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섭 Sep 12. 2024

며느리가 미역국을 끓여 왔다

며느리의 미역국으로 생일을 맞이하는 특별한 아침이다

추석5일 남았다. 추석을 생각하면 쉽게 생일 날짜를 기억할 수 있다. 8월 토끼는 먹을 것이 많다고 한다. 어머님은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주셨다. 미역국은 사실 낳아주신 어머님이 드셔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일 때마다 늘 고민에 빠지는 부분이다. 결혼을 하고 미역국을 끓이는 일은 어머님의 손을 떠나 며느리인 아내의 몫이 되었다. 미역국 이야기에 어머님 생각이 간절해 온다. 떠난 다음에 애틋한 간절함이다. 있을 때 잘하지 못한 절규일 수도 있다.


올해 생일은 한국에 나와 있어 미역국도 없는 생일을 혼자 외롭게 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큰아들마저 이번달 초 해외 출장을 떠났다. 출장 떠나기 전 아들내외와 미리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생일잔치의 의미를 대신했다. 생일선물로 용돈을 두둑이 받았다.


화요일에 며느리한테서 카톡이 왔다.

"혹시 목요일 아침에 댁에 계세요?"

"그날 식사 같이 하면 좋을 텐데 그날은 제가 학교 수업이 있어서 안될 거 같고.. 아침에 계시면 잠시 들려서 드릴 게 있어서요!!'

"일부터 봐야지. 아직은 특별한 것이 없어서 오전에는 있을 거야"

목요일이 생일날이다. 며느리는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시어버지의 생일이 많이 신경이 쓰여나보다.

"네!! 10시쯤 될 거 같은데 내일 다시 한번 더 연락드릴게요~"

10시쯤이라 해서 혹시 생일 선물이라도 전달하려고 하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 준우 없어도 밥 잘 챙겨 먹어"

"넵!! 너무 잘 챙겨 먹어서 살이 찌는 거 같긴 해요 "

"목요일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연락 또 드릴게요~"

"응. 그래. 하루 잘 마무리하고 연락 줘서 고맙다^^"

"네 ㅎㅎㅎ 오늘 편안한 밤 보내세요"

화요일 저녁에 며느리와의 톡 내용이다. 서로의 대화에는 호칭이 없다.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아마도 쑥스럽기도 했을지 모른다. 시아버지는 결혼 후 장모님에게 어머님이라고 부르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 경험이 있어 며느리의 마음을 백번 이해할 수가 있다.


수요일 저녁시간이 다 돼서 며느리에게서 카톡이 왔다.

"아버님 혹시 지금 댁에 계셔요?"

이번에는 시아버지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아버님이라는 호칭이 불려졌다.

"응. 지금 집에 있는데 왜"

제가 사실 미역국해서 내일 아침에 가져다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저녁이랑 내일 아침에 바로 드실 수 있게 오늘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음식도 따뜻하고 ㅎㅎㅎ"

며느리가 비교적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카톡에 보내온 내용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며느리는 항상 카톡 내용 끝에 쑥스러움을 웃음으로 대신한다.

"제가 7:10분경에 거기 주차장으로 갈게요~~ 떠날 때 연락 다시 한번 드릴게요!"

기에서 거기 주차장이라는 뜻은 아들이 항상 내려주던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몇십 분이 지났을까,  다시 문자가 왔다. 7시 15분에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고 한다.


아들은 판교에 살고 있어 내가 머물고 있는 임시 거처인 분당 오피스텔까지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오피스텔은 아들의 지인이 소유한 집이다 잠시 오피스텔이 비워있어 지인의 배려로 캐나다 가기 전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을 하고 있다.


며느리가 주차장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전에 며느리에게 주려고 오징어 젓갈을 사서 다시 나만의 취향에 맞게 양념을 추가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있다. 2층 로비 무인판매대에서 부라보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가지고 며느리가 도착해 있는 주차장으로 갔다. 며느리에게 먼저 젓갈과 아이스크림을 전해주었다. 다행히 오징어 젓갈을 좋아한다고 좋아한다. 차 뒤좌석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상자에 무엇인가를 가득 담아가지고 왔다. 큰 일회용 용기에 든 것은 미역국이 확실해 보였다. 나머지는 포장에 가려져 갑자기 궁금해져 왔다.

"아버님 준우오빠가 있었으면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같이 하려 했는데 죄송해요"

갑자기 마음이 찡해오는 전율을 느낀다.  아들도 어제 톡을 보내왔다. 해외출장이 아니었으면 집으로 초대할 생각이었는데 아빠가 이번에는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며느리도 같은 심정으로 같은 이야기 하고 있었다. 결혼 후 시아버지의 첫 생일이라 아들과 며느리가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며느리는 상자에 들어 있는 음식을 전해주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상자 속에 꾸러미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상자를 들고 집으로 가는 내내 궁금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좁은 공간을 비집고 정채불명의 음식냄새가 코끝의 움직임을 반응하게 한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상자 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어 열어 보았다. 신비의 마술상자가 얼리는 듯한 대견스러운 느낌이다.


큰 용기에는 생각대로 미역국이 있었다. 좌측에 알루미늄 호일에 쌓여 있는 두 가지 음식은 깻잎무침과 깻잎에 고기를 넣은 부침이다. 작은 상자에는 찐계란과 송편이 들어있다. 앞쪽 용기에는 한과까지 준비를 해왔다. 상자 안의 구성요건이 종합 선물세트 같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


또 다른 용기 컵에는 두유가 들어 있다.

"직접 갈아 만든-두유라고 기호에 맞게 소금·설탕 *꼭 타드세요!!"라는 쪽지가 붙어 있다. 며느리의 정성이 담긴 수제 두유이다. 맛의 차이와 깊이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하게 하나뿐인 맛, 며느리의 수제 두유이다.


미역국은 저녁과 아침에 먹을 만큼의 양이다. 국물은 별로 없고 쇠고기반 미역 반이다. 저녁에 먹기 위해 냄비에 일부를 덜어 내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보관을 했다. 사실 국은 간이 맛의 깊이를 좌우한다. 간도 우리 식구의 입맛에 맞게 적당했다.. 식구의 일원으로 합격점수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이 모든 어제의 행적을 생일 기념으로 남겨두었다. 어제 덜어 놓았던 미역국을 냉장고에서 꺼내어 냄비에 끓였다. 미역국 냄새가 집안을 진동한다. 혼자 먹는 생일 미역국이 외롭거나 처량하지 않았다. 올해 먹는 생일에 미역국은 또 다른 특별이다. 며늘아! 생일 아침 미역국 고맙다. 맛있게 잘 먹을게^^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 만나러 팀홀튼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