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공원, 겨울비 속에서 만난 설강화, 아내 걱정을 희망으로 바꿨다
밴쿠버의 겨울 날씨는 이중적이다. 시선을 멀리 두면 언제부턴가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산들이 거대한 설벽을 이루고 있다. 손을 뻗으면 곧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지지만, 막상 눈 덮인 산을 밟으려 하면 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야 하는 먼 곳의 풍경이다. 산 위에 눈이 쏟아질 때, 우리가 사는 대지에는 지루할 만큼 거의 매일 겨울비가 내린다.
올겨울 밴쿠버의 날씨는 유독 온유하다. 영하로 뚝 떨어져 코끝이 찡하고 입가에 하얀 입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라야 겨울다운 겨울이라 말할 수 있을 텐데, 아직 첫눈조차 경험하지 못한 이 포근한 비의 계절이 가끔은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겨울의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게 아닐까 싶다
어제도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잠시 비가 멈추어 선 틈을 타 서둘러 집을 나선 길이었다. 평소처럼 공원 산책로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 공원 입구 쪽 작은 화단 앞에서 아내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어 섰다.
"아니, 벌써 꽃이 피었네? 여기 밑에 새순들 올라오는 것 좀 봐요." 아내가 가리키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말로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창 추울 때인데도 생생하게 피어난 모습에, 지금이 정말 겨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이 들었다. 우리는 이것이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현상’은 아닐까 생각했다.
아내는 내일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예보를 떠올리며, 눈앞의 아름다움보다 성급히 세상 밖으로 나온 꽃망울에 대한 안쓰러움을 먼저 내비쳤다. "내일 추워진다는데, 이 작은 꽃이 그 추위를 다 어찌 견딜까..."
집에 돌아온 후에도 한참 동안 화단에서 보았던 그 꽃이 아른거려 왔다. 스마트폰에 담아 온 사진이 있어 인공지능(AI)에게 꽃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름은 '스노드롭(Snowdrop)', 우리말로는 '설강화(雪降花)'라는 꽃이었다. 지각변동에 속아 잘못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 꽃은 한겨울이나 이른 봄, 대지가 채 녹기도 전에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용감한 전령사였다. 아내의 걱정과는 달리, 설강화는 이미 겨울 추위를 이겨낼 준비가 다 되어 있었던 셈이다. 우리 부부만 괜히 이 작은 꽃이 겨울에 피어나는 꽃인지도 모르고 안쓰럽게 여겼던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언젠가 이 꽃을 눈 속에서 피어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하지만 그때는 그저 '겨울에도 피는 꽃이 있구나' 하고 아무런 감흥이나 관심 없이 무심히 흘려버렸던 모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기억 속에 박제되어 있던 풍경이 때늦은 오늘에서야 꽃의 신비함 속에, 그리고 아내의 시선을 통해 생생한 생명력으로 되살아난 기분이었다. 알고 보니 화단에 피어난 꽃은 계절을 착각한 낙오자가 아니었다. 어쩌면 가장 당당하고도 강인한 겨울꽃이자 봄의 전령사였다.
오늘도 잠시 비가 멈춘 틈을 타 어제 그 길을 다시 걸었다. 공원 입구를 지나면서 설강화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다행히 오늘 기온은 여전히 영상권이다. 영하로 떨어진다던 예보는 빗나갔지만, 이제는 날씨가 추워져도 걱정하지 않는다. 꽃의 정체를 안 이상, 추위는 이 꽃이 당연히 견뎌야 할 몫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쓰러운 마음 대신, 겨울을 버티며 피어난 그 강인한 생명력을 기특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겨울의 한복판, 우리 집 베란다에도 붉은 꽃을 피운 제라늄이 있다. 추운 계절에도 꽃을 피우는 신기함에 이끌려 작년부터 겨울 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제 설강화를 보고 온 후, 영하의 날씨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베란다에서 꽃을 피우고 있는 제라늄을 거실 안으로 들여놓았다.
거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제라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다시 마음이 망설여진다. 제라늄도 밖의 서늘한 공기에 더 익숙할 텐데, 나의 과한 걱정이 도리어 성장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모든 식물이 숨을 죽이고 봄을 기다릴 때, 홀로 은백색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설강화처럼 우리 집 제라늄도 생각보다 강할지 모른다.
아직 한 해도 다 가지 않은 12월 말에 봄을 이야기하는 것이 성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원 화단에 피어난 설강화는 나에게 봄이 결코 멀리 있지 않다는 소망을 미리 심어주었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만난 이 작은 생명 덕분에, 마음만은 이미 저만치 앞서 달려가는 봄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
이제 며칠 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밝아오면, 조만간 우리 곁에 찾아올 봄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마중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