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곰팡이가 있다고?
고도 비만인 그녀는 30대 때부터 당뇨와 고혈압 증세로 약을 먹으며 치료를 받아왔다. 가족력이 있는 당뇨의 경우, 그로 인한 여러 합병증을 주의하며 살아야하기에 여러모로 고단하다. 그중에는 여성 질환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녀와 처음 만난 날, ‘산부인과 의사인 나와 친구하고 살아야 한다, 이상이 생기면 주치의인 나에게 얼른 찾아와야 한다’고 신신당부한 기억이 난다. 그 뒤로 내원할 때마다 음료수를 들고 와서 매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면 도리어 내가 미안할 정도다.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너무 예쁘다.”
어느 날, 산부인과 탈의실에 깔아둔 헬로 키티 모양의 발판 두 개를 보고 그녀가 감탄하며 내게 물었다. 탈의실이 좁아서 혹여 환자들이 넘어질까 봐 깔아둔 것인데 그녀의 마음에 쏙 든 모양이다. 곧 이사를 하는데 자기 집 현관에 놓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오면 입주 선물로 드리겠다고 했다. 귀여운 그녀는 정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고, 나는 약속대로 똑같을 제품을 두 개 사두었다가 병원에 방문한 그녀에게 입주 선물로 건넸다. 작은 발판을 들고 뛸 뜻이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내 입가에도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다리는 혈액순환이 안 되어 상처투성이에 어떤 부분은 궤양 직전까지 상태가 악화되어 붕대를 칭칭 감고 다닌다. 그녀의 경우, 가족력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최근에는 인구의 1/4이 당뇨 진단을 받거나 당뇨 전 단계를 오가는 걸 보면 유전만 탓할 순 없을 것 같다. 환경의 영향도 분명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당뇨의 기본 개념은 이렇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몸속에서 소화 작용을 거치며 다양한 에너지로 변하는데, 그중 포도당은 췌장에서 나오는 ‘인슐린’이란 호르몬에 의해 우리 몸의 세포 안에서 에너지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혈액 안에는 당이 넘치지만 정작 세포로는 들어가지 못해 세포가 제 기능을 못하고 굶은 상태가 된다.
이렇게 혈당이 올라가면 여성의 경우, 질 안의 산도에 문제가 생긴다. 여성의 질 안에는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외에도 여러 가지 정상균주가 산다. 그들은 H2O2 등을 만들어 질 안을 pH 4 정도의 약산성 상태로 유지한다. 병균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뇨를 앓거나 비만일 경우, 혈당이 올라가고 면역이 감소하면서 질 내 산도가 깨진다. 이렇게 되면 곰팡이균이 빠른 속도로 증식하여 심한 경우 질 안에 희고 누런 곰팡이가 가득 차게 된다. 이와 같은 곰팡이는 많은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Candida albicans라는 균에 의한 캔디다성 질염이다. 임신을 해도 우리 몸의 혈당이 약간 증가하는 터라, 임산부 역시 캔디다성 질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캔디다성 질염에 걸리면 외음부가 가렵고 붓고 따가운 증상을 보인다.
진찰을 하면 눈으로도 곰팡이의 염증을 확인할 수 있고, 분비물을 묻혀서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진균의 균사체들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PCR 검사를 이용한 기법도 발달하여 증상이 뚜렷하지 않을 때에도 미리 예방적인 치료를 할 수 있다.
곰팡이는 바이러스, 세균 등과 함께 오랫동안 인류와 공존해온 존재들로서 약물로 쓰이거나 발효에 도움을 주는 등 이로운 역할도 하지만 염증과 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캔디다성 질염의 경우 치료약제로 항진균제와 연고 등이 있으며, 한 번의 치료로 끝내기보다는 질 안을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여 재발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환자들에게 외음부나 질 안을 자주 씻지 말라고 당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몸은 스스로 자정하고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과다한 스트레스와 무리한 활동으로 면역력이 스스로 작동할 틈은 주지 않으면서 이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출시된 수많은 세정제, 영양제, 항균물질을 사용하는 건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우리가 할 일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몸에게 회복할 틈을 주는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치료 목적의 약물 외에 임의로 이런 제품을 사용하는 건 그다지 권하지 않는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우리 몸은 어떤 기계나 약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가 막힌 발명품이다. 그중 여성의 자궁과 질은 알수록 정말 신기한 기관이다.
주먹보다 작은 자궁이 임신을 해서 태아를 키울 때면 엄청나게 커지는데 풍선처럼 얇아지지 않고 오히려 근층이 두꺼워진다. 그리하여 3kg이 넘는 태아, 800ml의 양수, 500g의 태반, 2kg의 혈액 증가 등 엄청난 변화에 적응하고, 분만 시에는 자궁을 열고 수축하는 호르몬에 반응하여 강한 힘으로 태아를 세상에 내보낸다. 이때 계속 수축만 하면 산모가 엄청난 고통을 느낄 텐데, 중간 중간 이완 과정을 반복하여 산모에게 숨 쉴 틈을 주고, 자궁의 근육 층이 허혈로 상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질은 또 어떠한가? 평소에는 생리혈이 흘러나올 정도로 좁지만 태아가 나올 때는 그 큰 머리가 부드럽게 빠져나오도록 10cm 이상 확장되고, 분만 후 약 6주 정도가 지나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오며 수십 년 동안 임신 후 변화하는 여성의 몸을 관찰하고, 숱한 분만을 지켜봤지만 여성의 자궁과 질이 갖는 신비로움 앞에선 매번 감탄하게 된다.
나는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 기억하고, 내 몸을 존중하고 아끼며 사랑하길 바란다. 그러면 몸은 우리가 스스로의 무한한 가능성을 표현하며 원하는 바를 이루고 살 수 있도록 엄청난 보상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