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하게 끝난 초보주부의 공간이동
이틀 전, 집에 오기 싫어서 네다섯시 쯤 들어온다고 나갔던 나는
도서관의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았다는 이유로,
의자가 허리가 아팠다는 이유로, 터덜터덜 집에 두시간 정도 후에 들어왔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닫히자마자 남편은 "왔어~?"라고
한참 쌀쌀맞음이 풀린 말투로 말했다.
그러나 한겨울 폭설 수준으로 마음이 차가워진 나는
"어"라고 한 글자를 말한 후 손발을 닦고,
식탁의자에 가지고 갔던 짐을 하나씩 풀어 내렸다.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쌓여있는 상태였던 나는
무언가를 와그작와그작 먹고 싶었다.
다행히 부엌 서랍 안쪽에 과자가 몇 가지
집게로 오므려져 있어서, 애지중지하는 법랑그릇에 덜어
과자를 조금, 소리는 일부러 크게 내면서 먹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과자 먹는 사람이 바로 나다"라는 표식을 내면서...
얼마 있지 않아 남편은 나와서 나의 과자를 몇 개 집어 먹으면서
내 등 뒤에 앉아서 어깨를 주물러 줬다.
나름 뜻밖의 서비스였기에 시원함을 느꼈지만,
이걸로 마음을 풀고 싶지 않아서 "아프니까 그만해"라며
쌀쌀함을 유지해봤다.
그러나 이내 고개숙인 벼보다는 조금 높게
뒷모습을 보이며 안방으로 남편이 들어갔다.
순간 마음이 작아진 나는 "내가 너무했나"라는 생각을 해보며,
저녁에 해주기로 한 해물볶음 우동을 언제쯤 만들지,
말은 직접 가서 할지, 거실에 앉아서 할지,
소심하게 pc카카오톡으로 보낼지 고민 했다.
잠시의 고민 끝에 내 손은 노트북을 이용해서 메세지를 보내고 있었다.
남편의 대답이 빠르게 도착했다.
"누나, 좀 쉬다가 해"
배가 안고팠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
결국 재료를 준비하고, 우동면을 삶을 때쯔음
남편이 다시 나왔고,
나는 애석하게도 마음이 상한걸 까먹고
오늘의 요리에 대해 소개를 하다가 빵터졌다.
남편은 나를 안아주었다. "내가 미안해"
나도 나의 마음을 잘 정리해서 왜 마음이 상했고,
어떤 것이 속상했는지를 설명했고,
매콤한 우동을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이틀 전 못 간 전시회는 다행히도
7월 말까지여서, 남편에게 정식으로 제안을 했다.
이번주 토요일에 괜찮으면 전시회에 함께 가줄 수 있냐고.
남편은 "그래 꼭 같이 가자"
마음이 풀렸다. 뭔가 몽글몽글해진 느낌이 들었고,
생각보다 내가 꽤나 촘촘하고 예민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하루였다.
오늘 남편은 동료들과 동네 오리백숙집에서
백숙을 먹으면서 한 잔 기울인다고 연락이 왔다.
간단히 한 잔을 하고 온다고 해서,
넘치지 않는 한 병을 마시고 오라고 했다.
오후 7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도 햇살이 쨍쨍하고,
한낮 같은 분위기가 나서 묘한 저녁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