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의존과 경로이탈

따를 것인가, 방향을 틀 것인가

by 이웃주민

연재 13

[전편에 이어]


모르겠다. 가정이긴 하지만, 아예 첫 시작을 공무원이나 큰 기업에 갔더라면 달랐을까. 인생 향방이 그쪽의 생리와 경로에 의존하며 따라갔을 수 있다. 나의 다른 성향이 활성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왔다. 인간은 누구나, 특히 경륜이 많지 않은 젊은 시절이라면 자신만의 제한되고 특수한 정보와 경험을 가지고 선택을 한다. 역으로 그렇기에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주춤거리기도 덜하면서 작은 확률일지라도 결행한다.


하나의 길을 택하면,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간 옆길로 걸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젊을 때는 아무래도 이 길 저 길 들어가 보는 경우도 많다. 무모하게 덤벼들어 볼 수도 있고 그러고 나서 후회도 포기도 비교적 쉽다. 어쩔 땐, 물론 당시에는 고통스럽지만, 실패와 후회가 제법 낭만이 되기도 한다. 꼭 어린 시절이 아니더라도, 질질 끌지 않는 빠른 포기가 살아가는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모시키지 않는 요령일 때도 있다.


어찌 되었건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고른 후 펼쳐지는 의도치 못한 난관, 예상과 다른 전개는 예방할 수 없다. 그건 나의 존재 영역이 아니며 통제 범위 밖이다. 운칠기삼(운이 칠 할이고 재주나 노력이 삼 할)이 희비를 가르곤 한다.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데 하필 때가 맞아서 번창하는 사람도 있고, 한참 준비하고 기다렸는데도 재수 없게 때를 잘못 택해 주저앉는 경우도 있다. 해볼 도리가 없는 부분에 연연하지 말고 자그마한 자극과 변곡에 일희일비 않는다. 하고자 할 바를 행하며 페이스에 맞춰 인생길을 걸어가면 될 뿐이다. 상황과 사건에 따른 감정의 굴곡을 줄이고 평정의 습관을 새겨나간다. 성숙의 과정일 것이다.


한 살 두 살 시간이 흐를수록 선택지 개수가 줄어드는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은, 나이를 먹어감은 설레는 꿈과 하고 싶은 바람이 깃든 희망사항들을 지우고 포기하는, 가끔 즐기는 취미 정도로 묶어 둬야 하는 애달픈 삭제의 과정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었음에 분명하다. 그래도 'del'키를 꾹 누르며 어설프게나마 남겨둔 가능성을 지워야 한다. 소거하고 잘라내고 가지치기하며 특정한 것을 골라야 한다. 물론 필수는 아니다. 관심사를 고루 누비며 사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능력과 여건만 갖춰진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사는 걸 말릴 권한은 아무에게도 없다. 누구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과거처럼 선다형으로 굳어지고 정형화된 선택은 아닐 수 있다. 모 아니면 도는 아니다. 일을 하면서도 영상을 만들고 싶으면 유투버를 겸업으로 해도 된다. 그러나 인간은 평생 꿈을 꾸고 성장하는 과정에만 있을 수는 없다. 매번 실험하고 시도만 하듯 살 수도 없다. 무언가를 택해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며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결정에 따라 갈래를 잡고 숙성의 과정을 밟는 건 여전히 주요한 생의 과업이다. 모든 걸 다 경험하고 겪어볼 하등의 이유도 없다. 손가락 터치만으로 온갖 선택의 나래가 펼쳐지는 유혹 많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의도적으로 피해야 할 것들, 굳이 접하지 않아도 될 것을 과감하게 걸러야 한다. 관심을 좁혀서 독려하고 가까이할 것들, 내게 필요하고 맞는 습관을 기르는 환경을 일상에서부터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술배우 이소룡은 "만 가지의 발차기를 연습한 사람보다 한 동작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이 두렵다"고 했다. 선택하고 시야를 좁혀 집중한다. 그것을 연마하고 결정한 경로를 흔들림 없이 관리하며 걷는다. 청년을 지나 기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겪어야 하는 자리정돈과 추스름, 축적의 과정일 것이다.


보존과 혁신의 '역동'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일종의 경로의존이 생긴다. 나 역시, 비록 하나의 직장을 통해서 이어가는 형태는 아니었지만, 20대부터 공부하고 경험했으며, 30대를 거치며 업으로 해왔던 것들로 인해 쌓인 습관이 있다. 아마 상당 부분 앞으로도 나의 삶에 영향을 줄 것이다. 나는 '사회적'(social)인 일에 관심을 쏟고 해왔다. 사회복지와 사회적경제 등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균형을 완화하고 이로운 방향으로 혁신하며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 싶었다. 그리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로컬과 커뮤니티를 현대사회에 맞게 재구성하는 실천들에 매료되었다. 이 경험들은 어떤 형태로든 이어질 것이다.


경로의존을 무시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매번 걷던 방향으로만 자동적으로 맞춰서 사는 것이 답은 아니다. 경로의존과 경로이탈,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주제다. 경로를 마구 탈피해 원점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건 아무래도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의존해 살아가기에는 어딘가 못내 아쉽다. 끝내 회한이 남을 듯한 감정이 올라올 때도 있다. 아닌 길로 접어들었음이 느껴지는데도 시동이 걸렸다고 계속 가는 것은 미련하다. 불 보듯 뻔한 불행으로의 침몰일 수 있다. 걸어온 길에 대한 손익계산을 어설프게 따지기보다 곧바로 중단하고 되돌아가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도 있다. 어디에든 길은 또 분명 있다!


해왔던 걸 갈고닦고 쌓아가면서 깊어지는 옳은 방향의 경로의존이 있다. 그러나 변화를 가로막아 고착화되고 정체되는 경우도 있다. 역으로 갑자기 경로를 확 틀어버리면 많은 비용과 불안, 스트레스를 유발하지만, 기존의 관성에서 탈출하여 새로운 만남을 통해 획기적인 대안이 창출되기도 한다. 이소룡의 말을 다른 시선에서 보자. 처음부터 맨땅에서 시작하더라도 열심히 만 번 연습을 하면, 그 사람은 '숙달된 조교'로 거듭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모든 것은 바뀔 수 있다. 나 역시 새롭게 경험을 쌓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


경로의존과 이탈, 양자만 있는 건 아니다. 양 극단 중 택일할 사항도 아닐 수 있다. 그 사이에도 무수한 갈래의 제3, 4의 길, 만남과 겹침, 타협점, 빅뱅의 가능성도 창의적으로 모색할 수 있다. 그리하여 보존과 혁신의 역동을 어떻게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삼십대 후반에 접어든 순간부터 나의 묵직한 화두 중 하나다. 마흔 이후에도 계속 이를 실천하고 실현해나가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다음 편에 계속]

대문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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