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reell Aug 08. 2023

나는 좋은사람이 되고 싶었다

시간을 돌려 가본다면 그러지말라고 한 마디 세차게 해줄 것을 그랬다

어릴 때부터 꽤나 많이 했던 고민이 있었다.

바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였다.




이 생각을 삶을 살면서 지속적으로 하게 된 계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시작은 아마도 8살 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어느 날 하얀색 서태지와 아이들의 사진이 인쇄된 맨투맨 티셔츠를 사다줬었는데, 

옷 욕심이 크게 없던 나는 그 티셔츠와 바지를 입고 등교를 하곤 했었다.




나는 또래에 비해 키가 컸던 편이었고, 

여자 애들 중에서는 키순으로 뒤에서 서너 번 째 정도에 서곤 했었다.


교실에서는 키 순서대로 자리에 앉았는데 내 뒷줄에는 나보다 약간 키가 큰

남자애가 앉았었다. 그런데 그 애는 자꾸 내가 서태지와 아이들이 인쇄된 그 티셔츠를

입고 간 날에는 길고 뾰족한 연필로 깊고 강한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티셔츠는 날카로운 공격에 찢어지기도 했고, 시커매져서 너덜너덜해지기까지 했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가리지 않고 나를 괴롭혔으며, 

꿋꿋하게 한동안 말을 안하고 버텼지만, 엉망진창이 된 내 티셔츠를 보고 

우리 엄마는 모를 없는 상황이었다. 남자애 엄마와 우리 엄마 두 사람이 

학교에 같이 오면서 사자대면 같은 것을 하게 됐다.


그 애 엄마는 애가 외동이라 철이 없어서 그렇다고 착한 내가 이해해 달라고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있었고, 엄마는 가만히

아무말 안하고 있는 나를 답답해 했다. 그 장면은 가끔 떠올라 나를 괴롭히곤 한다.




지독하게도, 재수없게도 반 배정 시스템 덕분에 나와 걔는 3년 동안 더 같은 반을 유지했고,

괴롭힙의 정도는 점점 약해졌지만 나는 그 남자애 비슷한 실루엣만 봐도 그냥 모른척 무시해버렸다.

아무래도 점차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나 본지 그 이후에는 마주쳐도 날 괴롭히지 않았다.


서른 살쯤이었나 어느 여름날 생각이 복잡해서 양화대교를 따라 걸어서 쭉 걸어

선유도공원을 지나 걸어서 어느 신호등을 건너는데 무척 익숙한 남자가 맞은편 신호등에 서 있었다.


안경을 쓰고, 다소 뾰족한 인상에 얼굴이 하얗지도 않지만 까맣지도 않은 180이 넘은 키에

자신의 핸드폰과 신호등의 빨간불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녹색불이 바뀌면서 별 생각 없이 그 사람을 쳐다봤는데, 갑자기 교실로 배경이 바뀌면서

아..... 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남학생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때 얼굴과 하나도 안 변하고 키만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꾸역꾸역 마음에 찌꺼기와 고통을 거의 다 덜어냈을 시점에

하필 그 신호등에서 마주쳤다는 게 화가 나고 속이 답답했다.


서태지 노래라도 크게 틀었어야했나 하고 애매한 비웃음을 지으며

집에와서 그냥 허탈하게 드러누워 버렸었다.




남편에게는 얼마전에 각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렵게 이 이야기를 털어 놓았던 것 같다. 


나는 아마 너무 어릴 감당하기도 힘들었지만, 나를 괴롭히지 말라고

세차게 말하는 것은 더 힘들었어서 그저 버티려고 했던 것 같다고....




잠이 잘 오지 않는 요즈음 내게 한 마디를 해주고 잠들고 싶다.

 "살면서 포기하고 싶던 때를 잘 버텨내고, 살아줘서 고맙다. 잘했다."


작가의 이전글 아 내가 진짜 했구나, 결혼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