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널드 1불의 커피 그리고 시니어라는 이름의 무게

혜택이라는 말에 가려진 감정들, 이제는 1불의 행복으로 남다

by 김종섭

맥도널드는 캐나다에서 누구나 한 번쯤 들르는 곳이다. 아침이면 커피 한 잔과 에그 맥머핀을 사 들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렴한 가격, 익숙한 메뉴, 늘 같은 자리에서 반겨주는 매장까지. 이곳은 단순한 패스트푸드점이 아니라, 캐나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하나의 풍경이다. 팀홀튼 못지않은 애정을 받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55세가 되던 해, 맥도널드에서 ‘시니어’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부터 ‘시니어 커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Can I have a small coffee for a senior, please?"


짧은 영어 한 문장 안에, 작지만 선명한 망설임이 있었다. ‘시니어’라는 단어를 굳이 입에 올려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나를 머뭇거리게 했다. 그 한마디를 통해 이제 나도 시니어가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맥도널드에서 ‘초보 시니어’라는 등급을 처음 부여받은 셈이었다.


그 순간 떠오른 노래가 있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60대는 ‘노인’이라 불렸다. 이제는 그 기준이 흐려졌지만, 그 시절의 감정은 여전히 가사처럼 가슴 깊이 남아 있다.


작년 7월, 맥도널드는 시니어 커피 제도를 없앴다. 이젠 누구나 작은 사이즈의 커피를 1불에 구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변화는 생각보다 큰 위안을 주었다.

더 이상 “시니어입니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커피 한 잔을 사기 위해 나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가 ‘혜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평등한 손님 중 한 명으로 대우받는 기분이었다.


혜택은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혜택이 특정한 ‘대상’이나 ‘조건’을 전제로 할 때, 그 안에는 묘한 감정이 따라붙는다.


예를 들어, 골프장에서는 보통 60세부터 시니어 요금이 적용된다. 하지만 그 할인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나이를 밝혀야 한다. 돈을 아꼈다는 이득보다, 나이를 증명했다는 감정이 먼저 들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게 존재의 정체성이 ‘나이’로 환원되는 기분이다.

한 손에 작은 커피 한 잔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바라본 아침

맥도널드에서 마시는 1불짜리 커피 한 잔이 오늘의 일상을 부드럽게 깨운다.


오늘도 나는 맥도널드에 앉아 1불짜리 커피를 마신다. 이제는 ‘시니어’라는 타이틀이 필요 없는 커피다. 그래서인지 더 편하고 더 행복하다. 설명 없이 마실 수 있는 커피 한 잔이 주는 평등함. 그 속에서 작은 자유를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니어 혜택 정보를 찾아보곤 한다. 알지 못하면 누릴 수 없는 것이 혜택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뜻밖의 정보를 하나 접했다. 캐나다 B.C주에서 운항하는 페리호가, 평일인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65세 이상 시니어에게 여객 운임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여럿 있지만, 왠지 페리호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바다를 가로지르는 그 풍경 자체가 특별한 여행’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만, 그 혜택을 받기까지는 앞으로 3년 반을 더 기다려야 한다. ‘무료’라는 단어의 매력 때문일까. 순간, ‘65세가 어서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스쳐 지나갔다.


이쯤 되면, 혜택이라는 건 참 묘하다.

‘할인’이나 ‘무료’라는 금전적 이익보다, 그 혜택을 받기 위해 내가 넘어서야 할 심리적 선이 더 크다.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며 상상해 보았다. 누군가 내게 자리를 양보한다면 나는 어떤 기분이 들까?


감사한 마음이 먼저일까, 아니면 ‘아, 이제 나도 자리를 양보받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는 작은 슬픔과 인정의 순간이 더 먼저일까?


그 자리 양보는 배려이다. 한편으론 따뜻하고, 또 한편으론 시니어라는 이름표가 슬그머니 붙는 순간이기도 하다.


시니어 혜택은 ‘삶의 할인’이 아니라, ‘존엄의 재확인’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존엄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여전히 가볍게 걷고 말하고 웃고 싶다.


그리고 오늘도, 1불의 커피를 마시며 그 무게와 가벼움을 함께 음미한다.


조용히 스스로에게 묻는다.


“60대, 나는 여전히 꿈꿔도 되는 나이인가?”


그렇다. 오늘도 그 한 잔으로 충분히, 나는 다시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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