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과 자궁암 예방백신, 피임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 셋이 그동안 입시 공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몸을 살피기 위해 산부인과 문을 두드린 건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한 일이었다. 아마도 함께 가보자는 협력의 힘 덕분이었을 것이다.
학생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의 사생활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한 사람씩 진료실로 들어왔다. 보통 이 나이 때의 환자들은 오랜 공부와 스트레스로 생리불순 문제를 갖고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이 친구들도 셋 중 둘은 생리를 언제 할지 모르는 아주 불규칙한 상태였고, 한 명은 극심한 생리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막 성인이 되어 스스로의 몸을 점검하러 온 귀여운 여학생들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그들 앞에 펼쳐질 멋진 인생을 위해 산부인과 의사로서 몇 가지 질문과 적절한 조언을 건넸다.
항상 그렇듯이 자궁경부암 예방백신을 맞았는지부터 확인했다. 세 명 중 한 명은 중학생 때 엄마의 권유로 백신을 맞았지만 두 명은 “그게 뭐예요?”하고 동그란 눈으로 되물었다. 실제로 진료실을 찾은 여성 중 절반 이상이 두 학생과 같은 반응을 보일 만큼 자궁경부암 백신에 대해 모르는 이들이 많다.
세상에는 다양한 백신이 있으며, 새로운 백신 역시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백신이 전 세계인의 주요 관심사인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주요 예방법 중 하나가 바로 백신 접종이기 때문이다.
자궁경부암 백신은 자궁암을 일으키는 인유두종 바이러스 중 가장 위험한 4개 혹은 9개의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을 형성해주는 백신이다. 그간의 임상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백신을 맞으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자궁암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월등히 낮아졌다.
이처럼 장점이 많은 백신이지만 접종률은 생각보다 낮다. 이유는 다양한데, 맞고 싶지만 비용이 부담돼서, 부작용이 걱정돼서, 엄마가 못 맞게 해서, 때로는 그게 뭔지 전혀 몰라서 접종 기회를 놓치곤 한다.
비용의 경우, 한 번 맞을 때 20만 원이 넘으니 당장은 부담될 수 있지만, 대신 총 3회(현재, 2개월 후, 6개월 후)를 맞으면 평생 면역이 형성된다.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 실제로 임상 현장에서 부작용을 경험한 적은 거의 없고, 그 확률도 미미하다. 최근에는 남자들도 많이 맞는 추세인데,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건 물론, 여성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확률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나와 내 딸들 역시 백신을 맞았으며, 주변 지인들에게도 접종을 권장하고 있다. 혹시 내가 병원의 매출을 올리려고 자신을 꼬드긴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우리 병원에서 맞지 않아도 좋으니 어디를 가서든 꼭 맞으라고 당부하기도 한다.
백신에 대한 설명을 끝내면 이어서 두 가지를 당부한다. 바로 정기검진과 피임의 중요성이다. 특히나 성적 접촉이 시작된 후에는 자궁암 검진과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궁 난소의 모양과 종양 여부를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자궁암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인유두종 바이러스가 성 접촉을 통해 감염되기 때문이다.
분비물의 변화도 눈여겨봐야 하는데, 평소보다 분비물 양이 늘어나고 냄새가 달라졌다거나 가려움, 출혈 등이 동반될 경우 반드시 염증 확인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최근에는 검사기법이 발달하여 분비물만으로도 생식기에 어떤 종류의 염증이 생겼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진료를 하다 보면, 과거에 비해 성적 접촉을 시작하는 연령대가 낮아졌고, 좀 더 쉽게 파트너와 만나고 헤어지는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또한 사회의 흐름이요, 그에 따른 가치관 변화라 딱히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자신과 타인을 보호하고 건강한 성생활을 위해서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 파트너와 헤어지거나 이상 증상이 생겼을 경우, 꼭 병원에 가서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다른 사람을 만날 자격이 없다.
마지막으로 진료를 받은 여학생은 두 달 이상 생리를 하지 않아서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남자 친구가 있고, 콘돔으로 피임을 하고 있다는 말에, 콘돔은 피임 성공률이 75% 정도이니 완벽한 피임을 위해서는 다른 피임법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 후 진료를 시작했다.
배란을 안 하는 난소인지, 자궁 안에 문제가 생긴 건지 생리불순의 이유를 찾기 위해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나는 화들짝 놀랐다. 흑백의 초음파 영상 속에서 심박이 꼬물대는 태아의 모습이 잡힌 것이다. 불과 몇 초 전 내가 버릇처럼 말하던 피임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처럼 모니터에 보이고 있었다. 임신 3개월이었다.
나도 그 여학생도 얼음이 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을 나섰다. 같이 온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하겠는가? 몇 달만 일찍 병원을 찾았다면, 지금 어떻게 피임하는지 확인하고 제대로 된 피임법을 가르쳐서 본인이 원하는 20대를 시작하게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잘 모르면 무조건 찾아와서 그냥 묻지 그랬니. 여성이 산부인과의 문턱을 넘는 일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일까? 별생각이 다 들었다.
임신이 성스럽고 중요한 일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해 엄청난 비용을 들이며 국가 차원에서 임신을 장려하고 있다. 하지만 원치 않는 시기에 갑자기 아이를 갖게 된 여성들은 뜻하지 않은 삶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를 예감한 듯 어두운 표정으로 나가는 여학생을 보며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남녀가 하는 성적 접촉의 경우, 임신을 하는 주체는 여성이므로 축복이든 시련이든 여성이 더 많이 짊어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번 글은 당부가 아닌 간절한 부탁으로 끝을 맺으려 한다. 여성을 사랑하는 남성들이며,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성들이여.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둘 다 피임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임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시길. 그리하여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축복 속에서 태아와 만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