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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Oct 10. 2023

가는 날이 비오는 날

아침에도 비를 맞았고 저녁에도 비를 맞았다. 안타깝게도 우산은 없었다.


한글날이자 공휴일인 어제,

가는 날이 비오는 날이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평소 살짝 찬바람이 도는 가을 날씨를 좋아하는 나는

공휴일이라 편히 쉬는 남편을 두고, "여보 나 한강으로 산책 좀 다녀올게~'라는

말을 쿨하게 건네고 옷을 갈아 입었다.


대답만 하고 별 미동이 없을 것 같던 남편이 갑자기

자신도 같이 가자며 트레이닝바지를 찾기 시작했다.


내심 기분은 좋았지만 혹시 억지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재차 물었고

아닌 것을 확인 후에 동행하기로 했다. 


자세히 형용할 수는 없지만 자유롭고 편히 남편을 가급적

쉬게 놔두려는 것이 역으로 눈치를 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강요는 아니고, 정말 나 혼자가고싶어서 그래"를 최근에

버릇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노력을 더 해야될 것 같다.




그렇게 오전 10시 언저리에 준비를 하고 나섰는데

엘레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있는 건물을 막 벗어나자마자

열 걸음도 채 걷지 않았을 때, 빗방울이 톡톡 떨어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주간 예보를 확인하고 나왔는데, 망연자실해버렸다.

우산을 가지고 다시 나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비를 맞고 계속 가야하나,

중간에 돌아서 집에 그냥 와야하나를 아주 잠시 고민하다가

나온 김에 아이스아메리카노와 토스트를 하나씩 포장해서 집에 오기로 했다.




그렇게 집에와서 조금 쉬다가 아점을 먹고, 쉬면서 창밖을 보니

하늘은 멀끔하다 못해 멀쩡해져서 해가 내리쬐기 시작했다. 허허 묘하게 아쉬웠다.


그렇게 집을 청소하고,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다 최근에 이사한 사촌동생이 

출근 하지 않는 날이라고 알려준 게 떠올라서 혹시 외출할 일이 있으면 이사선물로

주려고 한 택배가 도착했으니 잠시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마침 우리 동네에서 저녁 약속이 있다고 해서 잠시 나가서 콜드브루를 마시고 왔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전혀 예측이 불가했다. 




어제 저녁 두 번째 산책을 시도할 것이라는 것과 오전과 비교불가할 만큼 

큰 빗방울이 후두두두 떨어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집에 다와갈때 쯤 비가 그칠 것이라는 것도.


문득 남편에게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라는 막연한 고민에 빠져 다소 울적해하니

남편이 맛있는 아구찜을 먹고 기운내자고 손을 내밀어줬고, 부드러운 알곤이찜과 고소한

아구의 기운에 힘입어 저녁 산책을 가기 위에 다시 한 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40분이 채 안됐을까 한강 초입에 도착해서 선유도 공원쪽으로 방향을 틀어보려는 그 때

빗방울이 정수리에 한 번, 팔뚝에 한 번, 아스팔트 자전거길에 한 번 떨어졌다.


지하차도와 간이 오두막, 편의점 인근에는 사람들이 비를 피하려 모여 있었고,

남편도 비를 피할까 고민하길래, 무모했지만 데이터가 있는 이야기를 건넸다.


"내가 비를 맞고 집으로 방향을 틀거나 집에 가야 저 분들이 비를 안 맞을 수 있을 것 같아.

여보 괜찮으면 우리는 좀 더 걸어서 집에 가자."




흔쾌히 남편도 그래 하고 우리는 비를 맞기 시작했는데 머리카락과 옷이 무거워질 만큼

비가 내려서 도중에 택시 잡기를 시도했지만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결국 집까지 걸어왔고, 도착하기 3-4분 전에야 비가 잦아들고 비가 오지 않았다.


평소 안경을 쓰는 남편은 안경 안에도 송글송글 빗물이 맺혔고,

우리의 머리부터 운동화 바닥까지는 심히 축축해져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멀끔했을 때보다 더 많이 웃은 하루였던 것 같다.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난 하루였지만, 내 마음과 얼굴 모두 슬프지 않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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