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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utypiggy Aug 05. 2018

'미스터 션샤인'시대 속  한국 도자기 이야기

Living - Culture - Lifestyle

Netflix에서 방영 중인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1화를 우연찮게 보던 중 이병헌의 연기와 시대적 배경과 영화 같은 연출에 빠져 하루에 연속 6회를 다 보아버렸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다루는 이 허구 소설 속에서 이병헌이 어릴 적 목숨을 구해주었던 사람은 도공(김갑수)이다. 양반들은 물론이고 서양인마저 그에게 찾아와 도자기를 팔라고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를 보다 보니 조선시대의 도자 역사의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많은 한국 도공들이 중국과 일본으로 팔려간 슬픈 역사가 있다는 것만 얼추 알았을 뿐인데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미스터 션샤인' 5회- 도공의 도자를 보며 흡족해하는 양반신분
"천한 역관놈도 백자하나로 일본을 등에 엎었다던데"

도공들의 슬픈 이야기

16세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도자기 제조기술을 가진 나라는 한국, 중국 그리고 베트남 뿐이었다고 한다. 역사적 사건인 임진왜란 7년의 전화를 입고 도공들은 일본으로 잡혀가 도자기술은 일본으로 유출이 되었다. 이때 중국 대륙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청과 명이 전쟁을 벌이고 삼 번(三藩)의 난이 일어나면서 중국의 도자기공방도 초토화되어버린다. 유럽 상선들은 중국 도자기 대체품을 구하기 위해 조선을 기웃거렸지만 피폐해진 조선은 약 50여 연간은 복구작업으로 인해 도자기 생산에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된다. 또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당시 조선의 도자기 생산량의 수급은 조정에서 엄격하게 조절했었다. 꼭 필요한 양만을 생산하도록 강력하게 통제를 하고 조선의 대외정책에 따라 도자기의 해외 수출을 막았기 때문에 유럽 상인들의 조선 도자 구입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시피 했을 것이다.

당시 서양에서 금보다 수요 가치가 높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기가 많던 동양도자기를 찾은 유럽인들은 일본으로 도자기를 찾아간다. 그 무렵 일본은 조선에서 잡아간 도공들을 통해 300여 년에 걸쳐 약 7000만 점의 도자기가 중국과 일본에서 유럽으로 수출이 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백자

흰백 백(白)- 필연적 이유

 14세기 후반 문익점의 목화의 전례로 15세기부터 사대부, 일반인들이 흰옷이 당시 트렌드가 되었다. 유학이 전래되면서 검소와 결백함등을 추구하면서 백색을 선호하게 된다. 유교사회였던 조선은 ‘예(禮)’를 중요시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선비들이 사욕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절제였다. 선비들은 자신의 내적인 청결함과 담백한 생활을 지향하였으며 백자 또한 청순함과 결백함이 취향에 맞았기 때문에 (고려) 청자에서 백자로 발달되었다고 한다.


조선 백자만의 특별함

조선의 백자의 기술력은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질이 높다고 할 수 없는 우리나라 흙으로 불순물을 제거하여 백토를 만드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질 좋은 백토 만들기, 유약의 개발, 온도 등등 그 모든 것에서 주어진 열악한 조건을 뛰어넘는 과학적인 방법이 개발되었다. 조선의 백자는 중국과 일 본 것보다 맑고 단단했다. 백자는 현대 도자의 모태이기도 하다. 가장 늦게 도자기 역사에 합류한 일본은 도공들을 끌고 감으로 인해서 두 가지 이익을 취했다. 하나는 자신들의 다도를 지속적으로 받쳐줄 다완(tea bowl)을 확보하고 일본화하였으며, 둘째는 백자를 만들어냄으로써 세계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되었다.

백자 달항아리 (보물 제1437호)

여백의 미 - 달 항아리

18세기 영조 때 금사리 가마에서 구워낸 달항아리는 우리나라만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터가 발명되기 전에 둥글고 큰 항하리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달덩이 모양을 만들고 싶었던 조선의 도공들은 큰 사발 두 개를 이어 붙여 이 같은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달항아리에는 가운데에 이어 붙인 자국이 남아있다. 기하학적 동그란 원이 아닌 자연스러운 선 맛이 살아있는 게 매력적인데, 18세기 세계의 모든 도자기들이 화려한 무늬의 도자기를 생산할 동안 조선의 도공들은 둥근 백자 달항아리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아마 인위적이고 번잡스러운 것보다 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조선의 마음이며 비움이 있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의 미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는 요즘 조선의 백자가 매우 걸맞게 느껴진다. 청순함과 결백함을 추구하며 만들던 도공들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나 또한 도자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하나의 도자가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공이 들여진다는 것을 직접 체험해보니 우리 도공들의 슬픈 역사가 뭉클하게 느껴졌다.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운 많은 이들의 슬픈 이야기와 한을 달 모양의 하얀 항아리 속에 담아두고 기억하고 싶었던 마음에서, 군말 없이 들어주기만 해주는 달을 생각하며 이런 모양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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