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마주한 80대 어르신의 손글씨 카드와 33년 세월의 옷
크리스마스 늦은 오전, 아내와 매일의 루틴 중 하나인 산책길에 올랐다. 오늘따라 공원을 마치 독채 낸 듯,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성탄 이브의 시간을 보낸 탓일까 하는 아내와 일치된 생각을 했다.
성당에 다니시는 분 중 한 분이 아내가 회사를 그만둔 것을 모르고, 이전 근무지에 성탄 선물을 맡겨놓고 가셨다. 성탄 선물과 함께 정성스레 쓰신 카드까지 담겨 있었다. 사실, 노부부에게 성탄 선물을 먼저 챙겨드릴 생각도 못 하고 잊고 있었는데, 도리어 우리를 잊지 않고 챙겨주신 마음이 감사했다. 와인 한 병과 작은 선물 꾸러미에는 열쇠고리, 초콜릿, 사탕 등이 아기자기하게 들어있었다.
노부부는 어느덧 팔순의 연세에 접어드셨다. 요즘 80대는 옛날 우리가 보고 느껴온 할머니 세대와는 다르다. 그 당시만 해도 ‘장수’라는 극존칭이 붙었지만, 요즘은 사실 몸만 나잇값에 국한되어 있을 뿐, 굳이 우리 삶에 나이를 경계선에 둘 필요는 없다.
손수 쓰신 크리스마스 카드를 마주하니 디지털 혁명이라는 거센 문화에 밀려 잊고 살았던 감각이 새삼스럽다. 직접 그림을 그려 성탄 카드와 연하장을 주고받던 옛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클릭 한 번이면 넘쳐나는 이모티콘의 시대. 그래서일까, 노부부가 정성을 다해 직접 자필로 쓴 카드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묵직한 울림이 전해졌다.
저녁에는 아들 집에 초대받아 갔다.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주변 이목을 챙기지 않고 가장 간편한 옷차림에만 치중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바뀌었다. 짧은 외출이라도, 특별한 일 없이 집 밖에 나가더라도 나를 위해 신경 써서 옷을 챙겨 입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은 옷장에서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옷을 문득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른 옷은 아내가 큰애를 임신했을 때 태교를 겸해 직접 뜨개질로 만들어준 스웨터이다. 무려 33년 된 옷이다. 나는 그 세월의 무게를 입고 아들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아내에게 "이 옷, 막내아들이 마음에 들어 하면 물려줄까?"라고 물었다. 아내가 정성스럽게 손으로 직접 만든 옷이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무슨 아빠가 입던 옷을 자식이 입겠냐"며 반문했다. 사실, 아들들이 입던 옷을 몇 벌 물려받아 입고 있지만, 아들이 아버지의 낡은 옷을 입는 건 또 다른 문제 같았다. "하긴, 아버지가 자식 옷을 입는 '내림'은 있어도 자식이 아버지 옷을 '대물림'하는 일은 흔치 않겠지"라며 우연히 나온 옷에 대한 이야기를 끝냈다.
아들 집에 도착해 식탁에 앉았다. 아들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나 보다. 겨울에 가끔 꺼내 입긴 했지만 한동안 옷장 깊숙이 보관해 왔기에 아들은 처음 보는 옷으로 인식한 듯했다. 계속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옷에 대해 물어왔다. "형을 임신했을 때 엄마가 태교 하며 뜬 33년 된 수제 옷이야"라고 말하자 아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와중에 슬쩍 "아빠가 입고 있는 이 옷, 너 줄까?"라고 물었더니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아빠, 그럼 아빠가 입다가 나중에 이거 저 주세요. 형 주지 말고 꼭 저한테 주셔야 해요!"
의외였다. 옷은 위에서 아래로 대물림한다는 상식이,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는 낡은 것을 기피할 것이라는 편견이 기분 좋게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세월을, 그 속에 담긴 엄마의 정성을 기꺼이 물려받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 경이로운 감동이었다.
식탁에 마주 앉아 옷에 얽힌 호기심 어린 대화로 한동안 크리스마스의 저녁이 풍성했다. 우리가 경험했던 세계는 물론, 경험해보지 못한 믿음 같은 흐름 속에서 좀 더 여유를 찾은 듯해 행복하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듯 낡은 실타래 속에, 그리고 정성 어린 손글씨 속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소박한 진심들. 이런 소소한 마음의 이어짐이야말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