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아트릭스 Mar 01. 2022

이제 걸어보자

매일 걷기 도전...

건강.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생긴 걱정거리다. 동생이 당뇨병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건강에 대해선 자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혼자만의 착각이라는 걸 알려주듯 건강검진 결과 대부분의 수치가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대사증후군은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결과치들... 퍼뜩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세 이모 중 두 분이 당뇨병이었다는 것을...


 대학 졸업을 앞두고 회사에 취직이 돼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회 초년생에게 직장생활은 신기한 것도 많고, 배워야 하는 것도 많은 시기였다. 또한 하루에 많아야 4시간의 강의만 듣던 학교생활과는 다르게 8시간이라는 근무시간을 꼬박 책상에 앉아서 일해야 했다. 집과 회사를 오가는 것만으로도 피곤했지만 퇴근 후 동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종로구 공평동에 위치한 회사까지는 한 번에 30여 분이면 충분히 도착하는 버스가 있었고, 그것도 앉아서 가는 행운까지 누렸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나를 포함한 여자 동기들의 몸매는 점점 일자형이 되어가고 있었다. 7Kg이 불어난 몸무게를 자랑하는 친구도 있었다. 난 2Kg만 늘었다며 안도하고 있었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몸이 불어 30년이 되어 가는 이제는 입사 당시의 두배(옷 사이즈) 가까이 되었다.

 점심에 근처의 조계사로 김밥을 사 가서 소풍을 온 듯 시간을 보내고 오는 동료들도 있었고, 인사동 거리를 산책하고 들어 오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그렇게 소중한 시간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우리는 언제나 지난 시간이 아련한 추억으로 남을 때 “아~ 그때가 좋았는데.” 하고 후회를 한다.  


 경희궁 근처의 사무실로 발령을 받고 이태 전 불어난 살과 동생의 당뇨를 보면서 건강을 챙기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의원의 디톡스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 아침, 점심, 저녁에 환을 먹고 점심에는 1시간가량 햇빛을 받으며 걷는 것과 저녁에 30분 정도 족욕하는 것이 주된 과정이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동료들과의 친목을 다지고 회사의 돌아가는 일들을 전해 듣는 시간이다. 당연히 50일간의 디톡스 기간 중 점심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독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이겨냈다. 몸무게도 줄고 보는 사람마다 살이 빠지고 혈색이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으며 행복했다. 살이 찌면서 사라졌던 자신감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언제나 다이어트의 문제점은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디톡스로 먹지 못했던 맛있는 것을 다시 먹기 시작하고 걷기를 중단했다. 다시 나의 몸은 도돌이표... 

    

 2020년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분리 근무를 실시하고 3월 중순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가능하면 사무실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근무하라는 지침에 방 하나를 사무실로 지정하고 그 방에 들어갈 때는 출근하듯이 집에서 입는 옷을 벗고 양말도 갖춰 신고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시작했다.  

 “세상에~ 우리가 재택근무를 하는 세상이 오다니·…. 야~ 이거 얼마나 할지 모르니 이 시간을 즐겨. 얼마나 좋아~, 출퇴근 시간 지옥철과 지옥 버스를 안 타도 되고, 보기 싫은 팀장님 안 보고 사는 건 더 좋고 말이야. 흐흐흐.”

 동료들과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이다. 직장 동료와 이런 대화를 나누며 키득댈 때는 행복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재택근무가 1년 11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재택근무 5개월을 지나면서 다시 건강이 걱정되었다. 당화혈색소 수치가 경계 수준이 되고, 나쁜 콜레스테롤도 위험수위를 찍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걸어보자. 휘트니스도, 요가원도 갈 수 없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 튼튼한 다리로 걷는 거다. 

 

집에서 조금 나가면 한강시민공원이 있다. 예전부터 많은 이들이 휴식을 위해 찾고 데이트족들도 자주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항상 좋은 것을 곁에 둔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른다. 

 “하루만 보 걷기. 시작해보자.”

 집에서 가까운 반포대교에서 시작해 동작대교까지 걸어보았다. 중간에 세빛둥둥섬과 서래섬이 있다. 서래섬으로 다리를 건너 들어가면 이 작은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다. 이곳에는 꽃밭으로 조성된 정원도 있어 잠시 다리 쉼을 가질 수도 있지만 길을 걷는 동안은 강한 햇빛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결정적인 단점이다.

 다음 날은 한남대교를 지나 동호대교를 걷는다. 기분이 좋고 다리가 허락한다면 성수대교까지 걷는다. 보폭을 크게 빨리 걸으면 한남대교까지 왕복 8천 보, 동호대교까지 만 보, 성수대교 만4천 보 정도. 한쪽으로 한강이 흐르고, 인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의 화단도 있으며 넓은 잔디밭이 있다. 중간중간 한강에서 낚시하는 낚시꾼들과 주차장 잔디밭 쪽에 차를 대고 차박을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난 동쪽보다는 서쪽인 동호대교 쪽 길을 훨씬 좋아한다. 동쪽 길은 한강을 바라볼 수 있는 구간도 적고, 나무들이 많아 답답한 길이 이어진다. 서쪽 길은 한강도 보이고, 꽃도 있고, 너른 잔디밭도 있다. 청둥오리, 두루미 같은 새들도 간혹 볼 수 있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요트, 수상스키를 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매일 걷자는 원칙을 세워 비가 오면 일주일에 3~4일 걸었다. 최근 최장 기록은 58일 연속 걸은 거였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중단되었지만.     


 코로나 19는 4차 대유행을 예고하고 요즘 모두들 몸을 사리는 이 역병(?)을 기회로 나는 건강을 되찾고 있다. 몸무게를 5Kg 이상 줄였고(걸은 기간에 비하면 큰 성과는 아니지만) 간혹 사무실에 출근하면 직원들로부터 날씬해졌다는 덕담을 듣는다. 덤으로 혈색이 좋아져서 보기 좋다는 말까지...

 요즘 나는 행복하다. 직장생활 초반의 날씬한 몸매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예전의 예쁜 옷들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고, 열심히 걸으면 무서운 당뇨병과 친구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더불어 설악산의 울산바위도 정복했고, 눈앞이 까맣게 변해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경험을 하게 된 덕유산 덕유평전도 정복했다. 행복한 삶,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 이 글은 2021년 종로구에서 진행한 행복 에세이 공모전에 응모하였던 글로, 기간을 현재로 수정하였다.

걷기 운동하는 한강의 야경
걸으면서 항상 보는 나무중 가장 좋아하는 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