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불안을 위한 내적 전환의 노력들
연재 8
심리와 마음을 돌보는 건 이 시대 모두에게 관심이 많고 필요하지만, 우리 세대는 젊은 시절부터 유독 갈구하는 영역으로 보인다. 앞서 말한 불안을 내재화한 사회, 경제적 경험들은 밑바탕이다. 나아가 어떻게 사는 게 옳은 것인가. 상대주의는 만연하고 세상의 잣대가 희미하다. 선과 악도 뒤섞여 구분하기 힘들다.
따를 스승이나 선배를 두는 모습도 많이 없어졌다. 주기적인 동창 모임도 드물다. 인간관계가 가볍고 옅어졌으며 깨지는 것도 쿨하다. 가족이 해체되거나 흐트러졌다. 문제를 혼자 해결하고 일상을 홀로 향유하는 나 홀로 문화가 폭증했고 계속 진행 중이다. 직업이 불안정하고 바뀐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진하게 얽혀있고 서로 소속되는 감각을 나눠본 경험도 적고 흩어지는 추세에서 살았다. 그러면서도 집단적으로 사유하는 경향이 여전히 짙어서, 남하고 비교를 많이 한다 등등. 심리와 마음을 다루는 콘텐츠가 인기가 많은 이유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불안정한 심리의 극단이다. 20대 시절을 기준으로, 50년대생 여성(부모세대)에 비해 80년대생 여성이 5~6배 자살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장숙랑 중앙대 교수, ‘청년 여성의 자살 문제)가 있다. 더 암울한 건 90년대생으로 내려가면 7배까지 올라간다고 한다. 겉보기에 풍요롭고 나날이 세련되어지는 세상은 기실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을 내면화한 세대 중에서도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불화와 이혼을 겪었던 경험이 가장 컸을 것이다. 나를 지탱하던 두 개의 세계가 수년 간에 걸쳐 차갑고 뜨겁게 전쟁을 벌였다. 둘 모두 나에겐 소중하고 자상하고 예쁜 존재였지만, 그래서 숨죽이고 기다리며 봉합과 매듭을 바랐지만, 결국 하나의 세계가 영영 내게서 떨어져나갔다. 꽤 자주 꿈 속에서 쪼개진 세계가 다시 만났고 같이 밥상에 앉아 웃으며 드라마를 보곤 했다. 잠에서 깬 현실은 달랐다.
갈등 속에서의 안절부절못함, 그럼에도 괜찮고 태연한 척하기, 그러면서도 떨어져 나감에 대한 과민함, 소속되고 받아져야 한다는 초조함, 결국 스스로를 추스르고 책임져야 한다는 돌덩이와 같이 가슴에 얹힌 삶의 무게. 청소년 시절부터 20대를 지나 지금까지 살아오는 내내 나는 걱정과 불안이 많은 편이었다. 그나마 사랑이 많았던 할머니의 보살핌으로 결핍은 어느 정도 무마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내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세상에 없는 그녀에게 한없는 감사를 표한다. 비빌 언덕이 하나라도 있으면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간혹 썼던 일기를 꺼내본다. 불안과 걱정이 휘몰아칠 때 나는 이렇게 표현해놓고는 했다.
'생각이 통제 범위를 벗어난다. 나와 따로 놀며 스스로 떠들어댄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치부하며 평온을, 현재를 되찾으려는 합리적인 생각과,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끼어드는 소모적인 생각이 서로 물어뜯고 있다. 심지어, 정말 별거 아닌 대수롭지 않은 불쾌함 하나도 한껏 부풀어진 생각으로 돌변해 나를 괴롭힌다'
'자그마한 뇌가 온 몸뚱이보다 더 커진 것 같다. 민감하고 무겁다. 크고 작은 자극들이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고 뇌리에 쾅쾅쾅 박힌다.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나를 지배해버리는 생각의 실타래. 주기적으로 영혼을 짓누르는 무형의 관념 앞에서 나는 잘 버틸 수 있을까?'
상황이 이랬기에, 스스로의 생존과 삶의 질 차원에서도 불안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왔다. 앞장에서 다룬 것처럼, 사회적으로 불안을 경감하는 공동의 노력은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관련 일을 한 사람이라 이런 생각을 자연스레 하는 것 같다. 흙수저 금수저 논란이 계속되고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잉태되는 박탈감과 불안을 완화해줄 의무와 책임이 국가에 있다.
그래도 국가가 다 해결해줄 순 없다. 결국 인생은 스스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30대를 거치며 온갖 항불안을 위한 노력들을 시도했다. 심리를 다룬 책 독서부터 글쓰기, 명상과 마음챙김 클래스 참여, 걷기와 산책, 무와 공허와 불안을 받아 안고 삶을 주체적으로 내던지는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매료, 자아팽창을 내려놓는 종교에 대한 재발견까지. 나의 통제 범위를 우습게 걷어차버리는 마음의 태도를 고치려 했다. 인생의 가치관을 수정하고 완전히 갈아엎고 전복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불안을 잡기 위해 롤러코스터를 타듯 요동치며 겪어온 의식의 흐름이었다. 휘둘리는 삶을 추스르기 위한 여정이었다.
책과 글
책을 읽으며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타나베 준이치 저)와 ‘미움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 저)를 다짐했다. 불안의 시대에 자존의 마음을 지켜 낸 ‘자존가들’(김지수 인터뷰집)을 배우고자 했다. 평온한 일상을 위해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오늘은 아침은 우울하지 않았습니다’(힐러리 제이콥스 헨델 저)가 자주 현실이 되기를 바라며 차분히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밤에 눈을 감았다.
불안은 멀리 여행지에도 쫓아왔다. 반대로 떨쳐내려고, 멈춤과 힐링을 목적 삼은 모처럼의 여행이었다. 건강이 안좋아져 심신을 갉아먹고 있어서 결심하고 휴직계를 냈을 때였다. 병원 약은 오랫동안 먹어도 듣질 않았다. 한 달은 산 속 절에서 마련한 쉼터에 들어가 있었고, 3주 정도 지구 건너편으로 여행을 떠났다. 휴대폰을 꺼두었다. 3주 동안은 현세를 잊고 생각을 버리고 몰입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속 떠나온 현실로 되돌아갔다. 쉰다고 확 좋아지지는 않은 건강, 복귀에 대한 불안, 남겨놓고 미뤄두었던 일들, 꼭 지금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산더미 같은 부담으로 머리를 맴돌며 쿵쿵쾅쾅 오늘을 짓눌렀다. 이 순간을 충만히 보내고 조금이라도 나아서 가는게 지금 살필 일이다. 마음 편하게 여기에 몰입해야 쉼과 치유라는 여행 목적을 위해서도 좋다. 그렇게 인지는 하지만, 머리와 마음은 습관을 따랐다. 두더지 잡기 게임에서 누르고 눌러도 계속 튀어나오듯, 지레 혼자 빠져드는 불안과 초조의 감정은 끊임없이 솟구쳤다.
잡생각에 사로잡힌 아둔한 머리를 식히려 복잡한 여행지 도심을 떠났다. 런던에 있을 때였다. 첫 여행의 기억이 오아시스처럼 남아 있어 다시 찾은 곳이다.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흑인들이 많이 보이는 동네에서 내린 후 나름 근사하게 치장한 지역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평일 낮시간, 동네 노인들이 먼저 눈에 늘어왔고 실업 상태이거나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듯한, 여유로운 표정은 아닌 청년들이 근심 어린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다. 거기에 배회하는 노숙자로 보이는 허름하고 씻지 않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신문을 읽으며 문턱 없는 공공도서관을 채우고 있었다.
이방인에게도 제재 없이 열려있는 동네 도서관을 거닐다가, Anxiety(불안)라고 적힌 책이 눈에 확 들어왔다.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적어 놓은 영국의 심리치료사가 쓴 책이었다. 우연이 아닐 것이다. 필연처럼 꺼내 든 책. 비틀거리는 영혼에 힐링의 기운을 넣어줄 소중한 조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다.
다행히 표현이 어렵지 않아 술술 읽었다. 책에 적힌 것처럼, 폐 속 가장 깊은 곳에 전해질 정도로 숨을 깊게 들이쉬고 찬찬히 내쉬었다. 심신을 혼란하게 하는 불안과 근심의 기운을 들이쉬는 숨에 모아내고, 내쉬는 숨에 밖으로 몰아내는 상상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고요한 도서관에 오후의 차분한 햇살이 온화하게 비춰 들어왔다. 차별 없이 이방인, 노숙자, 실업자, 노인들을 품고 있는 공공도서관의 넉넉한 기운과 더불어, 불안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상대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자. 내게로 돌아가자’
이윽고 들고 다니던 작은 수첩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도 마구 글을 적고 끄적이면, 떠도는 상념을 펜이라는 실체를 통해 아래로 내리면, 머리와 마음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곤 했다. 하소연할 이 없이 불안할 땐, 가슴속 불덩이를 하얀 종이에 흩뿌리듯 새겨 넣는 글쓰기는 유일한 나의 친구고 안정제였다.
일기, 수첩, 노트, 어플을 오랜만에 꺼내어본다. 관념을 구체화하며 적어놓은 글들. 비슷한 불안에 시달릴 때 쓴 것들. 그 순간순간에는 퍽 진지했겠지만 지나고 보니 희극이다. 엇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가 아니거나 과장된 채 허공에 붕 떠있는 백해무익한 상념, 관념들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은 과거를 되풀이한다. 불안은 실제라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와 인지에서 비롯되었다. 허공에 삽질하고 휘청이는 어리석은 마음의 습관.
“수행의 대상으로 지켜보라”
이것도 나다. 현재 나의 모습이다. 인정하고 더불어 노력해보자. 좋은 습관을 만들어 넘어가 보자. 그리하여 명상과 마음챙김 수업과 워크숍을 듣기 시작했다. 삼십대 초반에 일을 했던 지역인 성북구에 있는 ‘마음복지관’이라는 비영리 마음돌봄 기관을 이용했다. 그곳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서민들의 어려운 정서를 보살피고 있었다. 구청 근처의 큰 대로 앞에 펼쳐진 시내였는데, 모임 장소에 들어가서 촛불을 켜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 놓으면 복잡한 세상을 빠져나온 듯 고요했다.
불안은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잉태된다. 오지도 않을 상황을 지레 예측하고 어떻게든 조정해보려고 가상을 붙잡고 거센 파도에 빠져 허우적댄다. 우스꽝스럽게 끌려다니며 춤을 추는, 현실세계와 다른 과장된 실체와의 덧없는 싸움. 명상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감각에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이었다. 온통 머리에 집중되어 있는 소모적인 에너지를 밑으로 내리고 아랫배까지 들어차는 순간의 숨에 감각을 모아보았다. 걷기 명상을 할 때는 발바닥에 닿는 땅의 감각을 진하게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에도 잡념의 속삭임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침투하여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럴 때면 이런 말을 들었다. 불안을 불안으로 보지 말라. 수행의 대상으로 지켜보라. 휘말려 들어가지 말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였다. 인식에서 그 무엇도 빼거나 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고본다. 많은 경우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아도, 생각은 생각일 따름이라고 구분만 좀 되어도, 불안이란 파도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잔잔해지고 구름처럼 흘러가버리곤 했다.
[다음 편에 계속]
대문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