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밥상을 물려 놓고 그날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강한 어조로 잔소리를 퍼부으셨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어머니는 너무나 잘 알고 계셨던 것이다. 어쩌면 익숙하셨는지도 모르신다. 어머니는 아무런 대꾸 없이 방을 빠져나와 부엌으로 향하셨다.
달그락달그락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양동이의 물을 설거지통에 붓는 소리까지 가세했다. 이미 닦아 놓은 그릇까지 끄집어내어 다시 닦아내셨다. 갑자기 고요했던 저녁이 폭풍전야이다. 부엌에서 요란하게 들려오는 설거지 소리에 아버지의 잔소리는 오래가지 못하고 허공의 외침 정도로 결국은 그날도 그렇게 끝나고 말았다. 그토록 요란하게 거친 설거지를 하셨는지 그때는 어머니의 마음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때는 적어도 가장은 절대적이었다. 권위적 가부장적 형태가 시대의 오류가 있었다. 밥상 문화는 나눔과 소통의 공간이기보다는 단지 허기진 배를 채워가는 일상 정도에 불과했고 어쩌다가 감정이 노출되며 말과 행동의 분노가 밥상 앞에서 배출되어 가기도했다.
요즘은 식사가 끝나고 나면 디저트로 과일 내지는 잔잔히 전해오는 커피 향과 함께 훈훈한 가족 내에 담소를 나뉘어 가는 것이 평범한 일상의 식탁 문화이다. 그때는 사실 그런 여유로움은 사치라고 생각하고 살았던 시대 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남녀 편견이 강했던 시대는 언제부턴가 전설이 되어 버렸다. 삼시 세 끼를 준비하는 일은 유일한 어머니의 몫이자 의무이기도 했다. 어쩌다가 몸이라도 아파 몸져누워 계셔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이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어머니만이 부엌을들어갈 수 있는 비밀 정원과도 같았다. 비단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모든 어머니의 삶이 그때는 그러했다.
세월이 지나 지금 중년의 아들은 어머니의 전유물과 같았던 나의 주방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주방에 가득 쌓여있는 설거지가 침묵을 지켜온다.잠시 후 설거지를 위해 주방에 수돗물을 틀었다. 수돗물 소리가 어머니의 설거지 물소리를 닮아가는 느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그동안 어머니의 설거지 물소리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는 연로하신 어머니의 모습 뒤에는 설거지 소리보다는 신음소리가 더 깊어가는 노인의 모습으로 돌아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