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없었던 어린 시절 명절이면 서로 연락도 없이 서울 할머니 댁으로 당연하게 친척 식구들이 모였다. 할머니 댁 대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군침 도는 명절 음식냄새와 먼저 도착한 친척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우리 식구를 반겼다.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모두의 즐거움이었다. 친척 어른들이 한 장 한 장 꺼내 주시던 파란색 종이돈은 나의 명절을 특별하게 했다.
돈도 좋지만 그래도 명절이 즐거운 이유는 나이 때가 비슷한 사촌 동생들과 오빠, 언니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많아 앉을 곳도 부족한 공간이었지만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놀이를 즐겨했다. 빛깔이 오묘한 자개장롱 속 이불 사이, 하얀 고양이가 살던 다락방, 정 숨을 곳이 없으면 밥상 밑까지 집안 곳곳에서 꺄르륵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밥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순간에도 웃음은 그치지 않았다. TV 광고 음악도 함께 있을 때는 재밌는 소리였다.
“만나면 좋은 친구~~MBC 문화방송~뚱뚜둥 둥뚱!”
이제는 나의 아들이 친척 어른들에게 수금을 하며 예쁨을 받고, 친척 동생은 시댁에 가느라 할머니 댁에서 얼굴 보기 힘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서 만나 좋은 친구가 되는 명절이다. 이번 명절은 걱정거리가 오고 가는 것보다 좋은 이야기로 즐거운 명절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