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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Oct 23. 2024

가을 끝자락에 서면

내 인생도 남들처럼 이 아닌 가을처럼 익어가고 싶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늘 아쉽기만 하다. 다른 계절에 비해 빠르게 떠나보내는 마음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이 길었던

탓에 가을의 문턱을 힘겹게 디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시간이 많았음을 10월이 예고하고 있다. 가을이 되면 해마다 목적 없이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오늘도 가을을 담기 위해 문밖을 나서는 순간, 어느 것 하나 눈으로 흘러버릴 것이 없다. 눈으로만 담아도 지루하지 않은 행복한 감성을 얻어 갈 것이다.

현관 문밖을 나서는 순간 가을이 풍경이 정겹게 마중을 한다. 상록수 잎새에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나무는 숱한 가을을 어김없이 맞이하고 보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솔가지 사이에 움츠리고  여름 내내 햇살을 피해 있던 퇴색된 솔잎은 주인을 잃고 땅 밑에서 만추의 풍경을 그려나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같은 길을 따라 공원 산책길을 밟아가게 된다.

터널 같은 나무숲을 빠져나와 또 다른 분위기가 있는 길을 만났다. 가을의 끝자락마저도 느끼지 못하고 앙상해진 나뭇가지는 이미 낙엽의 절규마저 끝나버린 상태이다. 어제 내린 비로 인해 낙엽이 묵직한 모습으로 길가에 내려앉아있다. 바람의 입김에도 힘겨워했던 시간을 보냈다. 떨어진 낙엽을 어떤 시선으로 봐주어야 할까, 때론 이별을 암시했고, 때론 만남을 암시하는 이중성이 포함되어 있다. 슬프고도 희망적인 미묘한 관계를 가을이 함께 담아가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낙엽을 주어 모으는 기계음 소리로 시끄러운 시간대를 보내는 날이 많아진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드너의 바쁜 행보에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길가에 탐스러운 사과가 결실을 보고 있다. 몇몇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사과가 재철을 잊은 채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이며 절규할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세월은 오고 가는 것이라는 단순한 법칙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보내왔었다. 요즘은 세월 빠름에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월이 화살과 같이 빨리 지나감을 뜻하는 광음 여전(光陰如箭)이 있다. 사자성어가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었다. 가면 가는 대로 보내는 방법이 진리일지도 모를 세상에 살 있다.

산책로 주변으로 걷다 보면 작은 호수만나게 된다. 호수를 두 바퀴 정도 도는 것이 우리 부부만의 루틴이고 산책의 법칙처럼 되어 있다. 오늘도 호수 주변을 걸으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관심 있게 쳐다보았다. 이곳 호수에 오면 항상 강태공들이 시간을 낚고 있다. 강태공들은 낚시를 위한 준비를 제법 많이 한 것 같다, 장화까지 챙겨 신고 고기 낚기에 강한 진념을 표출한다. 이 작은 호수에 과연 물고기가 살까, 처음 호수를 접할 때는 의심스러움으로 호수를 지켜보았다. 강태공이 대어를 끌어올리는 관경을 단 한 번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에서 주기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호수에 방류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시꾼이 들고 온 어항 바구니에는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밴취에는 연인들이 사랑으로 가을을 품고 앉아 있다. 가을이 아니어도, 호수가 아니어도, 때와 장소 구분이 없어도, 둘만 있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연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덤으로 호수가 장소와 배경이 되고 환호해 주는 가을이 있으니 더 이상 아름다운 곳이 없을 것이다. 이 호수를 보면서 잠시 아내와 7년의 연애 기간 동안 가끔씩 데이트를 즐겨갔던 잠실 석촌호수를 생각해 냈다. 지금 벤치에 앉아 있는 연인들도 그때 아내와 연애시절  그 감정과 닮아 있지는 않았을까,

호수를 돌면서 오늘따라 생각이 많아진다. 날씨가 흐려진 탓일까, 오늘은 호수 주변을 산책하는 사람들 모습마저도 많지가 않다.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구름의 색깔이 예사롭지 않다. 호수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빗 방울이 한두 방울을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한국 방문의 공백으로 거의 일 년 만에 걷는 산책길이다. 오랜만에 걸어본다는 어색한 느낌이 전혀 없다. 과거의 시간을 굳이 들추어낸 결과의 시간이다. 그만큼 이곳 산책로가 친근하게 다가서기 때문이다. 산책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는 갓 따온 신선한 과일처럼 신선함으로 순환이 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조금은 차분해지고 조금은 생각을 하고 대화를 완성시키는 배려의 대화가 생겨났다. 자연이 주는 고마운 에너지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계절의 결실을 이야기할 때 신의 축복을 이야기했다. 각자의 생각에도 신의 축복 이상의 기운을 얻어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매번 산책에서 얻어오는 신념과 또 다른 영감을 가져온다. 자연은 첫째 진실을 왜곡하거나 거짓 선동을 하지 않는다. 두 번째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그대로의 모습이다.


오늘도 산책길을 빠져나오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가을은 깊어가는 가을만큼 각자의 마음도 깊어가는 듯하다. 바람이 있다면, 내 인생도 남들처럼 이 아닌 가을처럼 익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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