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안부를 묻는다

요양원 노인분들의 표정은 우리 미래의 모습은 아닐까

by 김종섭

요양원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낯선 이의 등장에 노인분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진다.


양로원 입구에 들어서면 널찍한 휴게실을 만나게 된다. 휴게소에는 별다른 시설물 없이 중앙으로 기다란 식탁 겸 책상이 여러 개 놓여 있다. 방금 전 그림 그리기 수업이 끝난 듯 책상 위에 색연필이며 도화지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파란 조끼를 입은 간병인들은 노인들 사이사이에 앉아 마치 세 살배기 어린 내 투정 어린 모습을 묵묵히 받아 주고 있는 듯한 표정을 읽어낸다.


휴게실 뒤쪽으로는 여러 개의 침실이 연결되어 있다. 방마다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방문 틈 사이로 일부 어르신들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요양원 휴게소

수심이 가득 차 보이는 표정으로 창가 쪽에 묵묵히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분과 눈이 마주쳤다. 할머니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에서 내 앞으로 성큼 다가오셨다.

"아저씨 우리 집에 가자"

할머니는 지독한 치매 증상을 앓고 계신 분이시라고 요양원 관계자가 전한다. 할머니는 처음 마주치는 사람이 마치 가족이나 지인쯤으로 생각을 하고 계신 듯했다. 할머니의 잠재의식 속에는 늘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이 깊게 자리 잡고 있으신 것 같았다.

"할머님 댁이 어디신데요"

"저기가 우리 집이야 "

할머니의 손짓 방향은 창문 너머 도심의 한 복판을 가리키고 계셨다.

"할머니 집에 많이 가고 싶으세요"

"어서 가자, 빨리 가자 "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못 갈 것만 같은 절규의 목소리가 섞여있었다.

치매 환자에게도 집은 망각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일까, 지금 행동으로 보아 할머니의 마지막 기억 속에 집만큼은 뚜렷이 남아 계신 것 같았다.


이 시간쯤이면 휴게실에 나와 계셔야 할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디 몸이라도 편찮으신 것은 아닐까, 갑자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들어 황급히 어머니 방을 향해 자리를 옮겨 갔다. 다행히 어머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아 계신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침대를 마주하고 어머니와 같은 방을 쓰시는 할머니가 침대 없는 방바닥에 누워 새우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할머니는 가족까지도 알아볼 수 없는 중증 치매 환자분이라고 하셨다. 요양원을 방문할 때마다 한 번도 깨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어디 편찮으신 곳이라도 있으세요"

어머니는 무릎 부분에 덮고 있던 이불을 들추어내셨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왼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계신 것이었다.

"어머니 이것이 웬일이래요"

일주일 전쯤에 당신 혼자 재활 운동을 하시다가 바닥에 넘어지셨고 그 충격으로 인해 다리가 골절이 되셨다고 한다. 누님은 동생이 걱정할 생각에 이 사실을 동생인 나에게 알려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올해 94세를 맞이 하셨다. 예전 같으면 최 장수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앞에는 백세 장수 인생 시대의 나이에 가려져 있다. 침대 서랍장 위에는 작은 탁상용 십자가와 함께 성모상과 기도서가 가지런히 자리를 지켜가고 있었다. 어머니를 항상 볼 때마다 묵주가 손에서 떠나지 않으셨다. 오늘도 어머니는 묵주를 손에 꼭 쥐시고 기도를 하고 계시던 중이셨다.


어머니는 27년 동안을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셨다. 성당 앞 좌석에는 어머니만의 유일한 지정석이 생겨났다. 그날 도 평상시와 다를 것 없이 새벽기도를 가시던 중에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 나간 차에 부딪쳐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셨고 앞니 일부가 파단이 되셨다. 그땐 예수라는 이름이 원망스러웠다. 27년간 새벽기도가 결국은 어머니에게 고통의 수난만을 남겨주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교통사고 이후 건강상태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시고 간간이 치매 증상까지 보이셨다. 끝내 대소변을 화장실이 아닌 방 안으로 옮겨가는 상황이 종종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치매는 오랜 기간 머물지 않고 다시 기억력을 되찾아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방광에 문제가 생겨났다. 수술로 완치를 기대하기에는 연세가 있으셔서 결국은 소변 주머니를 대신 달고 퇴원을 하셨다. 별 무리 없이 거동하시던 어머니는 소변 주머니를 몸에 지닌 이후 걸을 수 있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오직 휠체어에 의존하셔야 했다.


"예야 지금 몇 시나 되었냐"

벽면에 걸린 시계가 멈추어 서 있다. 관리실에 들려 교체할 건전지를 가지다가 정상적인 시간을 돌려놓았다.

"어젯밤부터 시계가 멈추어서 도대체 시간을 알 수가 있어야지"

어머니는 시계가 멈춘 이후 몇 시 인지도 모르시고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간병인에게 시계 건전지 좀 교체해달라고 말씀하지 그러셨어요"

"아님 TV라도 껴 놓고 시간을 보시던가 하시지 않고요"

어머니는 사소한 것까지 간병인에게 부탁하는 것이 내내 마음에 부담이 되셨던 것 같다.


조금 전 집에 데려다 달라고 매달리셨던 할머니 생각이 순간 어머니 모습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어머니 여기보다 집이 좋지 않으세요?"

"삼시 세 끼 밥에 간식 챙겨주지. 씻겨주고 수시로 운동까지 시켜주는데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이 또 어디 있다고"

"어디 그것뿐이냐, 노래에 그림까지 가르쳐주는데"

어머니는 요양원을 찾아 뵐 때마다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셨다. 어머니의 말씀이 진심일까, 혹시라도 조금 전 할머니처럼 간절하게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라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닐까, 갑자기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누님의 권유로 지인이 운영하는 요양원에 어머니를 모시기로 가족 모두는 결정했다. 물론 어머니도 흔쾌히 동의하셨다. 누님이 어머니에게 마지막 효도를 하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누님 댁과는 겨우 오분 내외의 짧은 거리에 요양원이 위치해 있다. 누님의 생각은 시간 날 때마다 자주 찾아뵐 수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어머니는 평상시에는 말수가 적으셨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많은 말을 건네 오셨다. 그동안 바깥세상과 단절된 상황에서 많은 것이 궁금하시기도 하셨을 것이다. 어쩌면 묵묵히 고독의 시간을 감내해 오셨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요양원에 치매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으셔서 소통에 한계가 있으셨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머니를 위해 최소한의 행복을 드릴수 있을 것 같다. 모자(母子)가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면서 모처럼 많은 대화를 이끌어 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발목을 묶어 놓은 듯 발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며칠 있으면 나는 가족이 있는 캐나다로 떠나야 한다. 캐나다로 돌아간다는 말이 차마 어머니 앞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 수일 내로 다시 또 올게요"

"힘든데 오긴 뭐라 자주와 안 와도 되니까 내 걱정일랑 하지 말고 어서 조심히 들어가거라"

어머니의 마음은 늘 겉과 속을 숨겨놓은 성스럽고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에 진심이 아님을 나는 알고 있다.


지천명의 세월을 살아가고 있는 아들은 아직도 하늘의 뜻은커녕 어머니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 자식만을 위한 내리사랑만 고집하고 지켜온 삶의 오만은 아니었을까, 부모 사랑은 생각만 앞서고 실천이 미급해 늘 불효가 되었다.


나는 2019년 9월 어느 날 어머니와 그렇게 작별을 했다. 지금 어머니 96세를 맞이하셨다. 가끔 누님이 사진을 보내오신다. 갈수록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을 전한다. 마음 한쪽에 무더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영상으로 어머니를 만났었다. 코로나로 인해 이마저도 단절되어 먼 발취에서 생각으로만 느끼고 바라봐야 한다. 코로나가 끝나면 직접 뵐 수 있는 기대감으로 오늘도 희망을 품어보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https://youtu.be/8 yHWY7 dXh6 s

♧모정의 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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