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질의 중심은 당신

시니어의 말말말

by 이일일


정치질.

정말 이런 것에 관심 없으신 분들도 적어도 한 번쯤은 들어보지 않으셨을까.

그놈의 정치질.


특히 회사에서 종종 일어난다는 이 정치질이라는 것은

회사생활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보는 사람들도 별 어려움 없이 상황을 이해하고 "쯧쯧" 욕해준다.


정치질이라는 것을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모두 어렴풋이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만약에 이런 정치질이 나로부터 나온다고 누군가 이야기한다면?


그럼 어떤 느낌일 것 같은가.


"우리 회사 정치질의 중심은 당신입니다."




그렇다.


정확히 내가 들었던 이야기이고,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났다.

2023년이었던가. 회사에 즉시전력감 채용"병"이 있는 것처럼 시니어 채용에 박차를 가했던 시기가 있다.

늘 "키워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에 적응할 수 없다고 외쳐왔든 내게도

어찌 보면 사람적인 측면에서도 꽤 스트레스를 차지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시니어.

도대체 누구를 시니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채용해 봤던 시니어분들은 전원 실패였다. 100%.

단 한 명도.


나의 부족함과 회사의 부족함, 상황의 여의치 않음 등등 또 많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한 결과이겠지만,

솔직히 과감하게 이제 나는 이 정도 스타트업에 함부로 시니어를 채용하는 것은 감히 재앙이라고도 한다.

조금 더 미친 척 이야기하자면 '경력자 채용 금지', '3년간은 내부에서 성장을 이룩해 낼 것'이라고

초기 스타트업의 사내 목표로 삼고 한 번 제대로 각 잡고 덤벼봐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의견이다.


모든 회사의 상황이 다르고 시스템도 다르기에 당연히 딱 맞아떨어지는 전략을 없을 테지만,

적어도 시니어를 채용함에 있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건들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회사든.


1. 시니어의 경험과 이력을 판단하고 검증할만한 실력이 우리에게 지금 있는가
2. 누군가 시니어의 불타는 초심과 실무를 해내도록 이끌만한 환상의 용병술을 가지고 있는가
3. 시니어가 회사 내의 시스템이 없다고 느끼시지 않도록 옆에 붙어 시스템이 되어 줄 인재가 있는가
4. 시니어가 업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기분 나쁘지 않게 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도와줄 인재가 있는가
5. 시니어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능력이 없더라도 버텨줄 수 있는 자금력이 있는가
6. 혹시 우리의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느낄 때 시니어가 제 발로 나갈 수 있게끔 할 묘책이 있는가
7. 시니어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들이 기존에 해왔던 방식과 우리 회사 현재의 방식을 기가 막히게 조율하고 접목시킬 전략이 있는가
8. 도움을 청했을 때 시니어가 어떤 "링크"만 툭 던져주는 경우, 이 상황을 바라보는 직원들이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고 용인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는가
9. 시니어의 업무가 자연스럽게 체크되고, 딱 시니어가 불편해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을 정도까지의 확인 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며, 딱 적당한 수준의 업무가 자동적으로 돌아갈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10. 시니어와 정말 진정으로 친하게 지낼 자신이 있는가


(죄송합니다. 적대적으로 느껴지셨다면, 다시 한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지금까지 채용하고, 최선을 다해 함께 일하려고 노력하고 시스템을 구축해 보고자 노력하고 그렇게 했던

시니어분들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계신 부분들이 있었고,

어떤 것들은 지금에서야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바탕으로 적은 것이다.

위의 사항들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면 어떤 부분에서든 시니어는 어려움이자 불편함 그 자체일 수 있다.


정말 무수히 많은 시니어들과 싸우고 솔직하게 이야기도 나눠보고 술도 마셔보고 해 봤지만

초기 스타트업에서 그들을 담을 그릇이 되지 않는다고 그냥 결론을 내리고 채용하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로

시니어들과 함께 열정 넘치는 스타트업을 함께 하면서 그들의 연봉을 맞춰주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어쨌든 그런 시니어에게 내가 들었던 말 중에서 꽤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 회사 정치질의 중심은 당신입니다."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소방수 역할을 하고 지분도 있는 데다가 대표의 신뢰도 받는 것 같으니

내가 하는 말에 당연히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일에 있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또 나는 다 잘하는 것처럼 굴고

말은 또 꽤나 싸가지 없이 할 말, 못 할 말 다 하는 스타일이었으니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어지간히 재수가 없었나 보다. 웃으면서 저 이야기를 할 정도면.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그 사람과 어떤 풀 만한 감정도 없었고 사건도 없었다. 그는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일만 똑바로 잘하면 되는 것이었고, 회사에서 받아가는 돈만큼 이득을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다.

그 이상 그 이하 어떤 것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정치질이라는 것을 입에 담는 사람 중 본인이 정치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는 긍정적인 정치질, 살아남기 위한 정치질, 부정적인 정치질, 쓸모없는 정치질 등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정치질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간의 다툼도 어느 정도 필요하고..


나에게 "정치질"의 중심이라고 한 것은 너무 어리석은 말이었다.

이 회사의 모든 사람들을 내가 채용했고, 조직을 만들어냈으며, 오퍼레이션을 맡고 있고

문제가 터지면 가장 먼저 소방수로 불려 나가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 "정치질"이라니.

이야기 꺼낸 본인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고, 어떻게 커버를 쳐줄 수 없는 말이었다.


결과론적으로 그는 나중에 클라이언트 회사로 이직을 했고,

이직해서도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다니는 것으로 들었다. 내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는 건..

(더 말하지 않겠다.)


정치질은 내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이득을 얻을 것이 없는데 정치질을 하는 바보는 없다. 꽤 힘이 많이 들어가고 품이 많이 들어간다.


이 회사에 어떻게 보면 인위적으로 정치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던 입장이었기에

그의 말은 크게 틀린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라.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혹시 누군가 하는 이런 이야기들에 상처받고 괴로워하고 있다면

한 번 모든 에너지를 총 동원해서 "내려놓음"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비우고 내려놓는 것을 배우는 것만큼 인생에 큰 배움도 없었던 것 같은데

이런 사람들 덕분에 어쩔 수 없이 배우는 것도 그냥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덕분에 어떤 면에서는 덤덤하게 대응할 수도 있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고 나를 지킬 수도 있게 되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야 어렵고 힘들 수 있겠지만 한 번 되고 나면 그것도 또 하게 되더라.

견딜 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 건 어쩌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지 않을까.


난 어디에서나 정치질의 중심에 서고야 말겠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당당하게 인정받으며!

이 글을 보며 적어도 한 사람 이상 떠오르신다면 오늘 당장 내려놓아 주셔라.


이게 오늘 나의 정치질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