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마다 나랑 점심 먹자
"아니 C랑 왜 못 친해지는 거야, 아직도?"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솔직히."
"아니, 밥이라도 같이 먹든지,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냐."
A대표는 B대표에게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참을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어느 누구와도 관계를 잘 구축하지 못하던 B대표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C야, 목요일마다 나랑 점심 같이 먹는 걸로 하면 어때?"
"네???"
아찔했다. 입에 넣던 부대찌개가 역류하는 듯했다.
기껏 한다는 이야기는 '목요일마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얘기였고,
이보다 더 최악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같이 밥을 먹고 있었던 C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눈으로 누구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미 이번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 것도 겨우 따라온 C였다. 그런데 웬걸, 더 최악이 있을 줄이야.
보통, 누군가와 밥을 먹는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이 맞다.
아무런 생각 없이 같이 밥을 먹던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사실 이때만 해도 정말 별생각 없이 밥을 같이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대학교만 들어와도 누구와 밥을 먹을지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지에는 불편한 사람도 등장한다.
사실 불편하면 별로 같이 먹고 싶지 않지만, 여럿 같이 있으니 참아준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밥 먹는 시간만큼 소중한 시간이 또 없지 않을까.
이제는 예능에나 웃으며 나오는 이야기지만 "오늘 뭐 먹을까?"라고 묻는 부장님의 질문이 있고,
식당에는 함께 가며, "나는 제육"을 외치는 부장님을 바라봐야 하는 그런 시대는 솔직히 지났다고 본다.
(아, 물론 아직 있을 수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든 분들께 묵념.)
점심값이 비싸 엄두가 안나는 동네라면 도시락을 싸와서 자연스럽게 '도시락팸'이 생기기도 하고,
(반찬의 빈부격차가 있을 수 있으며, 오늘 내가 부실하면 살짝 눈치 보일 수 있는 정도(?) )
근처에 다른 회사의 구내식당이 있는 경우 꼭 나의 지갑사정과 적절히 타협을 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기에
함께 걸으며 운동도 할 겸 '파티'를 구성해 '구내식당 파티원'을 모집하여 원정을 떠나기도 하고,
에라 모르겠다, 나는 잠이나 잘란다, 건드리지 마라. 하며 나만의 시간 속으로 잠수를 타는 사람들.
먹는 것이 뭐 대수냐며 지하철역 근처의 김밥 한 줄과(하지만 무려 기본 김밥이 5000원) 옆의 편의점에서 사 온 '꼭 누가 먹는 걸 보면 먹고 싶어 지는' 육개장 사발면을 택하는 사람들.
이제 식사시간은 현대 직장인들의 하루의 소중하고도 단비 같은 영역으로 자리 잡은 것이 분명하다.
먹는 것은 다양하지만 그 시간이 가지는 가치는 아마도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그런데 목요일마다 같이 점심을 먹자니. 이게 도대체 말이라고 하는 것이냔 말이다.
다행히 불같은 C는 부대찌개 파편을 튀기며 거절, 아니 B대표를 혼쭐을 내주었고
덕분에 고정적인 개인의 점심시간은 사수해 냈다.
점심시간 사수한 것이 뭐 그게 또 크게 대수겠냐마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과거의 일이지만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유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로, A대표로부터의 이야기를 B대표는 어떻게 '저렇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대한 충격
두 번째로, B대표는 사람과 친해지고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
첫째.
밥이라도 먹든지 뭐라도 하라는 이야기에
'정말 일주일에 한 번 고정적으로 밥을 먹자'라고 머릿속에서 결정하고 질러버리는 것은 상당히 신선하고 직관적이다. 결정하면서도 얼마나 본인이 기특했을까.
둘째.
궁금해하는 내가 어리석다.
아마 어떻게 사람하고 친해지는 것인지, 관계를 맺는 것인지를 모를 가능성이, 아니, 모르는 것이다.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수도 있다.
팀원들과 친해지기 위해 밥이라도 한 번씩 같이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정하진 않았지만 꾸준한 시도 끝에 함께 제육을 먹는 리더분들이 계실 수도 있고,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아니면, 도대체 쟤네들하고 어떻게 친해질까, 늘 머릿속이 복잡하고 고민만 가지고 있다가
결국에는 어색한 인사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서로 보내는 관계들.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들의 시간을 지켜줘 보자.
시간을 지켜주는 것은 옵션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배려이자, 예의인 것 같다. 이제는.
아 아니다, 예전부터 그랬었는데 이제 조금씩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켜지고 있는 것 같다.
밥 좀 같이 먹을 수 있고, 시간도 좀 같이 보낼 수 있다. 물론이다.
다만, 시간을 미리 정하고, 서로 뭘 먹을지 생각도 좀 하면서 교류하고 공감할 시간도 좀 가지고 전혀 소통이 없었고 지극히 공적인 관계만 존재했다면 또 아이스브레이킹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요즘 사람들 흔히 MZ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예의가 없고 프로 불편러여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원래 지켜졌어야 하고, 그게 이상한 것이 아닌데 분위기에 압도되어 이야기하지 못했던 순간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 이야기하는 내가 이상해지는 상황들이 너무 많지 않았을까.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용기도 내기 시작했다.
오히려 좋다. 원하는 것들을 꽤 분명하게 알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다. 조금만 노력해 다가간다면.
다가가는 데에도 조심스러움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기에 이런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난 생각해 보면 거의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았다.
내가 같이 먹으면 불편할 거라는 생각에 아예 차단했던 것인데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었고 이유가 있었는데 그 부분들은 달성을 했으므로.
(그래도 카드는 꽤 자주 줬었던 것 같다. 커피도..)
그저 여기에서 다가가는 것도 어렵고, '그럼 어쩌란 말이냐'를 외치는 분들도 계실 수 있기에
서로의 시간을 좀 지켜주십사 한 번 적어본 것이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적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너무 친해지려고 하지 말자. 그냥 내버려두자.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게 제일 좋다.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꼭 반드시 친해지지 않아도 우린 한 팀이 될 수 있고, 오히려 일이 잘 돌아가게끔 할 수도 있다. 가능하다.
만약 친해지길 원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나를 다 버려야 하는 수준으로 여러 가지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관련해서도 언젠가 글로 적어볼 날이 오겠지만 우선 한 번 내버려둬보자.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면.
그게 내 마음도 편하다.
실제로 요즘 팀원들과 이야기 나누기 어려워하시는 부분도 있고,
그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회사를 다니는지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고
점점 상사분들은 회사를 더 오래 다니게 되시는데 신입들은 나이가 더 가면 갈수록 어려지고
여러 가지 복합적인 상황들로 인해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지는 세상이 오게 된 것 같다.
어려워진 것은 그들이 MZ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때 마치 사회문제인 것처럼 떠들어대길래 공부까지 해본 적이 있으나,
실제로 막내였던 04년생부터 86년생까지 다양한 직원들과 일해보고 소통도 해보았는데
MZ라고 묶기에는 기준도 없었고 역시 '사람 by 사람'이었다. 내 기준에서는.
어쨌든.
서로 바라는 것 없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한 인간으로서 존중과 배려가 있는 한,
솔직히 말해서 일단 기본은 먹고 들어간다. 한 번 해보시라.
아, 참고로 업무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업무에서는 다른 소통방식도 있고 관계가 좀 다르니.
이건 인간으로서 친해지는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가까워지고 싶다면, 살짝 멀어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