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밀려난 나만의 꿈이, 육십 대가 되어 다시 마주한 시간
지금 누군가 "나의 꿈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깊은 고민 없이 평소 가지고 있던 바람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 대답은 현실적이고 소박한 소망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경제적 부담 없이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람 정도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오히려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과거 품고 있던 꿈들을 회상하듯 거침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지나온 것들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시절엔 희망이 많았고 선택지도 많았기에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많은 꿈들 중 대부분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몇 가지 기억뿐이다. 그 시절 장래희망을 말하던 학생처럼 눈빛이 반짝였던 내가, 지금은 그냥 담담하게 그때를 떠올릴 뿐이다.
가장이 된 이후, 나는 ‘꿈’보다는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 아래 살아왔다. 꿈은 있었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한 환경 탓에 포기한 꿈들이 많았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불리기 시작하면서 삶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가족과 생계로 옮겨갔고, 그 무게는 세월이 흘러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꿈은 점점 뒷전이 되어갔고 삶의 목표는 생존과 안정으로 바뀌었다. 어느새 꿈보다는 건강을 유지하고, 갑작스러운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바라는 나이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의 나는 가슴속이 뜨겁고 또 넓었다. 무엇이든 도전했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났다. 때로는 감정 하나로도 과감히 방향을 바꿀 만큼 열정이 있었다. 경제적 여유나 결과를 따지기보다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던 시기였다. 무모했지만 두려움 없는 시절이었다. 그 꿈들은 내게 신뢰를 주었고, 삶의 에너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간절한 꿈’보다는 ‘감당할 수 있는 계획’ 정도를 꿈이라 부르고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해도 벅찬 이 시기, 꿈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닌, 현실을 고려한 전략으로 바뀌었다. 과거엔 인생의 목표였던 것들이 지금은 단순한 취미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어느 순간부터는,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사치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무언가를 기억하려 수없이 반복해도, 어느새 잊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계획했던 일들을 놓치는 경우도 많아지고, 실수에 스스로 놀랄 때도 있다. 젊은 날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그것마저 감당해 내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기억조차 흐릿해지고, 한때 소중했던 장면들마저 나와 멀어진 느낌이 든다.
꿈은 분명 삶의 우선순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나만의 꿈’이 어느새 순위 밖으로 밀려나 있다. 삶의 현실 앞에 계속 밀려나다 보니, 나조차도 내 꿈을 잘 떠올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나 역시 그 말에 위로를 얻으려 한다. 정말 나는 잘 익어가고 있는 걸까? 문득 거울을 마주하며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지금의 나는 과연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내 선택은 옳았던 것일까. 조용히 나를 되짚는 시간이 잦아졌다.
오늘은 세수를 하다 오랜만에 거울 앞에 오래 멍하니 서 있었다. 거울 속에는 속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선명히 드러나 있다. 주름 하나하나에 담긴 지난 시간을 가늠하며, 그 안에 담긴 내 선택들을 돌아보게 된다. 그 흔적은 오늘따라 더욱 또렷하게 다가왔다. 거울 속에 비친 얼굴 위로 지나온 진실들이 하나둘 그려지듯 떠올랐다. 그저, 웃을 때 잔잔한 미소라도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동안 나는 시계 초침처럼 쉼 없이 달려왔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지나온 시간은 나이로 쌓여갔고, 나이는 어느새 삶의 깊이로 환산되었다. 계산은 정확했을지 몰라도, 제값보다 더 큰 비용을 치르고 얻은 것 같은 느낌의 나이. 그게 지금의 내 나이였다.
흔히들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에 가장 젊은 시간이다." 그 말에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날마다 느낌이 다른 이 시기에, 오늘이야말로 소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이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고, 세월은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이 길어지면 감정은 흐려진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지금 이 나이에도 꿈은 여전히 필요하다.
그것이 크든 작든, 가슴 깊은 곳에 아직 남아 있는 단 하나의 꿈이라면, 이제는 꺼내 들 때이다. 그 꿈은 ‘진정 나를 위한 삶’을 향한 소망이길 바란다. 이제는 무리한 성공이나 대단한 이력이 아니라, 내 삶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꿈이면 충분하다. 우리 모두가 흔히 바라는 그 ‘보통의 꿈’을, 조용히 따뜻하게 꾸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