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과 계약 사이

기존 것은 사라지고 새 것은 오지 않은

by 이웃주민

연재 12

[전편에 이어]


계약직, 비정규, 인턴, 단기 프로젝트, 외주화, 프리랜싱 형태로 진행되는 일이 많아지는 건 분야를 가리지 않아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또래나 동생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일‘자리’라는 말보다 일‘거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표현들이 귀에 자주 포착되어 들렸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위기로 정규직, 비정규직 가리지 않고 취업 자체가 힘들어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기존 사회복지(나의 전공이었던) 기관도 단기성 프로그램과 시범사업 예산을 통해 계약직이 마구 양산되고 있었다. 대학과 협력해서 만든 부설기관에서도 일을 했는데, 대학 역시 많은 수의 교직원이 정규직이 아니었다. 단기 연구, 교육, 혁신사업 등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채용된 인력들로 한가득 채워졌다. 이러한 틈에서, 한 곳에 소속되지 않거나 절반만 소속된 채 프로젝트 중심으로 '흩어졌다가 뭉쳤다가'를 반복하며 소득을 얻고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사람도 드물지 않게 보였다.


정규의 틀 밖에 놓이는 일들의 양면성


사람을 일회용으로 크리넥스 휴지처럼 쓰고 버리는 세태는 타파해야 한다. 분명히 억제해야 한다. 고용의 안정성이나 상시적인 일이 필요한 분야는 가급적 정규직으로 채우는 게 옳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과 노동의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며 재편되는 상황도 제대로 숙고해야 한다. 한 회사에 배타적으로 속하여 기한 정함 없이 일하는 모습이 다수를 이루는, 완전고용을 정책목표이자 이상으로 삼는 고용중심 사회는 흘러가고 있다. 자신을 회사와 동일시하며 한결같이 일하는 평생'직장'에 방점을 두었던 시절과는 이미 180도 바뀌었다. 앞으로 정규에 속하지 않고 경계를 오가거나 바깥에 놓이는 일과 삶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내가 일을 해온 로컬, 커뮤니티 영역도 그런 측면이 존재했다. 통상적인 정규 개념의 틀 밖에 있는 ‘일’들이 꽤 있었다. 작고 소소하면서도 일상 세계를 가꾸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거리, 활동, 프로젝트들이 도처에 있었다. 예를 들어 도서관 등 공공시설을 운영하려면 풀타임 공무원 몇 명이 전적으로 필요하다. 주민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조성하면 양상이 사뭇 다르다. 사회적 관계, 자원봉사, 비즈니스, 공공지원과 계약, 크고 작은 활동과 프로젝트들이 상시적으로 뒤섞인 채 굴러가는 모습이 된다. 형편과 여건, 관심사에 따라 주민들의 시간과 노동을 나누고 합쳐서 운영을 모색한다.


여기에도 풀타임, 파트타임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일거리, 일자리'들이 필요하다. 마을 생산자나 창작자들이 만든 로컬 상품을 큐레이션해 판매하거나,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지역 수요에 맞게 기획해서 운영할 수도 있다. 아직은 불안정하거나 누군가 왕창 고생하거나 띄엄띄엄 있는 일감 수준인 경우도 있었지만. 이를 타개하고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들, 프리랜서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주민들이 마을기업을 설립하는 등 사례도 나타나고 있었다. 압축성장의 이면으로 우리사회는 로컬과 일상 영역이 많이 빈약하거나 비어있다. 기존 방식과 다르게 창의적으로 채워나가며 행할 ‘일’들이 많다.


지역사회에서 만드는 일거리, (공공)노동, 자원 활동을 필요에 따라 결합하여 자신의 일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하나의 기업이 아닌 로컬 영역에 포괄적으로 고용되어 '일거리 노동'을 하는 모습, 가령 이렇다. "마을카페 매니저, 마을 방과후학교 강사처럼 정기적이지만 주 2~3회, 하루 서너 시간 미만 정도만 일을 하는 일거리 형식의 고용. 주 1회에서 3회 미만, 하루 서너 시간 정도 일하는 ‘파트타임’ 또는 ‘알바’ 같은 성격의 일을 말하는데, 불안정하고 질 낮은 고용으로 외면하지만 오히려 마을에서는 편리한 일자리다.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경우, 주 5일 종일 매이지도 않아도 되고 출퇴근 부담도 없으며 게다가 동네일을 하며 동네사람들과 자연스레 교류할 수 있어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 - 유창복 외, '포스트코로나와 로컬뉴딜'


기존 것은 사라져 가고 새 것은 제대로 오지 않은


로컬 공간은 일과 생활의 물리적인 거리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자기 생활과 육아와 같은 돌봄을 병행하면서, 지역에 필요한 일을 적재적소에 채우면서, 관심사에 따른 일과 자발적인 활동/창작을 조합하여 삶을 꾸릴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워라밸은 일과 생활을 구분하는 의미가 짙다. 이를 넘어서, 양자가 일상에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나도 그런 삶을 꿈꾼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떠나서, 정형이 아닌 비정형, 변화와 혼종, 클릭만으로 성사되는 간편/초단기 거래 등 정규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불안정하고 유연한 일거리들이 급증했다. 이 추세를 보면 기존 개념의 정규직만으로 일자리와 삶의 안정을 온전히 방어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역으로 생각하면 그렇기에 그나마도 정규를 지킬 수 있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것이다.


기존 것들은 하나둘 사라지고 축소되어 가지만 새 것은 제대로 도래하지 않았다. 새로운 대안과 뉴 노멀을 위한 기획과 실험이 펼쳐 치고 좋은 사례들이 눈에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은 선구자적인 소수를 제외하면, 현실이라기보다 특수하고 이상적인 모델처럼 존재하는 맹아적인 상태. 그 틈과 균열에 끼어서 과도기의 부작용과 우여곡절을 뒤집어쓰며 희생당하고 스러져감. 그렇게 계약과 계약 사이를,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일터를 메뚜기처럼 떠돌아다니는 한없이 불안정한 나날들과 마주함.


'뉴워커'들 또한 무대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젊은 세대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청년들을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체계도 갖춰지지 않은 단기적 실험 프로젝트에 희생양처럼 투입시킨다"며 비판들을 쏟아내면서도, 그러한 풍경 뒤편의 한 모퉁이에서는 평생직장에 대해 기대를 접거나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히려 단기적인 프로젝트들의 조합을 선호하고, 일과 일 사이의 '갭이어'를 바라기도 하며 한 직장에 매여 있길 바라지 않는, 일과 생활을 자기 방식대로 꾸려서 살기를 바라고 실천하는 움직임이 적지 않은 청년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어차피 '정규'에서 미래를 찾기 어려운 사회에서, 풍요로운 세상과 대비되는 개개인의 빈약과 마주하며, 자기를 보호하고 나름의 성장을 모색하는 몸짓으로도 보였다.

IMG_2452.jpeg <새일꾼> 잡지. 뉴워커 프로젝트팀. 20.10.23


[다음 편에 계속]

대문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