를 발견하고 알게 되면, 그 반가움으로 산다. 반가움의 간격이 줄어야 살 수 있다. 자꾸만 우울이 날 지운다. 


얼마 전 졸업 공연을 하면서 정말 준비 기간 막바지에 우울도 아닌 분노에 의한 화병이 크게 왔었다. 숨이 턱 막히고 가슴 위로 누군가 주먹질을 하는 듯이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병적인 답답함이 자꾸 쇄골에 내려앉아서 모든 숨이 한숨이 되었고, 쇄골 위로 피가 돌지 않아서 하루가 몽롱하게 사라졌다. 피가 말라 생긴 입술 위의 균열 사이로 망가진 내가 소리를 안고 튀어나올 뻔한 걸 억지로 꿀꺽 삼켜내는데 정성을 쏟았다. 그러면서 생긴 버릇이 있는데, 숨이 지나는 길을 견디기 힘들어질 때마다 차라리 가만히 호흡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그러면 심장이 귀까지 올라와서 뛰는데, 얕은 죄책감이 들어서 잠시 견딜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하루에 몇 번의 호흡을 멈췄는지 모른다. 밖에 해가 지났는지도 모르고 전기로 만들어진 빛을 계속 보면서 지내니 건강은 말할 것도 없이 다 망가졌었다. 잠시 잠을 잘 수 있는 틈이 생기면 극장에 누워서 속눈썹 사이에 낀 조명 불빛을 세다가 정말 말 그대로 기절했다. 졸업 공연이 끝나면서 당장에 분노를 마주할 일이 적어져서 숨을 돌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분노가 사라지니 공허만 남는다. 감정을 몰아 써서 기대하는 일상의 정도 폭이 너무 커졌다. 관계에 기대하면 실망뿐이라는 걸 제일 잘 아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나 혼자 떠안은 외로움에 공감하는 이가 없었다. 그게 무기력이 되고 우울이 되었다. 


여린 살에 지는 딱지는 살을 닮아 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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