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맞선다고 용쓰기보다는

불안은 앞으로도 나를 갉아먹으려 들 테지만

by 이웃주민

연재 9

[전편 이어서]


독실한 신자였던 할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사는 내내 종교는 먼 얘기였다. 성당에 가도, 그녀 눈치를 보며 뒷자리에 엉거주춤 있다가 밖으로 유유히 나가곤 했다. 전혀 내 삶의 길잡이도 안식처도 아니었다.


오히려 믿음은 내게 의문이었을 뿐이다. 대학교 1학년 때인가, 동기들과 지하철역 어딘가에 앉아 있는데, 불현듯 누군가 다가왔다.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청년들로 보였다. 전도를 하려고 말을 걸었을 때, 나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날따라 유독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관심 없습니다. 믿음을 어떻게 증명하죠. 이렇게 길거리에서 대뜸 믿으라 하면 누가 설득이 될까요. 성경책 비슷한 걸 들고 서있는 그분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중에는 이런 말도 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후배 같은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좀 들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너 몇 살이야, 이런 식의 말까지 나왔던 걸 보니 그분도 꽤나 열이 받았나 보다. 그래도 나의 귀는 틀어막혀 있었다.


상대편만큼이나 나도 편협했을지도 모른다. 수동적인 추종과 믿음으로 치부했던 종교에 대해 뒤집어서 생각해본 것도 30대를 거치며 경험한 변화였다.(가까이에서 접한 천주교/기독교에 대한 인식을 위주로 적었으나, 종교에 대한 의미를 포괄적으로 생각해본다.)


사르트르와 수녀원

시작은 지금의 짝을 만나면서부터다. 아직 교제하기 전, 퇴근하고 그녀와 성북동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었다. 서울의 부산함에서 떨어진 곳. 아무도 없는 고요한 평상에 단둘이 앉았다. 나는 멈춤과 치유를 갈구하며 휴가를 내고 떠났던 여행, 파리에서 겪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20대를 말했다. 프랑스. 나도 갔었지. 지구 건너편까지 날아가 들어갔던 남프랑스의 오래된 수녀원, 스스로를 내려놓는 종신서원의 삶을 그렸던 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된 사연, 이후 계속 강한 신앙의 잣대를 가지고 살아온 삶. 나와는 정반대였다. 종교보다는 무신론을, 믿음과 따름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기투’에 매료된 채 젊은 날을 살았다.


가령 나는 이런 문장들에 매료되었다. "인간의 삶은 절망의 저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사르트르, '파리떼') 그녀에게 말하고 있는 파리를 여행한 순간에도, 사르트르의 책과 함께 시선과 타자를 걷어내고 홀로 걸었다. “나는 나 자신을 발견 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껏해야 내용이 없는 하나의 활동에 불과했으며 그 이상일 수가 없었다. 나는 희극에서 빠져나왔다.”(사르트르, '말')


사르트르의 '말'을 읽으면서 파리를 홀로 걸으며 여행했던 시절


그런데 이상했다. 그녀에겐 자유로움이 보였다. 성곽길을 따라 자연스레 불어오는 밤바람처럼 얽매임 없는 초탈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신 없는 자유와 그녀의 묵주반지를 낀 채 발산되는 듯한 자유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우리는 완벽하게 맞거나 같지 않았지만, 오히려 차이가 많아 보였지만 연인이 되었다. 그녀의 유난한 신심은 부담스러우면서도 궁금했다. 종교에 대해 탐독해보기 시작했다.


‘불신 지옥 믿음 구원’을 일방적으로 외쳐대는 편협한 사고에 넌더리를 쳤는데, 올바르게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시각을 일깨워주었다. 종교적 심성과 실천은 겸손하고 끈질기게 스스로를 비워내고 또 채워가며, 사랑을 확장하며 세상에 의를 구하는 자세일 수 있다.


오직 자신만이 스스로를 만들고 형성해가는가. 주체적인 선택만이 스스로를 창조하는 길이 아닐 수 있다. 삶의 의미는 무로부터 자기를 내던지는 기투에서 뿐 아니라 타인의 손길, 사회적 인연, 존재를 뒤흔드는 사건(event)이나 말로 형언 못할 부름(calling)을 통해서도 전해오고 나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게 매섭게 몰아쳐오기도 한다. 직면하는 만남과 의미를 잘 식별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임, 그리고 자신의 업적마저도 하찮은 것으로, 자신의 것만이 아닌 신(god)으로 상징되는 초월자이자 보편선에게 모든 명예와 영광을 돌리는 자세, 자기집착과 자아팽창을 내려놓으며 개방적으로 신앙을 품은 사람들의 초연함.


그렇게 어릴 적부터 지겹게만 접했던, 할머니의 지나치게 독실했던, 부담스러웠던 신앙을 서른이 훌쩍 넘어서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그녀는 매일같이 새벽 5시면 일어나 촛불을 켜고 기도를 했다. 내면을 비우고 정돈하며 또 가족과 다른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다. 지갑이 가벼워도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쥐어주었다. TV를 보면서도 딱한 사연의 사람이 나오면, 이름을 적고 기억해 두었다가 성당에 가서 그를 위해 기도를 바쳤다. 기도, 봉헌, 그녀가 보여준 종교적 심성은 이 세상에 만연한 무관심과 망각을 이기는 강렬한 자세이자 매일의 실천이자 구도적 삶이었다.


건강하게 종교를 갖는다는 것은 거창하게 구원의 길을 말하기에 앞서서 자신과 주변을 보살피는 삶의 안식처를 만드는 일이다. 나에게만 갇혀서 맴도는 불안의 상념들을 줄일 수 있는, 인본주의적인 오만을 누그러뜨리면서 무릎 꿇고 머리를 읊조릴 수 있는 절대적 타자 앞에 선다는 것. 오히려 낮추고 비워냄이 주는 자유를 선사한다. “내가 믿는 진리 앞에서만 매여있을 뿐 다른 어디에도 나는 얽매임이 없다. 인생의 순례길을 걸어갈 뿐." 어느 날 스치듯 만난 ‘이름 없는’ 수도자의 말은 자유에 대한 나의 감각을 돌아보게 했다.


종교가 없더라도 매일의 삶에서 어떤 숭고함, 감사함, 기도의 자세가 찾아올 때가 있다. 종교를 갖는다는 건 우연처럼 찾아드는 그런 순간을 붙잡고 체계화하여 ‘비워내고 채워가는’ 삶의 자세다. 매일의 성찰과 감화를 순간의 맞닥뜨림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묵묵히 기도함, 나의 내면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들에게로 향하는 관심과 사랑의 나눔, 불완전한 인격을 돌아보고 온전한 인간으로 연마해나가는 수행의 실천이다.


불안과의 투쟁을 넘어

물결치고 전복되었던, 심리적이면서 존재론적인 물음까지 나아간 여정을 지나왔다. 나의 육체와 마음은 때로는 합일된 평온으로, 때로는 완전히 분리된 혼돈 속에서 낯선 곳을 방랑했다. 평온과 불안, 자유와 속박은 서로 먼 곳에 동떨어져 존재하기보단, 오히려 찰나를 사이에 두고 왕래했다.


이제 30대도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불안과의 기나긴 싸움은 결국 내적인 고요와 안정, 전환을 기반으로 심신이 모두 건강한 삶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제아무리 정의를 외치고 발전을 유능하게 도모하더라도, 내면이 팍팍하고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룩할 세상은 과연 어떠할 것인가. 그러한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단지 일 중심적으로 순간의 외적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 망쳐버리는 스스로의 건강, 일터, 세상에 대해.


나이가 들면, 마흔, 중년이 되고 성숙해지면 보다 안정되고 불안이란 질긴 녀석은 내게서 떨어져 나갈 것인가. 그동안 살아온 세상과 삶의 궤적을 보았을 때,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한층 더 강화될 불확실성의 시대를 예견해봤을 때, 불안은 내내 나를 갉아먹으려 들 것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시대 사람들을 괴롭히는 보편 정서일 것이다. 평생 관리하고 살아갈 각오를 한다. 독서, 기도, 명상과 마음챙김, 걷기와 산책, 심리상담 등. 그동안 익히고 경험했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불안과 대면할 것이다.


나이를 폼으로 먹어갈 게 아니라면 한층 업그레이드를 해야겠다. 억지로 맞선다고 용쓰기보다는 오든 말든 지켜보고 흘려보내는 순간을 습관화하길 바란다. 그리고 개인 삶의 불안을 야기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해결을 위한 행동에 동참할 것이다. 불안을 관리 가능한 범위 내에 두고 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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