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저항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순간을 돌아본다

by 이웃주민

연재 10


젊지 않다. 아직 어색하다. 마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준비가 되어 있지도 않고, 해놓은 것도 스스로를 향한 자기 만족도 미약하다. 아직 방황하고 있고 더 방황할 거 같지만 떠돌고 방황해서는 안될 거 같은 나이로 가고 있다니. 뭘 해도 편안하지 않고 거슬리고 조바심이 든다. 뭐라도 해야 할 듯하여 마음만 부산하다.


휴일, TV 리모컨만 붙잡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은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맑지 않다. 그다지 하는 것도 없으면서 쉬는 기분이 아니다. 편히 늘어져서 쉬어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러면서도 지루하다. 권태롭다. 바쁘게 살아보자. 괜히 여기저기 일을 벌여보고 누구라도 만나야 할 듯해 모임을 신청해보고 이곳저곳 기웃거려보며 보는데도 여전히 공허하다. 아직도 나를 찾지 못했고 나의 나이대에 요구되는 사회적인 전형과도 동떨어진 채 주변부에 있는 것 같고, 맞는 옷을 입은 채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 못해 엉거주춤 서있는 느낌이랄까.


일은 그저 일일 뿐이다. 그렇게 여기는 게 편하다고들 한다. 어느 정도의 수입을 보장받으면서 노동시간을 줄이고 자기 시간을 확보하는 게 자유고 해방이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100% 인정하기는 싫다. 좋은 일, 보람 있는 일, 나를 갈아 넣어도 소진되지 않고 뿌듯한 일은 있을 것이고 그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렇게 나는 아직 피터팬이다. 마흔 가까이의 피터팬. 그것은 어울리지 않다. 현실을 직시하고 맞추고 타협하고 끼어들어가야 한다.


처음 사회생활할 때 써둔 일기를 다시 본다.

“사회복지, 그것도 규모가 크지 않은 NGO단체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니,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번듯한 직장’ 취업했다면서 손뼉 치며 축하해주는 사람도 없고, “거기 배고픈 단체 아니니?”라고 물으며 보내는 걱정 어린듯하면서도 싸늘하고 냉대한 눈초리, 그때마다 다짐하고 다짐한 결심이 흔들리는 순간이 엄습해오기도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다. 지금 내 앞에 놓인 길은 꽃수를 놓은 듯 반짝이는 비단길도 아니고, 지나가는 길에 진달래꽃 뿌려주며 기다리는 이도 없다. 하지만 젊은 날을 헤매고 또 헤매며 확립한 내 자존을 배반하지 않는 최소한의 정도(正道)로 첫발은 내디뎠다고 생각하기에, 별다른 미련은 쌓아두지 않으려 한다”


그 무렵, 한 지인이 내게 말했다. 작고 이름도 잘 모르는 곳에서 일을 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꿈을 크게 가져야 하지 않겠어, 사회복지학과 나왔으면 공공기관이나 고위 공무원 같은데로 진출하고 경력을 쌓아서 나중에는 보건복지부 장차관 정도 노리는, 젊을 땐 그 정도 포부는 있어야지!”


목표가 위로 가있어야 중간이라도 간다. 처음 사회에 나갈 때 진입하는 트랙을 잘 타야 한다. 작은 곳, 미래가 불투명한 곳, ‘메인 스트림’에서 비껴 난 곳에 가면 영영 그 언저리에 맴돌다 끝난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차원을 달리해 나눠져 있다. 살아보니 그렇다. 다 너를 위해서 해주는 말이다. 요새는 꼰대들이 하는 말의 전형으로 분류된다던데, 당시만 해도 어른의 경험에서 나오는 진심 어린, 듣기는 불편한 충고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때 나는 “장관이요? 대부분 외부에서 임명되지 않나요? 공무원 하면 장관 거의 못해요"라는,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는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여하튼 나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진 못했지만, 회피성 발언으로 얼버무렸지만, 한 귀로 듣고 적당히 흘려버렸다. 정한 진로에 영향을 주진 않았다.


20대 후반, 서른 초반의 나는, 자주 방황하고 불안해하고 ‘진지충’처럼 고뇌에 차 있었으며 흔들거렸지만, 어렴풋한 좌표와 방향은 있지 않았나 싶다. 사회에 나와서도 나름의 패기와 고상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노동이 단지 생계수단만은 아니길 바랐다. 기성의 조직보다는 기성을 바꿀 수 있는 대안과 비전을 간직한, 작더라도 소중하게 일궈가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일터에서 힘을 보태고 싶었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사회초년생 때 읽은 소설, <표백>(장강명) 속 세연은 지금의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했다. 포부가 큰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인다. 청년들이 해야 하는 일은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했다. 이것이 ‘표백’ 과정이다. 더 보탤 것이 없는 하얀색, 온통 새하얗게 숨 막히는 세상이 된다. ‘괜찮은 직업을 갖고 애를 낳아서 기른다는 목표’로는 절대 만족할 수 없었던 세연은, 완전무결한 세상에 표백되어가는 과정에 맞설 거대한 족적을 남길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우리는 영웅으로 태어났으나 우리가 태어난 이 세상은 영웅의 삶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영웅다운 죽음뿐이다"


그는 혁명이나 전복이 불가능해진 지금, 화염병을 들었으나 투척할 곳을 찾을 수 없는 막막한 시대에, 가장 적극적인 저항은 ‘스스로를 지워버리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부모 세대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 하찮은 욕망을 채우는 데 시간과 열정을 허비하며 의미 없는 삶을 보내고 우리 세대가 별 볼일 없음을 시인할 것인가, 아니면 담대한 결단으로 그대 안에 있는 위대한 가능성을 증명하고 우리를 비웃어오던 세상에 충격과 공포를 줄 것인가. 선택은 그대에게 달렸다” 세연은 삼성전자 특채 합격이 결정된 후, ‘지질하지 않음’을 증명한 뒤 그의 의도대로라면 세상을 경악하게 할 ‘자살 선언’을 남긴 채, 학교 문과대 뒤 연못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비어있는 우리 세대의 모습을 잔인하게 관통하는 소설 내용이 가슴을 때렸다. 제시된 정답만을 맞추어 가며 취직 자체가 목표가 된 삶은 젊음의 비극이다. 물론 세연은 과잉이었다. 소설 속 휘영은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로 세연의 행동을 반박한다. 세상은 이름도 빛도 없이 묵묵하게 제 역할을 하고 주변을 돌보는 사람들로 인해 지탱되며 그나마도 타락하지 않는다. 또한 남은 사람이나, 후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지나치게 신경을 쓴 세연의 태도야말로 어린아이 같은 거라고 비판했다. 주인공인 ‘나’도 “위대한 일을 하고자 하는 욕망은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고,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애정과 관심을 바라는 욕구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거든다.


소설 속의 분류대로라면 나는 ‘소극적 저항’(완성된 사회의 가치관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없으나, 적어도 그 가치관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닌 삶의 형태. 예술가, 종교인, 전업 NGO 등)의 형태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어떻게든 나에게 맞는 생의 감각을 찾아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택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