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 프로필과 난자 냉동
트렌드와 여성의 몸: 바디 프로필과 난자 냉동
키 크고 활발해 보이는 40대 초반의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보기에도 건강하고 뭔가 자신감 있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를 만나는데 그때마다 버릇처럼 실제 나이와 눈에 보이는 나이를 가늠해 보곤 한다. 이것이 어긋나면 다시 차트를 들여다보고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 의심하며 주민번호를 묻기도 한다. 내가 아는 비슷한 나이 때의 지인들과 비교해 보면서 이 분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이토록 젊고 활기차 보이는지 알아내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고 좋은 정보를 얻기도 한다. 이 내용은 기억해 두었다가 내 삶에 적용하거나 다른 환자들에게 조언할 때 활용한다.
이분은 딱 보기에도 건강했으며, 피부도 생기 있고, 무엇보다 나이에 비해 젊은 태도를 보여주었다.
“갑자기 몸무게가 줄어서 그런지 생리가 불규칙해졌어요.”
체중이 갑자기 왜 변했느냐고 묻자 그녀는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느라 그렇다고 답했다. 요즘엔 자신의 현재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각 나이 때별로 자신의 몸을 사진으로 남기는 게 유행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호기심이란 친구가 내 귀를 세게 치는 듯했다. ‘오호, 그럼 나도 60이 되기 전에 몸을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겨둘까?’ 그런 생각에 그날 저녁 비키니 수준의 속옷을 입고 폼을 잡으며 남편 앞에서 멋지게 내 계획을 말했다가 내가 찍어줄 테니 사진관에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답을 듣고 1초 만에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나이 때별로 몸의 프로필 사진을 찍는 최근의 트렌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기억하고 사랑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나는 이런 방식도 환영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몸은 우리가 사는 인생의 하드웨어이다. 어떤 원료를 넣었는지에 따라 그 기능이 천차만별이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적당히 쉬는 시간을 갖고 기름칠을 잘해서 사용했는지에 따라 성능도 차이가 난다.
이 여성은 좋은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가꾸고자 했지만 급격한 다이어트와 근력 운동 때문에 호르몬의 균형이 잠시 깨진 상태였다.
여성의 몸에서 지방은 체중의 약 1/3을 차지한다. 급격한 지방 양의 감소나 증가, 비만 등은 여성의 호르몬 대사에 영향을 주어 배란을 억제하고 생리를 불규칙하게 만든다.
생리불순은 결과에 불과하다. 시상하부-뇌하수체-난소-자궁으로 내려오는 호르몬 축이 튼튼하고 건강해야 하는데 이 축이 흔들린 셈이다. 여기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유전자, 지방, 근육, 간 등에서 이뤄지는 인슐린 대사 등 다양하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의 대사를 서서히 건강한 방향으로 변화시켜야만 생리의 대사에 영향을 주지 않게 된다.
우리는 지방을 미워하지만 막상 지방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오래전 원시시대에는 몸에 지방을 얼마나 잘 보관하고 사느냐가 천재지변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척도였다. 지방이 우리 몸의 주요 에너지원이었으니 얼마나 중요했겠는가?
여성이 임신을 하면 복부에 지방이 증가하는데, 이는 태아를 보호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또 완경 후에는 복부로 지방이 모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난소에서 만들지 않는 여성호르몬을 지방에서 만들어서 그 부족함을 조금이나마 보충하려는 조물주의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알수록 신비로운 게 우리의 몸이다.
물론 이분은 몸을 멋지게 만들어서 사진으로 남기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고, 나 역시 이런 것들이 건강한 신체를 가꾸는 좋은 동기가 된다고 응원해주었다. 다행히 생리불순도 심하지 않아서 잘 치료되었다.
한 가지 더, 이분은 지금 당장은 결혼을 앞두지 않았고 임신 계획도 전혀 없지만 최근의 트렌드를 따라서 난자 냉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항암치료를 받게 되어 난자가 임신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 등 아주 특수한 때에만 난자 냉동을 시행했으나 최근에는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사회적으로 출산율이 엄청나게 줄어들어도 가임력만큼은 후회 없이 준비하려는 이들이 늘면서 난자 냉동이 유행하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의 사례가 방송을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여성이 ‘나이가 많으면 난자를 얼려놓자!’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 호르몬 주사로 과배란(억지로 과한 배란을 시킨다는 의미)을 시켜서 15개 정도의 난자를 채취하여 냉동 보관한다. 젊고 건강한 난자를 채취하여 보관하다가 나중에 상황이 바뀌어 임신을 원하면 시험관 시술을 통해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보관 기간은 보통 3~5년 정도고, 약 300만 원 정도의 고비용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문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개인의 선택에 맡길 일이지만 부화뇌동하여 불필요한 비용을 들이고 과배란을 시도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정확한 진단을 받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시술을 했으면 하는 게 내 개인적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