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실금
이제 50대 중반에 접어들다 보니 진료실에 환자가 들어오면 첫인상과 나이, 불편함을 겪을 만한 증상이 삼각관계처럼 하나의 회로를 이루어 머릿속에서 절로 그려지곤 한다.
‘나 까다로워요’라고 쓰여 있는 얼굴도 있고, 피곤하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잿빛 얼굴도 있다. 그런가 하면 환하고 혈기가 넘쳐서 다시 한번 주민번호 앞자리를 확인해 보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는데, 내 눈에는 책임보다 흉터가 남은 것처럼 보인다.
그날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푸근한 옆집 아줌마 같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긴 머리는 간수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커트를 친 나처럼 짧은 머리였고, 열심히 반평생을 넘게 살아와서인지 머리카락 절반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걷다 보면 소변이 질금질금 새더라고요. 옷이라도 젖으면 어찌나 자존심이 상한지. 내가 이럴 줄은 몰랐지요.”
변해버린 자신의 몸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또한 나의 몸이니 어쩌겠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 덕에 아이들은 번듯하게 명문대에 들어가서 큰 아이는 전문직이고, 둘째는 법학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누가 그러지 말래도 내 머릿속은 컴퓨터 돌아가듯 세 딸의 사윗감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있었다. 비슷한 나이 때의 아들을 가진 엄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사돈이 되어보는 상상을 하는데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나조차 웃음이 난다.
어쨌든 이분은 소변을 보느라 밤잠을 깊이 못 자고, 낮에는 요실금 때문에 자주 옷을 갈아입고, 심할 때는 완경 이후 치웠던 생리대를 다시 사서 붙인다고 했다. ‘이러다 더 나이가 들면 기저귀를 차고 다시 아기가 되어 무덤으로 가는 건가?’ 혼잣말도 하면서 말이다.
요실금은 나도 모르게 소변이 새어 나오는 현상을 말한다. 소변은 그냥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신장에서 노폐물을 걸러 방광으로 내보내면, 방광은 저수지처럼 소변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은 방광의 소변이 150cc 정도가 넘으면 요의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고장 난 방광 감각과 뇌는 적은 양의 소변에도 요의를 느끼고, 빨리 소변을 봐야 한다며 잘못된 지시를 내린다. 소변을 보고 나서도 시원치 않은 잔뇨감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소변을 보고 싶어도 내보내지 못하는 배뇨장애를 앓기도 한다.
이런 질병 중 요실금은 분만 등 골반근육이 손상되거나 나이가 들면서 많이 발생한다. 소변을 볼 때 골반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조절하는데 근육이 약해지거나 조절이 잘 안 되면 원치 않게 소변이 새는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요실금은 원인과 증상에 따라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복압성 요실금: 배에 힘이 들어가는 행동(기침, 줄넘기, 심하게 웃는 경우)을 하면 소변이 새는 경우
② 절박성 요실금: 소변이 마렵다고 느끼는 순간 강하고 급한 요의 때문에 소변이 새는 경우
③ 혼합성 요실금: 복압성과 절박성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
④ 신경인성 방광 환자의 요실금: 뇌와 척수, 말초신경 등의 이상으로 배뇨장애가 생겨서 무의식적으로 방광이 수축하여 새는 경우
⑤ 범람 요실금: 정상 방광 용적(평균 400cc) 이상으로 소변이 채워져도 배출을 못하여 넘쳐서 새는 경우
⑥ 일과성 요실금: 방광염, 위축성 질염 등 원인이 분명하게 있는 경우
요실금 치료는 경우에 따라 약물 복용, 시술, 수술 등 다양하기 때문에 먼저 진료를 받아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상담해보니 이분은 완경 이후의 삶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자연의 섭리에 맞춰 곱게 늙어가자고 마음먹은 듯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호르몬 치료를 권했을 때도 난 그런 것과 상관이 없다며 당당하게 살아온 터였다.
진료를 해보니 당연히 노화가 진행되어 온몸의 피부가 얇아지듯 여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는 외음부와 질 부위 역시 위축되어, 가렵고 만지면 피가 날 듯한 위축성 질염도 앓고 있었다. 아픈 것도 힘들지만 가려움을 참는 건 더욱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외음부가 가려우면 정말 고역일 터, 지금이라도 병원을 찾아와 이 불편함의 고리를 줄여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리 늦게 병원을 찾았을까 궁금했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분은 전업주부로 자녀 셋을 키우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아이들이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정말 최선을 다했고, 감사하게도 자녀들 모두 장성하여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챙기면서 살게 되었다. 노환과 암으로 20년 넘게 수발하던 시부모님도 이제 다 돌아가시고 퇴직한 남편과 오붓하게 남은 인생을 즐기며 여행도 다니려 했건만 이제 그녀의 몸이 말썽이었다.
걷다 보면 소변이 새니 자신감을 잃었고, 최근에는 척추 디스크와 협착증이 악화되어 100미터만 걸어도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과거에도 허리가 아픈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고 물리치료와 침 맞기를 병행하여 증상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러다 운동을 다시 그만 두자 체중이 늘면서 혈당이 올라갔고, 이제는 허리와 다리가 아파서 걷는 운동조차 못할 형편이 되어 너무 우울하고 힘들다고 토로했다.
“맞아요, 그렇죠. 이해해요. 얼마나 고생하며 사셨어요. 그런데 몸도 챙기셔야죠.”
오랜만에 한가한 진료실에서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내 마음도 비에 젖은 듯 가라앉으며 ‘나도 마찬가지예요’ 외치고 싶었다. 세상 최고의 엄살쟁이이자 아픈 것을 참지 못하는 나에게 이분은 나의, 아니 수많은 여성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했다. 동시에 무언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듯하여 이 글로나마 나만의 해법을 고민해본다.
여성은 보통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에 완경을 맞이하게 된다. 이 무렵 어떠한 변화가 여성의 몸에서 나타나는지 마치 연대별 사진을 보듯 내 머릿속에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그러나 어쩌랴. 인간은 눈앞에 닥쳐야, 엉덩이에 불이 붙어야 달리는 게 본능인 것을. 어릴 적 시험 볼 때도 그러지 않았나? 부모님의 잔소리는 물론 수많은 책과 강연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나만은 변치 않을 것이다, 무쇠같이 살 것이다’라고 여기면서 사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몸의 변화가 진행되면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이키기는 쉽지 않다.
누구든 나의 수고를 마음이나 말로 인정할 순 있어도 내 몸을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나 아니면 나를 챙기고, 가꾸고, 아끼지 못한다. 적어도 살아 있는 한 아프지 않고 잘 걸어 다니며, 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고, 그만큼 스스로의 건강도 돌보며 최고의 인생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잘 돌보아서 나이가 든 후에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