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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킨스데이 May 07. 2024

키위새가 사는 동네에 가보니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사는 '바오 패밀리'가 요즘 대세다. 한국에서 자연 번식으로 처음 태어난 푸바오가 4살이 돼 중국에 반환된 이후로 그녀의 쌍둥이 동생 루이바오와 후이바오 자매의 동영상을 보노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힐링이 된다. 한국에 바오 패밀리가 있다면, 뉴질랜드에는 키위새가 있다.     


  뉴질랜드의 국조인 키위새는 ‘키위, 키위’ 이렇게 운다고 해서 키위새라고 불린다. 동그란 몸통에 날개가 퇴화된 대신 타조처럼 다리가 발달했고 부리가 길다. 한 마디로 좀 특이하게 생겼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키위새 사랑은 엄청나다. 이 토종새를 멸종위기에서 보호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다. 또한 그 상징성으로 기념품샵에는 키위새 인형들뿐 아니라 티셔츠, 엽서나 카드 등 각종 아이템들이 진열돼 있다. 웰링턴의 TEPAPA 박물관에 가면 키위새가 전시도 되어 있고 그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태까지 한 번도 내 눈으로 직접 실물을 본 적이 없다. 기회는 여러 번 있었는데도 이 새가 수줍음 많은 야행성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여전히 신비한 동물이다.


러셀에는 이렇게 키위를 보호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안내문이 있다 © 2024 킨스데이

   

  키위새는 특이하게 포유류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조류들이 시각이 발달했다면 키위새는 후각과 촉각이 발달됐다고 한다. 부위 끝에 콧구멍이 있어서 후각을 이용해 땅 속의 곤충, 유충, 지렁이를 잡아먹는다. 또한 알을 부화시키는데 일반 조류 보다 두 배 이상인 80일 정도가 걸린다. 하지만 야생에서 부화한 키위새 중에서 90%는 6개월 내로 죽고 나머지 중 70%는 고양이, 담비와 같은 포식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그래서 급격한 개체수의 감소를 방지하기 위해서 뉴질랜드 국립 키위 부화장과 지역 사회와 마오리족이 이끄는 단체 등 뉴질랜드 시민들이 다 함께 키위새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예를 들어 키위새 종류의 하나인 쇠알락키위의 경우는 20세기 초 카피티섬에 다섯 마리를 방생했고 보존 계획이 성공한 덕택에 지금은 1,200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키위새가 산다는 부쉬워크에서 발견한 버그 호텔. 곤충을 위해 누군가 만들어 놓았나 보다 © 2024 킨스데이


  몇 년 전 북섬 최북단 베이 오브 아일랜드에 있는 항구 도시 '러셀'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내가 머문 에어비앤비는 시내에서 떨어진 바닷가 근처의 평화롭고 작은 동네 '타페카 뷰 포인트'근처였는데 신기하게도 이 동네에 키위새가 살고 있었다. 동네는 조용하고 깨끗했으며 선셋아 특히 아름답고 주변에 트래킹 코스와 부쉬워크가 있었다. 또한 키위새가 산다는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었고 개를 산책시킬 때 꼭 목줄을 채우라는 메시지가 적혀있었다. 그래서인지 동네에서는 키위새의 포식자인 길고양이나 담비를 전혀 보지 못했다. 밤에 운이 좋으면 키위새를 만날 수 있다는 자부심 섞인 동네 주민의 말에 빨간불이 나오는 작은 손전등을 들고 숨을 죽인 채 부쉬워크를 걸어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 작은 숲 속을 걷자니 살짝 무섭긴 했지만 키위새를 실물로 볼 수 있다는 기대반 설렘반으로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이 새들은 영리했다. 아니면 정말 샤이한 걸까? 어디선가 희미하게 우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기대감이 컸던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사람에게 노출되는 게 득이 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존재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특별 케어를 받는 국조이면서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고 나는 잠시 머물다 떠날 뜨내기 관광객 아닌가. 굳이 나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자비(!)를 베풀 필요가 없었다.


비 오는 날 질랜디아의 풍경 © 2024 킨스데이

  

  웰링턴에 225 헥타르의 숲 생물다양성이 복원된 최초의 생태보호 구역인 질랜디아(Zealandia)를 방문했을 때도 그곳에 키위새가 살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낮시간에는 이들을 당연히 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동물원이나 부화장에 갇혀있는 키위새를 인위적인 환경에서 만나거나 돈을 내고 야간 워킹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우연히 자연스럽게 키위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언젠가 나에게도 키위새와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와 같은 행운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키위새 인형이나 기념품도 아직 구매하지 않고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키위새들이 기후위기 시대에도 멸종되지 않고 야생 환경에서 건강한 삶을 누리기를 희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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