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물어야 할 질문
연재 14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허사가 아니었다. 2010년 처음 사회에 나왔을 때를 떠올려본다.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일’도 급변했다.
나는 통상적으로 일컫는 어엿한 직장으로 진입하지 못한 채, 좋게 포장하면 선택하지 않은 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30대 한창때를 탄탄대로 밖에서 구불구불 걸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면서 또 그렇지 않았다. 엇비슷한 영역과 분야이긴 했지만, 일하는 형태는 직장에 고용된 상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한시적 계약직, 프리랜서, N잡러, 백수를 오가며 여러 가지 얼굴과 명함을 지니고 살았다. 불안정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앞으로 안정될 확률도 낮은 것 같다.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해 정신 차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이상, 특정한 분야/경로 내에서도 여러 번 나의 일, 직업, 일터의 구성과 조합은 뒤바뀌게 될 것이다.
일의 전형이 흐트러지는 시기를 살고 있다. 인생 2모작, 3모작, N모작은 누구에게나 도래하는 현실이다. 이미 일반화된 플랫폼 기업은 횟수, 건당으로 투잡, 쓰리잡, N개의 일을 하는 노마드 노동자, 긱 워커를 순식간에 급증시켰다. 거기에 최근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리게 되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 전환은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9 to 6'가 업무의 시간으로 규정되지 않는 일들이 늘고 있다. 사무실에서만 일을 해야 한다는 공간 개념도 허물어지고 있다. 기존의 시공간이 해체되고, 일을 수행하는 계약 형태도 다변화되고 있다. 직장인에서 직업인, 임금노동에서 자유노동 형태의 삶이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원재, ‘소득의 미래’ 등)도 나온다. 뉴 노멀을 포괄하는 사회안전망의 재구축과 적극적인 불균등 타파 노력도 시급하다.
근본적으로는 지금이라도 일을 바라보는 관점을 제대로 세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불확실하고 정형성이 흐트러지는 때일수록, 결국 기본과 중심을 잘 잡아나가면서 버티고 전진해야 한다.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자고 일어나자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끔찍한 상황에서도 그 모습에 절망하기에 앞서 직장에 늦을까 걱정하는, 철저하게 수동적으로 일에 종속된 인생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일을 하고 생산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노동을 하며 사는 건지 진지하게 되풀이해서라도 물어야 할 때이다. 대학시절 한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대뜸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요즘 청년들은 도전적이지도 보수적이지도 않다(생각이 없다는 말을 순화해서 한 것인듯). 다만 부모님(어른)이 시키는 그대로 행동할 뿐이다. 우리는 여태껏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통념대로 따르고 줄을 섰을 뿐이다.
그래서 좋은 일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자신에게 잘 맞고 보람을 주는 일이란 무엇인가. 최소한 괴롭고 소모적이지 않으면서 일상을 망치지 않는 노동을 하며 사는 게 여전히 큰 바람으로만 있어야 하는가. 퇴근 이후를 잘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가는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것을 통해 사회적 역할과 존재를 확인받는 일하는 시간이 고통스럽고 힘에 겹다면 행복할 수 없다. 어딘가 아쉽고 후회가 남을 거 같고, 지금 이대로는 불행하고, 영 맞지 않는 자리에 엉거주춤 놓여있는 것 같고, 그래서 매일 아침이 눈뜨기 힘들게 괴롭다면 마땅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 것이다. 마흔이라고, 더 나이가 많이 든다고 해도 그렇다. 자신을 잃어버린 빗나간 경로를 따라 목줄 묶인 개처럼 걸어갈 이유는 없다.
그리하여 지금 여기 ‘오늘의 나’를 배반하는 오늘이 아니라, 행복한 일과 삶에 대해 각자의 기준에 따라 이제라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서열이나 외형의 직위에 얽매여 남과 비교하며 자기 존재를 내세우는 페르소나를 벗어야 할 것이다. 개개인이 추구하는 삶의 질을 중심으로 세상과 연결하여 살아가는 시대가 돼야 할 것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지 않을까?
루틴한 일을 안정적으로 하면서 ‘워라밸’을 추구하는 친구들이 있다. 예술 창작을 하고 생계유지를 위해 파트타임 노동을 겸하길 바라는 친구도 있다. 큰 기업과 조직에서 성취를 이루고픈 친구도 물론 있다. 창업에 도전하는 친구도, 커뮤니티에서 일상과 공익을 조화시키며 살아가길 원하는 친구도 있다. 몸을 쓰는 육체노동이 더 체질에 맞는 친구도 있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일렬로 획일적인 줄을 세웠다. 우등 딱지를 받은 사람부터 이름 값하는 전문직, 정규직 고지에 올랐다. 나머지는 2류, 3류, 막장 일터로 여겨지고 스스로도 열등감을 느끼며 살았다. 그러나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 각자 다를뿐더러 일의 형태와 구조도 뒤바뀌고 있다. 남과 비교하고 일에 종속된 삶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다음 편에 계속]
대문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