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일 년 차, 남편의 뇌출혈 그 후. 건강염려증이 생겼다.
대기업 9년차에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퇴사하고 MBA가는 남편따라 미국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MZ 백수 장엠디입니다. 어느덧 출국이 한 달 남은 시점 미루고 미루던 일들이 서서히 목 끝까지 차오르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 저희 가정에게 갑자기 닥쳤던 사고, 다소 무거웠던 얘기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현재 저의 남편은 몹시 멀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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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꼬박 하루 이상 떨어진 타국에서 출장중이던 남편이 화장실에서 갑자기 쓰러졌던 나날 이후로, 정확히 두 달이 흘렀습니다. 남편의 MBA 출국을 다섯 달 앞두고, 결혼한 지는 겨우 일년 반이 지났고, 제가 퇴사한 지 겨우 이틀이나 되었을 시점이었지요. 경막외혈종을 비롯한 전두엽,실질내 출혈 촛점 등 뇌출혈 여섯군데, 그리고 두개골 골절 3군데. 이게 남편의 사인이었습니다. 삼 일 이상 남편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는 동안 멀쩡히만 돌아오게 해달라고 닥치는 대로 기도했습니다. 부처님이고 돌아가신 할머니 조상신이고 하느님이고 그게 누구라도 남편만 돌아올 수 있게 해줄 수 있었다면 저는 간절했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기적적으로 지금 저의 남편은 멀쩡합니다. 비록 사고 이후 옥수수와 해산물을 전혀 먹을 수 없고(환상통으로 매일 눈 앞에 옥수수가 떨어지는 환상을 봤다고 합니다) , 술은 생각만 해도 울렁거린다고 하지만 이외에는 운동도 하고 미국 MBA도 정상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정말 기적입니다.
남편이 왜 쓰러졌을까요? 심지어 3일간이나 의식을 잃었을 정도로 상황은 위중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멀쩡합니다. 흉부외과에서도 신경외과에서도 이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원인 불명의 의식소실" 뇌 MRI와 MRA부터 자율신경계 검사, 심전도,경동맥부터 심장초음파까지 모든걸 다 했지만 너무나 멀쩡하다고 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크게 알게된 게 있다면, 우리 몸은 너무나도 신기하고 이다지도 약하다는 것입니다. 뇌나 심장의 경우 "원인은 모르겠지만 지금 환자 상황이 멀쩡하니까~~"와 같이, 다친 부위가 어떻든 결과론적인 병변에 따라 병의 경중이 정해졌습니다. 다쳤던 부위가 크고 위중했더라도 현재 남편은 멀쩡하니까 심각한 건 아닌겁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왜 쓰러졌는지, 원인 무엇인지 우리 몸은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네요. 업무 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아닐까.. 라고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매일 10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1시간 이상 새벽 고강도 근력 운동을 하고 10KM씩 달리기를 할 정도로 건강에 진심이며 근력량이 좋은 30대 후반 남자인데 과연 뭐가 문제였을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후에, 남편이 그토록 먹지 않겠다고 우겼던 고혈압 약만큼은 시작해서 먹고 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주위에서 그만하길 다행이네, 그래도 건강관리 잘해-와 같은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다시 남편이 쓰러지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 딱히 뭔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없더라고요. 그냥 인생에서 딱 한 번만 있는 일회성 이벤트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미국 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지만 후유증은 저에게 남은 것 같네요. 건강염려증이 좀 심해졌습니다. 저 말고 주위 사람에 대한 염려증이요. 남편한테는 자주 "이제 다시는 내가 놀랄 일은 없는거지요? 다신 안 쓰러질 거지요? 건강관리잘해야해요" 라고 물어보고 있고요 (물론 소용없는 약속이라는 것을 알지만 착한 남편은 당연하죠-라고 대답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 그리고 동생들에 대한 걱정이 부쩍 커졌습니다.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매일 오늘처럼 행복할거야. 내 인생은 평탄하기만 할거야. 이런 생각이 얼마나 단편적인 것인지를 깨닫지만.. 저는 오늘도 아빠 밤운전은 위험하시니 하시지마세요-라고 가족톡에 잔소리를 올리는 큰 딸래미입니다.
길고 긴 회사생활을 하면서, 매주 로또를 한 장씩 사는 것은 저의 루틴이었습니다. 언젠가는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일주일을 설렘 속에서 살게 하는 작은 부적이었다고나 할까요. 퇴사하는 날에는 팀 동료들에게 로또를 한 장씩 선물하기도 했었으니까요. 그러던 제가 남편이 쓰러졌던 그 주에는 로또를 한 장도 사지 않았습니다. 아니, 살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제 운을 다른 곳에 써버리게 될까봐서요. 부자는 아니고 으리번쩍한 집에서 살 수도 없지만, 매일 평범하게 남편과 도란도란 누워서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일상이 로또였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그리고 퇴사한 지 몇일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남편이 쓰러지자마자 덜컹, 심장이 내려앉으면서 한켠으로는 혹시 병이 길어지면 병원비는 어떡해야하지 현실적인 생각들도 들더라고요. 제가 경제활동을 하는 것과 안하는 것은 몹시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남편 따라서 미국에 가게 되더라도, 저도 경력을 놓지말고 뭐라도 해봐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서 조바심이 나지만)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브런치에서 조곤조곤 써보겠습니다.
실은.. 남편이 멀쩡히 돌아왔음 된 거 아니냐, 세상에는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많은데 뭐 이런 배부른 걱정타령이나 아직까지 하고 있냐,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남편의 사고 이후 생긴 건강염려증과 인생에 대한 불안을 어딘가에 털어놓기가 어려웠습니다. 배부른 투정같아서, 그리고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할 걸 알아서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네, 맞습니다. 아마 후유증은 저에게 생긴 것 같습니다. 건강염려증과 생에 대한 집착이 생겼습니다.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요. 저는 완벽주의 성향입니다. "왜?"라는 원인을 알아야 앞으로 재발을 막을텐데, 남편은 왜 쓰러졌는지 모르게 쓰러졌고 검사 결과는 멀쩡합니다. 뇌 뒷부분에 소량의 피가 아직은 남아있지만 흡수까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고, 일상생활도 멀쩡하게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할 것은 없다. 그저 기적이라고 감사하고 여기고 잘 살면 된다, 라고 생각하지만 불쑥불쑥 찝찝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혹시 나중에 또 아프면 어떡하지, 와 같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걱정들이요. 걱정은 곰팡이처럼 습윤하고 칙칙하게 번져서, 미국 가 있는동안 우리 부모님 아프시면 어떡하지- 나이 들어가시는 부모님의 모습에 초조해지기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일어날 때까지는 알 수 없는 것, 불행도 행복도 일거에 습격해오는 것이 인생이기에 알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바보같고 미련한 짓이겠지요. 그래도 답답했던 이 마음을 털어둘 곳이 브런치 뿐이라 글로써 남겨봅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으로, 이 행복이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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