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영화를 보고 기분이 우울해진 것은 이 영화가 처음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제 강점 36년이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중장년 층에도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1900년대 말 밀레니언 시대에 태어난 청년들에게는 그 감정이 다를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감독이다. 그의 작품 바람이 분다.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 대부분의 하야오 감독의 작품들은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니 내가 잘 모르고 있었다.
영화를 소개하는 글은 이랬다.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꿈인 청년 지로. 하지만 1930년대 일본은 전쟁을 준비하고 지로에게는 전투기 개발 임무가 떨어진다. 파멸의 길로 들어선 일본과 함께 순수했던 청년의 꿈도 망가져 간다.
어떤 영화인지 궁금했다. 한 청년의 꿈이 전쟁으로 인하여 어떻게 망가졌는지..
그런데 영화의 내용은 청년의 꿈이 망가졌다기보다는 그 꿈을 좇아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는 한 사람이 있었다. 결국 그는 빠르고 가벼운 비행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가 개발한 비행기는 일본이 일으킨 2차 세계대전의 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비행기들은 다시 비행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가미가제 특공대. 겨우 비행기를 이륙시키고 조정하는 법만 가르쳐 전투에 보내진 어린 조정사들이 탄 비행기.
주인공 지로는 비행기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독일의 융 카스사를 방문하고 여기서 융 카스 박사의 도움으로 독일이 알려주려 하지 않는 비행기의 내부 등을 볼 기회를 얻는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와 비행기 제작에 전념한다.
비행기 개발 회사에 취직 한 지로는 열차로 회사에 가던 중 지진을 만나 열차가 붕괴하는 사고가 난다. 이때 열차에서 만난 아가씨를 구해주고 헤어진다. 이후 휴양차 휴양지에 온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되고 서로 호감을 가졌던 것이 결혼으로 이어진다.
일본이 진주만을 습격하면서 발발한 2차 세계대전.
지로에게 전투기 개발 임무가 주어진다. 지로는 좀 더 가벼운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비행기 날개 연구에 몰두한다. 그리고 가벼운 비행기 제로센을 개발하고 전쟁에 지로가 만든 비행기 제로센이 사용된다.
지로가 비행기 연구에 몰두할 때 그의 아내는 지병인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전쟁이 끝나고 자신의 비행기가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해 지로는 슬퍼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호리코시 지로와 호리 타츠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문구가 올라온다. 이 영화가 호리 타츠오가 쓴 자서전격 소설인 '바람이 분다(風立ちぬ)'에 제로센의 제작자인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를 섞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나오는 독일의 융 카스 박사와 일본의 호리코시 지로는 실제 인물로 비행기를 만들었던 인물들로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이 2차 대전을 대하는 태도와 행동은 달랐다고 한다. 융 카스 박사는 전쟁을 위해 비행기를 생산하라는 독일의 명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했고, 지로는 본인의 꿈을 실현한다는 명목 아래 비행기 제작에 열성을 다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그들에 대한 평가는 달랐다. 그러나 지로는 본인이 일본의 전쟁을 도울 비행기를 만들었다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한 소년의 꿈을 향한 열정을 보여주고 그 꿈을 이룬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포장한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옹호하는 영화로 보였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 같고, 내가 좋아했던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에 대한 마음도 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