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킨스데이 May 22. 2024

뉴질랜드가 음주운전에 대처하는 자세


  요즘 어느 트로트 가수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고' 소식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언론 미디어에서는 누군가의 가족이자 친구였던 사람이 음주운전 때문에 세상을 떠난 가슴 아픈 사연이 공개될 때마다 분노와 한숨이 넘쳐난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우리나라의 음주운전 사고 건수가 그나마 감소 추세에 있다. 경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 음주운전 사고 건수는 13,042 건으로 전년 대비 13.4% 줄어든 수치다. 아무래도 회식 자리도 줄고 물가도 올라 밤늦게까지 음주를 하는 분위기가 가라앉은 데다가 나름 대리 운전 시스템도 잘 돼있는 편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뉴질랜드는 어떨까? 오클랜드에 사는 지인 중에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는 아내의 경우, 남편은 미리 캘린더에 술 약속이 있는 날짜를 표시해 두고 "이 날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올 거야"라고 가족들에게 공개 선언한다. 그러고 나서 그날 차를 가져갈 것인지, 그렇다면 어디에 주차를 할 것인지, 또는 누구 차를 얻어 타고 돌아올 것인지, 우버를 탈 것인지 또는 아내가 픽업을 할 것인지 여부를 미리 진지하게 논의한다. 만약 운전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술자리에서라도 논알코올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술을 정말 많이 마실 계획이면 다음 날 미리 반차나 휴가를 내기도 한다. 제대로 마시고 안전하게 돌아와 푹 쉬어 회사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니면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서 바비큐 파티를 열고 음주가무를 즐기기도 한다. 이런 광경들을 옆에서 목격하면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 사람들은 참 civilized 되었구나. 시민의식이 높아"라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서는 음주운전 사고가 상당히 적은 줄 알았다.   


위스키, 와인, 맥주와 셰프의 요리 그리고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던 야외 파티에서 © 2024 킨스데이

  

  하지만 막상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뉴질랜드 내 음주/마약 운전 사망건수가 2023년 기준 10년 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언론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음주/마약 운전으로 적발되면 벌금, 벌점, 징역형, 면허 정지나 취소의 페널티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음주측정기로 400 mcg 이상 나오거나 혈중 알코올 농도가 80 mg 이상이면 최대 3개월 징역, $4,500 뉴질랜드 달러 벌금, 최소 6개월 면허가 정지된다. 상황에 따라 차량을 압수하기도 한다.


  왜 뉴질랜드에서 음주/마약 운전 사고가 많을까? 뉴질랜드 자동차 협회(Automobile Association)에 따르면 첫째, 우선 음주단속을 할 경찰 인력의 부족이다. 음주/마약 운전 사고는 전체 교통사고에서 30%가량 차지한다. 뉴질랜드의 대략 3백만 명의 운전자를 대상으로 음주 단속을 해야 하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경찰 업무가 증가되어 해당 업무에 집중할 수 없는 상태다. 둘째, 여러 번 음주운전에 적발된 운전자를 대상으로 차량에 ‘Alcohol Interlock (시동잠금장치)’ 프로그램 설치를 명령했는데도 100% 실행이 안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동잠금장치란, 자동차에 시동을 걸기 전 호흡 검사를 통해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은 경우에만 시동이 걸리도록 하는 장치를 뜻한다. 셋째, 음주 운전 단속에 적발되는 사람들 중 상습 음주운전자가 많은데 이들에 대한 알코올 중독 진단 검사 및 재활 치료 의무화가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이런 요인은 뉴질랜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하다.   


뉴질랜드의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 및 사망 건수 증가 관련 기사 (이미지 출처: 1 news, rnz, AA)

 

  그래서 웰링턴의 포리루아 시에서는 올해 6월부터 지자체, 교통 당국, 경찰이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음주운전 사고 줄이기를 목표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펼친다고 발표했다. 광고판, 버스, 포스터 및 소셜 미디어 전반에 걸쳐 음주운전의 위험성을 상기시키는 교육 캠페인을 진행하고 지역 전역의 검문소를 통해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란다. 이 캠페인의 효과가 어떨지 기대된다.   


  결국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니다. 내 목숨뿐 아니라 남의 목숨도 위험해진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와 같은 안일한 생각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리고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음주운전 상습범은 언론 1면에 공개해 망신을 주는 규정이 있다고 들었다.

  이와 더불어 '술을 권하는 사회문화'가 아니라 '건전하고 안전한 음주문화'를 다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사실 뉴질랜드에 있으면서 술을 강요당한 적은 아직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건 미국 워싱턴 DC에서 직장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개인의 선택에 맡겼다. 술을 마시라고 권하는 경험은 한국에서 대학교 OT, 선후배 모임 자리 나 대기업, 글로벌 기업의 회식 자리 때뿐이었다. 아마 '내돈내산'이 아니라서 그런 거였을까? 다 함께 취하는 것이 친목의 미덕인 것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이런 일련의 경험을 통해 내가 '알코올 분해 요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는 스타일이라 스스로 적당히 잘 컨트롤하려고 한다. 여전히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친목을 다지는 것을 좋아하지만 맨 정신으로 취해가는 사람들을 혼자 기억하며 실망하는 것도 싫거니와 마시지도 않은 술값을 내기도 뭐해서 가능하면 1차에서 밥 먹고 2차로 차와 디저트를 선호하게 됐다. 그래서일까? 술보다는 '대화'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좀 더 자주 만나고 있다. 이럴 때 술은 대화를 거드는 가벼운 도구일 뿐 결코 목적이 되지 않는다.  

 

 어떤 배달 근로자가 방송에서 "제 명에 죽는 것"이 삶의 목표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누구나 도로에서, 주차장에서, 집 앞에서 안전할 수 있기를, 그래서 각자 제 명에 살다가 편안히 가기를, 적어도 살아가는데 그런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롭기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행복권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참고자료]

- New Zealand Community Law > Driving and Traffic Law > Drink/drug  driving

- AA Membership > AA Directions > Our growing drink problem  

- Scoop Regional > Drinking? Don't drive. 

- 경찰청 통계 자료 > 교통 > 음주운전 교통사고 현황 

- 나무 위키 시동잠금장치 

매거진의 이전글 웬만한 것은 다 있는 뉴질랜드의 당근마켓, 트레이드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