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

이유가 어딨어

by 이일일


왜 그렇게까지 하는가.


'그렇게'는 어디까지를 이야기하는 걸까.


사실 이 질문은 내가 나에게 종종 던졌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내일 당장 답사를 하며 공간을 안내해야 하는 상황에 답사를 시켜줄 공간이 기억이 잘 안 나면,
그 먼 곳을 난 새벽에라도 내려가야만 했다.
공연이 끝난 이후 내가 직접 철거해야 하는 것들이 없더라도 새벽 내내 쓰레기라도 옆에서 치웠다.
서비스 런칭 전 테스트를 할 때는 남들 다 한 번씩 누르는 버튼을 난 두 번 세 번을 누르며 테스트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렇게까지 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나는 나에게 무기가 별로 없다고 늘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무기가 별로 없다.


무기가 별로 없는 이유는 극단적인 게으름 때문인데 공부하는 것도 싫고 노력하는 것도 싫다.

너무 게을러서 미루는 것이 너무 당연해진 나머지 너무 미루는 나에게 미안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 내가 스타트업 신입 매니저에서 임원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건 모두 무기가 없어서이다.

무기가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그렇게까지' 하는 것 밖에는 없었다.




석유회사에 다니던 시절, 위계가 어디보다 분명했던 회사의 신입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회사 소유 주유소가 몇 개인지, 충전소가 몇 개인지 외우고

수요일마다 있는 주간회의 회의록에 사업장에서 올려준 매출을 옮겨 적는 것이 전부였다.


오기가 생겨 제출했던 100장짜리 전기충전기를 주유소에 들여놓자는 제안서는 첫 장부터 반려당했다.


"이거 하지 마"


내 의욕이 남아있던 시절 해냈던 것이 없었던 건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스토리보드'였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낡아 썩어빠진 회사의 홈페이지는 들어갈 때마다 고역이었다.


'내가 바꿔보리라.'


다시 120장짜리 스토리보드를 그때 당시에 PPT로 만들었고

노력이 가상했는지 다행히도 승인을 받은 내 스토리보드는 단돈 100만 원에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어냈다.

IT회사 COO까지 경험한 지금 그때의 그 홈페이지는 정말 돌아보면 최악이지만,

그때 내가 했던 노력은 그게 '최선'이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전부'였다.


주유소 총무가 주유소 소장이 될 수 있게 하는 '어드밴스' 교육은 원래도 있었지만

나와 대리님의 손을 거쳐 조금 더 실용성 있는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그렇게 배출한 교육생들은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교육받고 성장해 주유소 소장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처음 '강연'이라는 것을 준비하고 선보였던 것 같다.


나름대로 본인 사업장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계시던 소장님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고 싶었다.

그래서 소장님들의 이야기를 스토리로 풀어내 홈페이지에 실었고,

그렇게 선정된 소장님들의 사업장에는 소정의 상품과 무려 '법카 회식'을 지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별 것 아닌 것들이 사업장에는 나름 활기를 불어넣었던 것 같다.


내가 만들 수 있었던 첫 직장에서의 '그렇게까지'는 여기까지였던 것 같다.

이후 내가 할 일은 하루에 10분이면 끝나는 루틴 한 업무들 뿐이었고 나는 점점 지쳐만 갔다.

시간이 많을수록 지쳐만 가는 내 생활은 인생을 이대로 살면 안 될 것 같은 위기감을 주었다.


1년을 다니면서 이런 것들을 이루고 나서 회사 생활도 안정이 되고 지루해지던 찰나에

다시 꿈을 꾸었고 9개월 간을 쓰리잡을 뛰었다. 주말에도 일하고 휴가를 써서도 일을 하면서

난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기획사로.




그렇게 안정적이던 석유회사를 떠나 시작된 기획사에서의 전쟁 같은 일상들은 날 숨 쉬게 해 주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출근해서 하루를 전쟁같이 보내고 돌아오면 그렇게 잠이 잘 왔다. 뿌듯했다.


소심한 나에게 늘 변수가 따르는 기획사 판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곳이었다.

아웃바운드로 영업을 해야 했고 성과를 만들어야 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때에

회사 동료와 어느 대학교의 총학생회실 문을 누가 두드릴 것인지 '가위바위보'로 정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가끔은 날 웃게 해 준다.

"이번엔 형님이 두드리실 차례잖아요."

참 겁도 많았다.


OT 시즌이 시작될 때는 전형적인 리조트 영업이기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리조트를 방문했다.

리조트에 몇 평짜리 방들이 몇 개가 있는지 강당과의 동선은 어떻게 되는지 식당까지 멀지는 않은지

어떤 강당에 몇 명이 들어갈 수 있는지 방 안에 침구류는 얼마나 지원이 되는지 화장실은 깨끗한지

정말 꼼꼼히도 알아보고 공부하고 외웠다.


모든 사진을 다 찍어 브로셔를 만들고 나면 그걸 들고 대학교들 문을 두드렸다.

영업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계약을 따내고 새터를 한 번 운영하고 나면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보통 학생회가 답사를 그전에 가보고 결정하기 때문에

흔히들 기획사는 스타렉스 답사를 함께 가서 리조트를 설명하고 안내해 주곤 했었는데

그날도 어떤 학교 학생회와 답사를 가기 전날이었던 것 같다.


분명 이미 다 보고 왔고 머릿속에도 있던 리조트였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팀장이었던 친구에게 "어떡하지?"라며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워낙 기세가 있던 팀장은

"그냥 내일 가서 눈치껏 보면서 설명하면 돼, 잘하잖아. 너무 걱정 마"라고 했지만

난 결국 리조트로 차를 움직였다.

몰래 가서 모든 동선을 파악하고, 둘러본 나는 그제야 안심을 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은 내 친구는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또 그랬던 것 같다. 나도 그때는 웃었다.


고려대학교 축제였나, 마마무를 섭외했다. 나 혼자 산다에 화사가 출연하고 있던 마마무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찔렀던 때였던 것 같다.

고려대학교 축제의 연예인 차량 진입 동선은 최악이다. 모래주머니를 아무리 쌓아도 마마무의 카니발 차량은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었다.

결단이 필요했던 나는 차를 인도로 올렸다. 경광봉도 없이 오로지 목소리로만 사람들에게 소리치며 족히 인도 500미터 이상을 차량 이동을 시켜 마마무 의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친 짓이었다.

그럼 어떡해. 늦으면 안 되는데, 늦으면 고스란히 열심히 준비한 학생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데.


충북대 축제 이야기와 속초 빛축제 이야기, 과천과학관 전시, 등등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나중에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난 이곳에서 내가 하는 노력이 '그렇게까지'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터지고 연봉협상이 결렬되면서 넘어온 IT 신생 스타트업.

이제 막 결혼하고 넘어온 이 회사에서 '그렇게까지'의 정점을 찍은 것 같다. 앞으로 또 모르지만.


회사를 다녔던 5년 동안 아내와 저녁을 같이 먹었던 것이 10번도 안 되는 것 같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우리에게 '신혼'은 없었다. 난 가끔 아내에게 이야기하면서 울 때가 있다. 미안함을 넘어선 감정이다.


새벽 4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베트남 지사가 있었던 덕분에(?) 1년에 반 이상은 베트남에 출장을 가 있었다. 2022년 말부터.

2022년 중반에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로 온몸에 반점이 생겨 2주 반 정도를 쉬었다. 처음이었다.

몸에 결석도 생겼다. 3종 병원을 다니며 각종 치료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세일즈, 고객관리, 조직관리, HR, 면접, 각종 면담, 조직운영, 시스템 도입, 인사총무, 국책사업, 베트남 관리, 자회사 관리, PM팀 운영, 프로젝트 관리, 사람 관리, 재무계획 등등 손을 대지 않은 것이 없었다.


회사에서 누군가보다 내가 늦게 퇴근한 적도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사무실 지박령이었다.

덕분에 나는 자율 출퇴근이었다.


기획 리뷰하면 보통 4시간 정도 걸릴 때
어떤 화면 영역은 스크롤로 내려갈 수 있는 화면인지 베트남 개발자들에게 표시해서 알려줘야 한다고 할 때
테스트할 때 이리저리 마구 눌러보고 버그인 것 발견하여 PM에게 전달할 때
면접 길어지면 3시간 정도 보게 되어 뒤의 면접자 기다리게 만들 때
약속 있다고 퇴근해 놓고 사무실로 다시 와서 일할 때
술 마시는 자리 불려 나가서 술 마시다가 죽었다고 했는데 다시 와서 일할 때
다 안될 것 같다는 멤버 계획 세워서 대표한테 컨펌받고 내가 담당하겠다고 할 때


뭐, 부끄럽지만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이런 때에 날 보는 눈빛들은 모두 한결같았다.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


뭘 왜 그렇게까지 해, 그냥 하는 거지.

그냥 하는 거야. 이게 당연한 거야. 나에게.

그럼 '그렇게까지' 안 하면 가능한 방법 있으면 누가 나한테 좀 알려주든가.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었어.




변태 같은 집요함. 해야 하면 제대로 해야 하는 성격.

내 인생은 전형적인 P에 해당하지만, 나는 일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J였다.


간단하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냥 하는 거다.'

이유가 있는 순간 변명과 핑계는 많아지고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명분은 언제나 생길 수 있다.

그럼 어차피 일은 완성할 수 없거나 내가 원하는 수준만큼 될 리가 없다.


내가 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을 일의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변태 같은 집요함이 필요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일을 끝낼 수가 없었다. 덕분에 나와 함께 일하는 모두는 힘들어했다.

예전 총학생회가 끝나고 나에게 쌍욕을 하던 후배도 있었다. 난 웃으며 인정했다. 내 잘못이라고.


아직도 난 똑같다.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당연하다. 당연히 '그렇게까지 해야 한다.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성장'이다. 돈주고도 못 배울 '성장'.

따라오는 사람은 반드시 '성장'시켰고, 그렇게 성장한 친구에게 후회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내가 이렇게 확신에 차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자만해서가 아니다. 다 알아서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성장했고, 특히 나는 머리가 똑똑하지도, 공부를 잘하지도,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에. 더군다나 게으르기까지 한.


맞다. 공부를 해서, 그런 노력을 해서 조금 더 빠른 길로 가거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택하는 길로 가는

그런 방법도 물론 있다. 나는 그렇게 이루어내면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내가 못하니까.

내가 나에게 박하게 구는 것은 적어도 나 스스로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이유는 없다. 그냥 하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내가 회사에서 인정받고 사람들이 신뢰를 보내주는 것도 다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말단 신입 매니저에서 COO가 되기까지도 나는 모든 시간을 '그렇게까지' 보냈다. 부끄럽지 않게.


나의 가장 크고 유일한 무기이다.

불편한 것 한 번 더 하고, 남들이 안 하는 것 한 번 더 하고, 내가 나를 의심해서 한 번 더 하고 해 보는 거다.


'그렇게까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